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鄧綏(등수)! 등귀인! 등황후!大寒 初候鷄始乳瑞香風2日(음12/27).

solpee 2020. 1. 21. 04:36

 

紀40 孝和 永元 14 (壬寅, 102)

 

 

 8. 애초 태부 등우가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면서 일찍이 멋대로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으니, 후세에 흐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의 아들인 호강교위 등훈에게 등수라는 딸이 있었는데.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으며 책을 좋아하였고, 항상 낮에는 부녀자로서의 할 일을 닦고 밤에는 경전을 외웠으므로 그 집안사람들이 그녀를 '諸生'이라고 불렀다.

 8. 初,太傅鄧禹嘗謂人曰:「吾將百萬之衆,未嘗妄殺一人,後世必有興者。」其子護羌校尉訓,有女曰綏,性孝友,好書傳,好,呼到翻。傳,柱戀翻。常晝修婦業,暮誦經典,家人號曰「諸生」。

 

 숙부 등해가 말하였다.

 "일찍이 천명의 사람을 살린 자의 자손은 봉작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의 형님이신 등훈은 알자가 되어 석구하의 수리를 하게하여 해마다 수천 명씩 살렸다. 천도는 믿을 만하니 집안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다."

 叔父陔曰:「嘗聞活千人者子孫有封。兄訓爲謁者,使修石臼河,歲活數千人,陔,柯開翻。石臼河事見四十六卷章帝建初三年。天道可信,家必蒙福。」

 

 등수는 뒤에 뽑혀서 궁중에 들어가 귀인이 되었는데 공손하고 정숙하고 조심하였으며 움직일 때에도 법도가 있었으므로 음후를 섬기게 되었는데, 같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을 접대하고 위무할 때에도 항상 자기를 이기고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었고, 비록 궁인이나 부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황제가 깊이 가상하게 생각하였다.

 綏後選入宮爲貴人,恭肅小心,動有法度,承事陰后,接撫同列,常克己以下之,謂克去有己之私,不欲上人也。下,遐稼翻。雖宮人隸役,皆加恩借,旣有以恩之,又假借以辭色。帝深嘉焉。

 

 일찍이 병이 들자 황제가 특별히 명령을 내려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궁걸에 들어와 친히 의약을 쓰게 하면서 일수에 제한을 두지 않게 하였지만 구인은 사양하며 말하였다.

 嘗有疾,帝特令其母、兄弟入親醫藥,不限以日數,貴人辭曰:

 

 "궁실은 지극히 중요한 곳이니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 궁궐 안에 오래 있게 한다는 것은 위로는 폐하께 사사로이 사람을 아낀다는 비난을 받게 할 것이며, 아래로는 천첩이 알 수 없는 비방을 받게 할 것이므로 위아래가 모두 바꾸어가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니 진실로 원치 않습니다."

「宮禁至重,而使外舍久在內省,外舍,猶言外家;內省,猶言內禁也。上令陛下有私幸之譏,私幸,謂私於所幸者。下使賤妾獲不知足之謗,上下交損,謂交有所損。誠不願也!」

 

 황제가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궁궐에 자주 들어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뒤인은 도리어 이것을 근심하는구려!"

 帝曰:「人皆以數入爲榮,數,所角翻;下同。貴人反以爲憂邪!」

 

 연회가 열릴 때마다 여러 희첩들은 경쟁적으로 스스로 몸치장을 하였지만 귀인은 홀로 질박한 것을 숭상하였는데 그의 옷에 음황후와 같은 색깔이 있으면 즉시 바꾸어 입었고, 만약에 동시에 황제를 알현할 때면 감히 바로 앉거나 나란히 서있는 일이 없었으니 걸어갈 때면 구부려 스스로를 낮게 하였고, 황제가 묻는 것이 있을 때마다 항상 미루다가 대답하여 감히 황후보다 먼저 말하지 않았다.

 每有讌會,諸姬競自修飾,貴人獨尚質素,其衣有與陰后同色者,卽時解易,若並時進見,見,賢遍翻;下同。則不敢正坐離立,賢曰:離,並也。《禮記》曰:離坐離立。行則僂身自卑,僂,力主翻,俯也。帝每有所問,常逡巡後對,不敢先后言。先,悉薦翻。

 

 음황후는 키가 작았고 가고 올 때 의례에 맞지 않을 경우가 있었는데, 그 주위에서는 입을 가리고 웃었지만 귀인은 홀로 걱정하고 즐거워하지 않으면서 이를 숨기고 꺼렸으며 마치 자기의 실수인 것처럼 하였다.

 陰后短小,舉指【章:甲十六行本「指」作「止」;乙十一行本同。】時失儀,左右掩口而笑,貴人獨愴然不樂,爲之隱諱,若己之失。樂,音洛。爲,于僞翻。

 

 황제는 귀인이 마음을 쓰고 몸을 굽히는 것을 알고 감탄해서 말하였다.

 "덕을 닦고자 하는 노력이 마침내 이와 같이 되었구나!"

 그 후 음황후에 대한 총애가 쇠퇴하여지자 귀인은 매번 황제에게 나아가서 알현할 때마다 번번이 몸이 불편하다고 사양하였다.

 帝知貴人勞心曲體,歎曰:「修德之勞,乃如是乎!」後陰后寵衰,貴人每當御見,御,進也。見,賢遍翻。輒辭以疾。

 

 그때 황제는 자주 황자를 잃어버렸는데, 귀인은 황제의 뒤를 이을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걱정하여 자주 재인을 선발하여 황제에게 바쳐서 황제의 속마음을 넓게 갖도록 하였다. 음황후는 귀인의 덕을 칭송하는 일이 날로 번성하자 이것을 심하게 질투하였는데, 황제가 일찍이 병이 나 드러누워서 매우 위독하게 되자, 음황후는 비밀리에 말하였다.

 "내가 뜻을 얻는 날에는 등씨 집안사람들을 다시는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

 時帝數失皇子,貴人憂繼嗣不廣,數選進才人以博帝意。西漢宮中爵號有美人、良人;若才人,蓋東都所置也。博,廣也。陰后見貴人德稱日盛,稱,尺證翻。深疾之;疾,與嫉同,妬也。帝嘗寢病,危甚,陰后密言:「我得意,不令鄧氏復有遺類!」復,扶又翻。

 

 귀인이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정성을 다하여 황후를 섬겼지만 끝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마땅히 좇아 죽어서 위로는 황제의 은덕에 보답하고, 그 다음으로 우리 집안이 입을 화를 풀어버리며, 맨 마지막으로 음씨로 하여금 '사람돼지'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듣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즉시 독약을 마시려고 하였다.

 貴人聞之,流涕言曰:「我竭誠盡心以事皇后,竟不爲所祐。今我當從死,從,才用翻。上以報帝之恩,中以解宗族之禍,下不令陰氏有人豕之譏。」人豕,卽人彘,事見十二卷惠帝元年。卽欲飲藥。

 

 궁녀인 조옥이라는 사람이 이를 강하게 금지시키며 거짓으로 말하기를 '마침 사자가 왔는데, 황상께서 이미 병이 다 나으셨다.' 고 하자 귀인은 마침내 중지하였다. 다음날 황상의 병이 과연 다 낳았다. 음황후를 폐위시키기에 이르자 귀인이 구해 줄 것을 청하였으나, 할 수 없게 되었고, 황제는 귀인을 황후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귀인은 더욱 병이 위독하다고 하면서 깊숙이 들어가서 스스로 문을 닫고 끊었다.

 宮人趙玉者固禁止之,因詐言「屬有使來,屬,之欲翻,會也。使,疏吏翻。上疾已愈」,貴人乃止。明日,上果瘳。廖,丑留翻。及陰后之廢,貴人請救,不能得;帝欲以貴人爲皇后,貴人愈稱疾篤,深自閉絕。

 

 겨울, 10월 24일 조서를 내려 귀인 등씨를 세워서 황후로 삼았는데, 황후는 사양하다가 부득이하게 된 뒤에 즉위하였다. 여러 군과 봉국에서 공물을 바쳤으나 모두 금지하고, 받지를 못하게 영을 내리고, 세시로 다만 종이와 먹만을 공급하게 할 뿐이었다.                                                   

 冬,十月,辛卯,詔立貴人鄧氏爲皇后;后辭讓,不得已,然後卽位。郡國貢獻,悉令禁絕,漢郡國貢獻,進御之外,別上皇后宮。歲時但供紙墨而已。毛晃曰:楮籍不知所始,後漢蔡倫以魚網、木皮爲紙,俗以爲紙始於倫,非也。按《前書‧外戚傳》已有赫蹏紙矣。墨,膠煤以爲之。

 

 황제가 매번 등씨들에게 관직이나 작위를 주려고 하였지만 황후가 번번이 애원하며 겸손하여 양보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한 연고로 그의 오빠 등즐은 끝내 황제가 살아있을 때에는 호분중랑장에 지나지 않았다.

 帝每欲官爵鄧氏,后輒哀請謙讓,故兄騭終帝世不過虎賁中郎將。騭,職日翻。賢曰:《東觀記》:「騭」作「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