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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인 송귀인의 복귀!大寒節(23:54)初候鷄始乳瑞香風初日(음12/26).

solpee 2020. 1. 19. 16:37

 

紀40 孝和 永元 9 (丁酉, 97)

 

 

 11. 9월 28일 양귀인을 추존하여 황태후로 하였고, 시호를 공회라고 하였으며, 추가로 상제를 다시 처리하였다. 겨울, 10월 19일에 양태후와 그의 언니 대귀인을 서릉으로 옮겨 장사 지냈다. 번조를 발탁하여 우림좌감으로 삼았다.

 11. 9月, 甲子,追尊梁貴人爲皇太后,諡曰恭懷,追復喪制。冬,十月,乙酉,改葬梁太后及其姊大貴人于西陵。西陵,蓋以其地在敬陵之西,故稱西陵,猶薄太后陵在霸陵南,因謂之南陵也。賢曰:初,后葬有闕,故改葬。擢樊調爲羽林左監。

 

 황태후의 아버지 양송에게 추가로 시호를 책봉하여 포친민후로 삼았으며, 사자를 파견하여 그의 영구를 영접하여  회공황후의 능 옆에 장사지냈다. 양송의 처자를 불러 돌아오게 하고,그의 아들 양당을 책봉하여 낙편후로 삼고, 양당의 동생 양옹을 승지후로 삼고, 양옹의 동생 양적을 선보후로 삼았는데, 지위는 모두 특진으로 하였으며, 상으로 내려준 것이 거만을 헤아렸고, 총애하고 대우하는 것이 당시에 빛났으니 양씨 집안은 이로부터 번선하게 되었다.

 追封諡皇太后父竦爲褒親愍侯,《諡法》:在國逢難曰愍。遣使迎其喪,葬於恭懷皇后陵旁。徵還竦妻子;封子棠爲樂平侯,樂平,侯國,屬東郡,故清縣也,章帝更名。棠弟雍爲乘氏侯,乘氏,侯國,屬濟陰郡,春秋之乘丘也。乘,繩證翻。雍弟翟爲單父侯,單父,音善甫。位皆特進,賞賜以巨萬計,寵遇光於當世,梁氏自此盛矣。

 

 청하왕 유경이 처음으로 자기 어머니 송귀인의 무덤을 참배하게 해달라고 감히 요구하니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고, 태관에게 조서를 내려 사시로 제사지내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게 하였다. 유경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清河王慶始敢求上母宋貴人冢,宋貴人冢,在雒陽城北樊濯聚。上,時掌翻。帝許之,詔太官四時給祭具。慶垂涕曰:

 

 "살아계실 때에는 비록 공양을 받으시지 못하였는데, 끝내는 제사를 받들 수 있게 되었으니, 제 개인이 원하는 것이 충족되었습니다."

 사당을 짓겠다고 청구하고 싶었으나, 공희황후와 같게 하려한다는 혐의를 받을까 스스로 걱정이 되어 끝내 감히 말하지 못하였고,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눈물을 보이며 일생의 한으로 생각하였다.

「生雖不獲供養,供,俱用翻。養,羊尚翻。終得奉祭祀,私願足矣!」欲求作祠堂,恐有自同恭懷梁后之嫌,遂不敢言,常泣向左右,以爲沒齒之恨。齒,年也。

 

 뒤에 가서 말씀을 올렸다.

 "외조모 왕씨께서 연로하니, 낙양에 와서 요양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이에 송씨에게 조서를 내려서 모두 경사로 돌아오게 하였고, 유경의 오삼촌인 송연, 송준, 송개, 송섬 등에게 벼슬을 제수하여 모두 낭으로 삼았다.

 後上言:「外祖母王年老,乞詣雒陽療疾,」於是詔宋氏悉歸京師,宋氏歸故郡,事見四十六卷章帝建初七年。除慶舅衍、俊、蓋、暹等皆爲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