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前出師表

solpee 2020. 2. 3. 18:12

 

《魏紀2 明 太和 (丁未, 227)

 

 

 3. 3월에 촉의 승상 제갈량이 여러 부대를 인솔하고 북쪽으로 가서 한중에 주둔하고 장사 장예와 참군 장완에게 머물러 있으면서 승상부의 일을 통할하도록 하였다. 출발하려고 할 즈음에 상소를 올렸다.

 3. 三月,蜀丞相亮率諸軍北駐漢中,使長史張裔、參軍蔣琬統留府事。臨發,上疏曰︰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 창업을 하셨으나 아직 반도 완성하지 못하시고 중도에 붕조하시어, 지금의 천하는 셋으로 나뉘었는데, 익주(사천, 운남)는 피폐하여져 있으니 이는 진실로 위급한 가운데 살아남느냐 망해버리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위를 맡은 신하들은 안에서 게으름을 피우지 아니하고, 충성스런 뜻을 가진 병사는 밖에서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을 잊고 있으니 대개 선 황제께서 내려주신 특별한 대우를 추념하여 폐하께 이를 보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先帝創業未半而中道崩殂,今天下三分,益州疲敝,此誠危急存亡之秋也。然侍衞之臣不懈於內,忠志之士忘身於外者,蓋追先帝之殊遇,欲報之於陛下也。

 

 진실로 마땅히 성스러운 귀를 넓게 여시어서 선 황제께서 남긴 은덕을 빛내시고 넓은 뜻을 가진 지사들의 기운을 넓히셔야 합니다. 망령스럽게 스스로 재주가 없다고 하며, 비유를 인용하여 의를 잃어서 충성스럽게 간하는 언로를 막아서는 아니됩니다.

 誠宜開張聖聽,以光先帝遺德,恢弘志士之氣;不宜妄自菲薄,引喻失義,以塞忠諫之路也。塞,悉則翻。

 

 궁중과 부중에서 일하는 자들은 모두 한 몸이니 상주고 벌주며 올려주고 내리는 것이 마땅히 달라서는 아니됩니다. 만약에 간사한 일을 하여 법규를 어긴 자와 충성스럽고 선량한 일을 한 자가 있다면 마땅히 유사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줄 형벌이나 상을 토론하게 하여, 폐하의 공평하고 밝은 이치를 밝히시고 치우치거나 사사로이 처리하여 안팎에서 법의 집행을 달리해서는 아니 됩니다.

宮中、府中,俱爲一體,蜀後主建興元年命亮開府治事。所謂府中,蓋丞相府也。陟罰臧否,不宜異同。否,皮鄙翻。若有作姦犯科,科,律條也。及爲忠善者,宜付有司論其刑賞,以昭陛下平明之理,不宜偏私,使內外異法也。觀孔明所謂兩不宜,則後主之爲君可知矣。

 시중이며 시랑인 곽유지, 불의, 동윤 등이 모두 휼륭하고 알차며 뜻과 생각하는 것이 충성스럽고 순수하니, 선 황제께서 이들을 가려 뽑아 폐하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궁중의 일 가운데 크든 작든 간에 모두 이들에게 물어본 연후에 시행하시면 반드시 모자라거나 빠진 것을 보충하여 넓게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侍中、侍郎郭攸之、費禕、董允等,時攸之、禕爲侍中,允爲黃門侍郎。費,父沸翻。禕,吁韋翻。此皆良實,志慮忠純,是以先帝簡拔以遺陛下。遺,于季翻。愚以爲宮中之事,事無大小,悉以咨之,然後施行,必能裨補闕漏,有所廣益。

 

 장군 향총은 성품과 행실이 맑고 고르며, 군사적인 일에 밝아서 옛날에 시험적으로 채용하였었는데, 선 황제께서 그를 칭찬하시며 능력이 있다고 하셔서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여 향총을 천거하여 독으로 삼았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군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에게 자문을 구하시면 반드시 진영을 구축함에 화목해지고 우수한 자와 열등한 자가 각기 일할 곳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將軍向寵,向,式亮翻,姓也。性行淑均,行,下孟翻。曉暢軍事,試用於昔日,先帝稱之曰能,是以衆議舉寵爲督。愚以爲營中之事,悉以咨之,必能使行陳和睦,優劣得所。行,戶剛翻。陳,讀曰陣。

 현명한 신하와 가깝게 지내고, 소인을 멀리 하시는데, 이것은 전한이 흥성하게 일어난 이유입니다. 소인을 가까이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하게 되면 이것은 후한이 기울고 퇴락하게 된 이유입니다. 선 황제께서 살아계실 때 매번 신과 이러한 일을 토론하셨으며, 환제와 영제가 한 일에서는 탄식하고 통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親賢臣,遠小人,此先漢所以興隆也;親小人,遠賢臣,此後漢所以傾頹也。遠,于願翻。先帝在時,每與臣論此事,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

 

 시중과 상서, 장사와 참군 등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단정하고 선량하며 절개를 위하여 죽을 신하들이니 바라건대 폐하께서 이들과 가깝게 지내시고 이들을 믿으신다면, 한 왕실이 융성하는 것은 날짜를 꼽아가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侍中、尚書、長史、參軍,此悉端良、死節之臣,願陛下親之、信之,則漢室之隆,可計日而待也。

 

 신은 본래 포의로 몸소 남양에서 밭을 갈며 진실로 난세 속에서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려는 것이었기에, 재후들에게 저에 대한 소식이 전달되기를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선황께서는 신을 낮고 천하다고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진실로 스스로를 굽히시고 저의 초막으로 세 번이나 돌아보아 주시어 신에게 당세에 해야 할 일을 자문하였습니다.

 臣本布衣,躬耕南陽,苟全性命於亂世,不求聞達於諸侯。先帝不以臣卑鄙,猥自枉屈,三顧臣於草廬之中,諮臣以當世之事;事見六十五卷漢獻帝建安十二年。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드디어 선황에게 달려가겠다고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뒤에 상황이 기울어지고 넘어지는 때를 당하고, 패배한 군사가 되었을 때에 책임을 맡았으며, 위험하고 어려운 가운데 명령을 받르어온 지 21년이나 되었습니다. 선황께서는 신이 삼가면서도 신중하다는 것을 잘 아셔서 붕어하실 때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由是感激,遂許先帝以驅馳。後值傾覆,受任於敗軍之際,奉命於危難之間,事見上卷文帝黃初四年。難,乃旦翻。爾來二十有一年矣。自建安十二年至是年,凡二十一年。先帝知臣謹愼,故臨崩寄臣以大事也。

 

 명령을 받은 이후 밤낮으로 걱정하고 탄식하면서 부탁하신 일을 본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황제의 밝음을 상하게 할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5월에 여수(金沙江)를 건너서 불모지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지금 남방은 이미 평정되었고 갑병도 이미 충분하니 마땅히 삼군을 격려하여 북쪽 중원 지역을 평정하여야 하는데, 저의 어리석고 아둔한 재주를 다하여 간악하고 흉측스런 세력을 물리쳐 없애고 한 왕조를 부흥시키며, 옛날의 도읍지로 돌아가고자 하니, 이것은 신이 먼저 선황에게 보답하기 위한 것이며, 폐하에게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受命以來,夙夜憂歎,恐託付不效,以傷先帝之明。故五月渡瀘,《水經註》︰犍爲朱提縣西八十里,有瀘津水,廣六七百步,深十數丈,多瘴氣,鮮有行者。《益州記》曰︰瀘水兩峯有殺氣,暑月舊不行,故武侯以夏渡爲難。賢曰︰瀘水,一名若水,出旄牛徼外,經朱提至僰道入江,在今巂州南。特有瘴氣,三月、四月經之必死,五月以後行者得無害。故諸葛亮表云「五月渡瀘」,言其艱苦也。深入不毛。地不生草木爲不毛。今南方已定,甲兵已足,當獎率三軍,北定中原,庶竭駑鈍,駑,音奴。攘除姦凶,興復漢室,還于舊都,此臣所以報先帝,而忠陛下之職分也。分,扶問翻。

 

 손해와 이익을 살피고 짐작하여 충성스런 말을 다 올리고자 하는 것은 곽유지와 불의, 동윤의 임무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신에게 부탁하셔서 도적들을 토벌하여 부흥시키는 효과를 내라고 하셨는데,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신의 죄를 다스려서 선황의 연전에 고하여 주시고, 곽유지, 불의, 도윤 등이 게을렀다는 것에 책임을 지워 그들의 허물을 밝히십시오.

 至於斟酌損益,進盡忠言,則攸之、禕、允之任也。願陛下託臣以討賊興復之效,不效,則治臣之罪以告先帝之靈,治,直之翻。責攸之、禕、允等之慢以章其咎。

 

 폐하께서도 역시 마땅히 스스로 꾀를 내시고 좋은 방도를 자문하시며, 훌륭한 말을 살펴 받으시고, 선황께서 남기신 유언을 깊이 추측하신다면 신이 받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에 감격할 것입니다. 이제 멀리 떨어져 있게 되어 이 표문을 마주하니 눈물이 나 무슨 말을 더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마침내 떠나면서 면의 북쪽에 있는 양평의 석마에 주둔하였다.

 陛下亦宜自謀,以諮諏善道,諏,遵須翻。諮事爲諏。察納雅言,雅,正也。深追先帝遺詔,臣不勝受恩感激。今當遠離,勝,音升。離,力智翻。臨表涕零,不知所言。」遂行,屯于沔北陽平石馬。《水經註》︰沔水逕白馬戍南,謂之白馬城,一名陽平關。又有白馬山,山石似馬,望之逼眞。後魏分沔陽置嶓冢縣,屬華陽郡;隋罷郡,置白馬鎭於古諸葛城,縣治不改;大業二年,改嶓冢爲西縣;縣,唐屬梁州。

 .................................하략...................................

 亮辟廣漢太守姚伷爲掾,伷,音冑。掾,丞相掾也,音于絹翻。伷並進文武之士,亮稱之曰︰「忠益者莫大於進人,進人者各務其所尚。今姚掾並存剛柔以廣文武之用,可謂博雅矣。願諸掾各希此事以屬其望。」希,慕也。鄭氏《周禮註》︰屬,合也。

帝聞諸葛亮在漢中,欲大發兵就攻之,以問散騎常侍孫資,資曰︰「昔武皇帝征南鄭,取張魯,陽平之役,危而後濟,事見六十七卷建安二十年。又自往拔出夏侯淵軍,事見六十八卷建安二十四年。數言『南鄭直爲天獄,中斜谷道爲五百里石穴耳,』言其深險,喜出淵軍之辭也。又,武皇帝聖於用兵,察蜀賊棲於山巖,視吳虜竄於江湖,皆橈而避之,數,所角翻。斜,余遮翻。谷,音浴。橈,如敎翻,曲也,屈也。不責將士之力,不爭一朝之忿,誠所謂見勝而戰,知難而退也。今若進軍就南鄭討亮,道旣險阻,計用精兵及轉運、鎭守南方四州,遏禦水賊,凡用十五六萬人,四州,荊、徐、揚、豫也。必當復更有所發興,復,扶又翻。天下騷動,費力廣大,此誠陛下所宜深慮。夫守戰之力,力役參倍。但以今日見兵見,賢遍翻。分命大將據諸要險,威足以震攝強寇,鎭靜疆埸,埸,音亦。將士虎睡,百姓無事。數年之間,中國日盛,吳、蜀二虜必自罷敝。」罷,讀曰疲。帝乃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