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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붕어와 등태후의 등장

solpee 2020. 1. 21. 09:21

 

紀40 孝和 元興 (乙巳, 105)

 

 

 4. 겨울, 12월 22일에 황제(27세)가 장락전에서 붕어하였다.

 애초 황제가 아들을 잃은 것이 전후로 10여 명이었는데, 후에 태어난 사람은 숨겨서 비밀리레 민간에서 양육하게 하였으니, 여러 신하들 가운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황제가 붕어하자 등황후는 마침내 민간에서 황제의 아들을 거두어 들였다. 장자 유승은 고질병이 있었고, 어린 아들 유융은 낳은 지 비로소 1백여 일이었지만 맞이하여 황태자로 삼았다가 그날 밤으로 황제에 즉위하게 되었다.

 4. 冬,十二月,辛未,帝崩于章德前殿。年二十七。初,帝失皇子,前後十數,後生者輒隱祕養於民間,羣臣無知者。及帝崩,鄧皇后乃收皇子於民間。長子勝,有痼疾;痼,音固。痼疾,堅久之疾也。長,知兩翻。少子隆,生始百餘日,少,詩照翻。迎立以爲皇太子,是夜,卽皇帝位。廢長立幼,卒以不終,爲羣臣疑勝疾非痼、周章有異謀張本。

 황후를 높혀서 황태후로 삼고, 태후가 조회에 임석하였다. 이때 새로이 걱정거리를 만났으므로 법으로 금지하는 조치가 아직 내려지지 않았는데, 궁중에서 커다란 보석상자가 없어졌다. 태후는 고문하고 싶었으나 반드시 죄 없는 사람이 연루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친히 궁궐에 있던 사람들을 살펴보고 얼굴색을 관찰하니 바로 머리를 수그리고 자복하였다.

 尊皇后曰皇太后,太后臨朝。朝,直遙翻。是時新遭大憂,法禁未設,宮中亡大珠一篋;篋,詰協翻,竹笥也。太后念欲考問,必有不辜,考問則下之獄,辭所連及,必有無辜而被逮者。乃親閱宮人,觀察顏色,卽時首服。首,式救翻。

 

 또 화제가 아끼던 길성이란 자가 있었는데,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함께 길성이 무고하는 일을 벌였다고 하여 액정에 내려 보내어 심문하니 말과 증거로 내세운 것이 분명하였다.

 又,和帝幸人吉成御者共枉吉成以巫蠱事,下掖庭考訊,辭證明白。幸人,常見幸於和帝者也。御者,卽侍者。辭,謂告者之辭。證,謂證佐也。下,遐稼翻。

 

 태후는 길성이 먼저 돌아가신 황제의 주위에 있어서 그녀에게 은혜를 배풀며 대우하여 평일에 오히려 악담을 하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에 와서 도리어 이와 같이 했다는 것은 사람의 정리로 보아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太后以吉成先帝左右,待之有恩,平日尚無惡言,今反若此,不合人情;謂婦人之情,有寵則上僭而生譖愬。吉成在先帝之時,后待之以恩,尚未嘗挾寵而有惡言加於后,今帝已晏駕,太后臨朝,不應反爲巫蠱。

 

 다시 스스로 불러 사실의 내용을 살펴보니, 과연 시중을 드는 자들이 한 짓이었으므로 성스럽고 분명하다고 탄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更自呼見實覈,果御者所爲,實覈者,審考其實也。莫不歎服以爲聖明。

 

 6. 낙양 현령인 광한 사람 왕한은 처신하는 것이 공평하고 올바르며, 분명하게 살펴서 간사하고 숨어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으며, 밖으로는 가혹한 정치를 하였으나, 안으로는 자비롭고 어진 마음을 품고 있었다.

 6. 雒陽令廣漢王渙,居身平正,能以明察發擿姦伏,擿,他狄翻。外行猛政,內懷慈仁。

 

 무릇 고르게 단안을 내린 것에 대하여서는 기쁘게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어서 경사에서는 신이라고 여기었는데, 이 해에 관직에 있으면서 죽으니 백성들은 시장이나 길에서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凡所平斷,斷,丁亂翻。人莫不悅服,京師以爲有神,是歲卒官,卒于官也。卒,子恤翻。百姓市【張:「市」作「帀」。】道,莫不咨嗟流涕。

 

 왕환의 영구가 서쪽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도중에 홍농을 지나게 되자 백성들과 서민들이 모두 길에 재물을 상에다 차려놓아서 관리가 그 연유를 물으니 모두 말하였다.

 渙喪西歸,道經弘農,民庶皆設槃案於路,以祭渙也,槃以盛祭物,案以陳槃,今野人之祭猶然。吏問其故,咸言:

 

 "평상시 쌀을 가지고 낙양에 도착하면 관리와 졸병들이 약탈하여 항상 반을 잃었습니다. 왕군께서 일을 보시면서부터는 억울하게 침탈되는 일을 보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와서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낙양의 백성들이 사당을 세우고, 시를 지으면서 매번 제사지낼 때마다 연주하고 노래하며 그에게 제물을 올렸다.

「平常持米到雒,爲吏卒所鈔,賢曰:鈔,掠也。余謂此言鈔者,非至如盜賊之鈔掠,特不以道而侵取之,故曰鈔;音楚交翻。恆亡其半,恆,戶登翻。自王君在事,在事,謂在官當事也。不見侵枉,故來報恩。」雒陽民爲立祠、作詩,每祭,輒弦歌而薦之。以所作詩被之弦歌也。爲,于僞翻。

 

 태후가 조서를 내렸다.

 "무릇 충성스럽고 훌륭한 관리는 구가가 잘 다스려지기를 위하여 있는 것이어서 그들에게 아주 부지런히 일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그러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적은데, 오늘 왕환의 아들 왕석을 낭중으로 삼아 수고하고 부지런하기를 권하노라."

 太后詔曰:「夫忠良之吏,國家之所以爲治也,治,直之翻。求之甚勤,得之至寡,今以渙子石爲郎中,以勸勞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