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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초의 사망. 大寒節(23:54)初候鷄始乳瑞香風初日(음12/26).

solpee 2020. 1. 20. 16:00

 

紀40 孝和 永元 14 (壬寅, 102)

 

 

 7.반초는 오랫동안 뚝 떨어진 지역에 있었고, 나이도 늙어 고향을 생각하여 편지를 올려 돌아오기를 빌었다.

 "신 반초는 감히 주천군까지 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마는 다만 옥문관 안쪽으로 들어가서 살기를 원합니다. 삼가 아들 반용을 파견하여 안식에서 바칠 물건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요새 지역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신 반초가 살아있을 때 반용에게 중국의 땅을 눈으로 직접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7. 班超久在絕域,超始出西域,見四十五卷明帝永平十六年。年老思土,上書乞歸曰:「臣不敢望到酒泉郡,但願生入玉門關。酒泉郡,在雒陽西四千七百里。賢曰:玉門關,屬敦煌郡,今沙州也,去長安三千六百里,關在敦煌縣西北。酒泉郡,今肅州也,去長安二千八百五十里。謹遣子勇隨安息獻物入塞,及臣生在,令勇目見中土。」

 

 조정에서 오래되어도 회보가 없자 반초의 누이 조대가(반소로 부풍인 조수에게 출가 박학다식하여 후궁교수로 부임하였다.)가 편지를 올려서 말하였다.

 朝廷久之未報,超妹曹大家超妹昭,嫁扶風曹壽,博學高才,有節行法度。帝數召入宮,令皇后諸貴人師事焉,號曰大家。家,今人相傳讀曰姑。又據《皇后紀》,沖帝母虞貴人,梁冀秉政,抑而不加爵號,但稱大家而已。則大家者,宮中相尊之稱也。上書曰:

 

 "만이들의 성품은 패역하여 늙은이를 모욕합니다. 반초는 조석 간에 따으로 들어갈 형편인데도 오랫동안 그를 대신할 사람을 보지 못하였으니, 간사한 무리들이 나타날 근원을 열어 반역하고 반란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까 걱정입니다.

「蠻夷之性,悖逆侮老;悖,蒲內翻,又蒲沒翻。而超旦暮入地,久不見代,恐開姦宄之原,生逆亂之心。

 

 그러나 경과 대부들은 모두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 먼 훗날까지 고려하려고 하지 않으니, 만약에 갑자기 사건이라도 터지는 날에는 반초의 기력이 약해져서 마음먹은 대로 좇을 수 없게 된다면, 위로는 국가에서 여러 세대를 쌓아온 공로에 손해를 끼치고, 아래로는 충성스런 신하가 온 힘을 다하여 이룩한 쓰임을 버리는 것이 되니 진실로 가슴 아픈 일이라 할 것입니다.

 而卿大夫咸懷一切,莫肯遠慮,如有卒暴,卒,讀曰猝;下同。超之氣力不能從心,便爲上損國家累世之功,下棄忠臣竭力之用,誠可痛也!

 

 그러므로 반초는 만 리나 떨어진 밖에서 정성스런 마음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고생스럽고 급한 상황을 진술하였으며, 목을 길게 늘이고 멀리 바라보며 기다린 지가 오늘까지 3년이 되었습니다마는, 아직도 조정에서 살펴보시는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故超萬里歸誠,自陳苦急,延頸踰望,賢曰:踰,遙也,高祖踰謂黥布曰:何苦而反?余按《前書》,當作「隃」,讀曰遙,傳寫誤作「踰」。三年於今,未蒙省錄。省,悉景翻。

 

 첩이 가만히 듣건대 옛날에는 15세에 무기를 받았다가 60세가 되면 이를 돌려보내며 또한 휴식하는 기간에는 군대의 직책을 맡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첩은 죽음을 무릅쓰고 반초를 위하여 그의 슬픈 사정을 헤아려 달라고 요구하며, 반초가 여생 동안에 한 번이라도 살아서 돌아와 다시금 궁궐의 뜰을 보고, 국가로 하여금 먼 곳에 대한 염려를 없게하고, 서역에도 갑자기 나타나는 걱정거리를 없애며, 반초는 문왕이 죽은 사람의 뼈를 장사지낸 것과 같은 은덕과 전자방이 늙은 말을 애달프게 생각하였던 은혜를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妾竊聞古者十五受兵,六十還之,賢曰:《周禮‧鄕大夫職》曰:國中七尺以及六十有五,皆征之。征,謂賦稅從征役也。《韓詩外傳》曰:二十行役,六十免役;與《周禮》國中同,卽知一與《周禮》七尺同。禮,國中六十免役,野卽六十有五,晚於國中五年。國中七尺從役,野六尺,卽是野又早於國中五年。七尺,謂二千;六尺,卽十五也。上言十五受兵,據野外爲言;六十還之,據國中爲說也。亦有休息,不任職也。任,音壬。故妾敢觸死爲超求哀,匄超餘年,爲,于僞翻。賢曰:匄,乞也。一得生還,復見闕庭,使國家無勞遠之慮,西域無倉卒之憂,超得長蒙文王葬骨之恩,《新序》曰:周文王作靈臺,掘地得死人之骨,王曰:「更葬之!」吏曰:「此無主矣。」文王曰:「有天下者,天下之主也,有一國者,一國之主也;寡人固其主,又安求之主!」遂更葬之。天下皆曰:「文王賢矣,澤及朽骨,而況於人乎!」子方哀老之惠。」賢曰:田子方,魏文侯之師也,見君之老馬棄之,曰:「少盡其力,老而棄之,非仁也。」於是收而養之。

 

 황제는 이 말에 감동하여 마침내 반초를 징소하여서 돌아오게 하였다.

 8월에 반초가 낙양에 이르자 벼슬을 주어 사성교위로 삼았지만 9월에 죽었다.

 반초가 징소되자 무기교위 임상을 대신 도호로 삼았다. 임상이 반초에게 말하였다.

 帝感其言,乃徵超還。八月,超至雒陽,拜爲射聲校尉;九月,卒。《考異》曰:《本傳》稱超十二年上疏,十四年至雒陽。而妹昭上書曰:「延頸踰望,三年於今。」《註》引《東觀記》曰:「安息遣使獻大雀、師子,超遣子勇隨入塞。」按《帝紀》:「十三年,安息國入貢」,袁《紀》載超書亦在十三年。今幷置其書於此。袁《紀》又云「超到數月薨」,今從《本傳》。

超之被徵,被,皮義翻。以戊己校尉任尚代爲都護。尚謂超曰:

 

 "군후께서는 외국에 30년간 계셨는데, 소인이 오람되게도 군후의 뒤를 잇게 되어 책임은 중하지만 생각은 얕으니, 마땅히 이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십시오."

 반초가 말하였다.

「君侯在外國三十餘年,而小人猥承君後,任重慮淺,宜有以誨之!」超曰:

 

 "나이가 많아 늙으면 지혜를 잃게 마련입니다. 그대는 자주 높은 지위를 감당하였었으니, 어찌 이 반초가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부득이하여 꼭 말씀드려야 한다면 바라건대 어리석은 말을 올리게 해주십시오. 요새 밖에 나가있는 관리와 병사들은 본래 효도하거나 순종하는 자손들이 아니고 모두가 죄나 허물을 가지고 변경에 있는 둔전에 귀양 와서 보충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만이들은 새나 짐승 같은 마음을 품고 있어서 기르기가 어려워 실패하기 쉽습니다.

「年老失智。君數當大位,數,所角翻。豈班超所能及哉!必不得已,願進愚言:塞外吏士,本非孝子順孫,皆以罪過徙補邊屯;而蠻夷懷鳥獸之心,難養易敗。易,以豉翻。

 지금 그대의 성격은 아주 엄격하고 급한데 물이 맑으면 큰고기는 없게 되고, 살펴보는 정치를 하면 아랫사람들이 화합할 수가 없으니 마땅히 호탕하면서도 간단하고 쉽게 일을 하며 작은 일을 하며 작은 허물은 관대하게 처리하면서 대체적인 줄거리만 관장하면 됩니다."

 今君性嚴急,水清無大魚,察政不得下和,《家語》:孔子曰:水至清則無魚,人至察則無徒。宜蕩佚簡易,易,以豉翻。寬小過,總大綱而已。」

 

 반초가 가자 임상이 사사롭게 친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반군이 당연히 기이한 계책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지금 말한 것을 보니 평범할 뿐이군."

 임상이 뒤에 가서 끝내 변경 지역의 화평한 상태를 일어버려서 반초가 말한 것 처럼 되었다.

 超去,尚私謂所親曰:「我以班君當有奇策,今所言,平平耳。」尚後竟失邊和,如超所言。爲任尚徵還、漢失西域張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