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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의 기습작전

solpee 2020. 2. 3. 21:11

 

《魏紀2 明 太和 (丁未, 227)

 

 

 10. 윤11월, 애초 맹달은 이미 문제가 총애하였는데, 또한 환계와 하후상과도 친하게 지냈다. 문제가 죽고, 환계와 하후상도 죽자 맹달은 마음속으로 스스로 불안하였다. 제갈량이 이 소식을 듣고 그를 유인하니, 맹달이 자주 편지를 교환하였으며, 속으로 촉에 귀순하기로 허락하였다.

 10. 閏月初,孟達旣爲文帝所寵,又與桓階、夏侯尚親善;及文帝殂,階、尚皆卒,卒,子恤翻。達心不自安。諸葛亮聞而誘之,誘,音酉。達數與通書,陰許歸蜀;數,所角翻。

 

 맹달은 위흥 태수 신의와는 틈이 생겨서 신의가 몰래 표문을 올려 이 사실을 고했다. 맹달이 이 소식을 듣고 황급하고 두려워서 병사를 일으켜 반란을 꾀하려고 하였는데, 사마의가 편지를 보내 위로하고 이 문제를 풀어주니 맹달이 오히려 미저미적하면서 미루고 결정하지 못하자 사마의가 이에 군사를 숨겨 보내서 토벌하였다.

 達與魏興太守申儀有隙,魏興,蜀之西城郡也,文帝曰魏興。儀密表告之。達聞之,惶懼,欲舉兵叛;司馬懿以書慰解之,達猶豫未決,懿乃潛軍進討。

 

 제장이 말하였다.

 "맹달이 오와 한과 연락하고 있으니 마땅히 관망하다가 그 후에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사마의가 말하였다.

 "맹달은 신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니 이는 그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있는 시점이오. 마땅히 그가 아직 화정하지 못할 때 재촉하여 그것을 결정해야 하오."

 諸將言︰「達與吳、漢交通,宜觀望而後動。」懿曰︰「達無信義,此其相疑之時也。當及其未定促決之。」

 

 마침내 배나 빠른 속도로 달려가서 8일 만에 그 성 아래에 도착하였다. 오와 한에서는 각기 편장을 파견하여 서성에 있는 안교와 목란새를 향하게 하여 맹달을 구원하려 하였으나, 사마의가 제장들을 나누어 그들을 막았다.

 애초 맹달이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내서 말하였다.

 乃倍道兼行,八日到其城下。吳、漢各遣偏將向西城安橋、木闌塞以救達,《水經註》︰魏興安陽縣西北,有高橋溪口,文水入漢之口也。漢水又東逕西城縣故城南,又東逕木蘭塞南,右岸有城,名陵城,周回數里;左岸壘石數十行,重壘數十里,中謂之木蘭塞,蜀軍救孟達之所。懿分諸將以距之。初,達與亮書曰︰

 

 "완은 낙양에서 800리 떨어져 있고, 나와는 1천 200리 떨어져 있습니다. 내가 거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땅히 천자에게 표문을 올릴 것이고 이처럼 반복되면 1개월은 걸릴 것이니 나의 성은 이미 견고하게 되었을 터이므로 여러 군대들이라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宛去洛八百里,司馬懿時屯宛。去吾一千二百里。聞吾舉事,當表上天子,比相反覆,一月間也,上,必寐翻。則吾城已固,諸軍足辦。

 

 나는 깊고 험한 곳에 잇고, 사마공은 반드시 스스로 오지 아니할 것이고, 제장이 온다 해도 나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군사가 도착하자 맹달이 제갈량에게 고하였다.

 "내가 거사한 후 8일 만에 병사가 성 아래 도착하였으니, 어찌 그는 귀신처럼 빠르단 말이오?"

 吾所在深險,司馬公必不自來;諸將來,吾無患矣。」及兵到,達又告亮曰︰「吾舉事八日而兵至城下,何其神速也!」

 

 

 

《魏紀2 明 太和 2 (戊申, 228)

 

 

 1. 봄, 정월에 사마의가 신성(호북 房縣)을 공격하였는데, 16일 만에 점령하고 맹달을 참수하였다. 신의가 위흥(섬서 安康)에 오래 있으면서 멋대로 승제하여 인장을 새기고 임시로 관직을 재수하는 일이 많았다. 사마의가 그를 불러서 잡아 낙양으로 돌려 보냈다.

 1. 春,正月,司馬懿攻新城,旬有六日,拔之,斬孟達。申儀久在魏興,擅承制刻印,多所假授;懿召而執之,歸于洛陽。歸儀于京師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