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馬太后의 節儉! 小寒節仲候鵲始巢山茶風末日又末候雉始雊水仙風初日(음12/21).

solpee 2020. 1. 14. 17:54

 

紀38 孝章帝 建初 2年 (丁丑, 77)

 

 

 4. 황상이 여러 외삼촌들에게 작위를 주려고 하였으나 태후가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 큰 가뭄을 만나자 이 일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이 외척에게 봉작을 하지 않은 연고라고 하였고, 유사는 옛 법전에 의거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태후가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4. 夏,四月,上欲封爵諸舅,太后不聽。會旱,言事者以爲不封外戚之故,有司請依舊典。賢曰:漢制,外戚以恩澤封侯,故曰舊典。太后詔曰:

 

 "무릇 이 일에 관하여 말하는 자는 모두 짐에게 아첨하여 복을 얻으려는 것일 뿐이다. 옛날에 왕씨 집안에서 다섯 명의 후를 같은 날 모두 책봉 받는 일이 있었는데, 노란 안개가 사방을 꽉 메웠지 단비가 내려 이 일애 감응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凡言事者,皆欲媚朕以要福耳。要,一遙翻。昔王氏五侯同日俱封,黃霧四塞,事見三十卷成帝建始元年。塞,悉則翻。不聞澍雨之應。澍,音注。

 

 무릇 외척들이 귀하고 번성되게 되면 나라가 기울어져 넘어지지 않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므로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외삼촌을 막고 신중하셔서 국가의 기밀 사항을 담당하는 지위에 있지 않게 하였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나의 아들들은 먼저 돌아가신 황제의 아들과 같을 수 없다.' 고 하셨는데, 지금 유사들은 어찌하여 마씨를 음씨에 비교하려 하는가!

 夫外戚貴盛,鮮不傾覆;鮮,息淺翻。故先帝防愼舅氏,不令在樞機之位,又言『我子不當與先帝子等』,事見上卷永平十五年。今有司柰何欲以馬氏比陰氏乎!

 

 또 음위위의 경우 천하 사람들이 다 그를 칭찬하였는데 궁궐에서 심부름하는 자가 그 집 문 앞에 이르면 신발을 신지도 못하고 나와 맞이하였으니, 이것이 거백옥이 취하였던 공경하는 태도①인 것이다. 신양후(陰就)가 비록 대단히 강직하고 강한 사람이지만 조금은 이치를 잃고 있다. 그러나 방책과 지략을 갖고 있고 근거를 가지고 말하고 논술하는 데서는 한 조당에서 그에 견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且陰衞尉,天下稱之,省中御者至門,出不及履,此蘧伯玉之敬也;衞尉,興也。省中,禁中也。御者,內人也。蘧伯玉,衞賢大夫。蘧,求於翻。新陽侯雖剛強,微失理,然有方略,據地談論,一朝無雙;新陽侯,就也。賢曰:新陽縣屬汝南郡,故城在今豫州眞陽縣西南。

 

 또 원록정후(陰識)는 용맹하고 진실로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니 이 세 사람은 천하 사람들이 뽑은 신하인데, 어찌 이들을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마씨가 음씨를 좇아간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原鹿貞侯,勇猛誠信;原鹿侯,識也。原鹿縣,屬汝南郡。此三人者,天下選臣,豈可及哉!馬氏不及陰氏遠矣。

 

 나는 재주가 없고 밤낮으로 숨을 죽이고 있으면서 항상 먼저 돌아가신 황후의 법을 훼손시킬까 두려워하고 있으며, 터럭 같은 정도의 죄가 있다고 하여도 나는 용서하지 못하며, 이런 말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지만 친속들이 이를 범하는 것을 그치지 않으니, 장사를 치르고 봉분을 만들었는데도 또한 때맞추어 깨닫지 못하니, 이는 내가 이를 말하여도 권위를 세워주지 않은 것이며 눈과 귀를 막은 것이다.

 吾不才,夙夜累息,息,氣一出入之頃;屛氣者累息乃一舒氣。常恐虧先后之法,有毛髮之罪吾不釋,言之不捨晝夜,而親屬犯之不止,治喪起墳,又不時覺,治,直之翻。是吾言之不立而耳目之塞也。塞,悉則翻。

 나는 천하의 어머니가 되어서 몸에 대련(보통 옷)을 입고서는 먹는 것에서 입에 맞는 것을 구하지 않으며, 내 주위의 사람도 다만 백포를 착용하고 향훈이 없는 장식을 달고 있는 것은 몸소 아랫사람들을 이끌고자 하여서이다.

 吾爲天下母,而身服大練,賢曰:大練,大帛也。杜預註《左傳》曰:大帛,厚繒也。食不求甘,左右但著帛布,無香薰之飾者,欲身率下也。著,側略翻。

 

 친정 집안사람들이 이를 보면 마땅히 마음 아파하고 스스로 단속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웃으면서 말하기를 '태후는 원래 검소한 것을 좋아하는 분이야.' 라고 한다. 전에 탁룡원의 문을 지나가다가 친정집에 와서 문안하는 사람을 보앗는데, 수레는 물 흐르는 것 같았고, 말은 물속에 노니는 용과 같았으며, 창두가 입은 옷은 녹색 단의였고, 옷깃과 소매는 아주 흰색이었다. 내 수레를 끄는 사람을 돌아보니, 그는 한참 미치지 못하였다.

 以爲外親見之,當傷心自敕;但笑言『太后素好儉』。好,呼到翻。前過濯龍《續漢志》:濯龍,園名,近北宮。門上,見外家問起居者,車如流水,馬如游龍,倉頭衣緣褠,領袖正白,賢曰:褠,臂衣。今之臂褠,以縛左右手,於事便也。余據字書,臂鞲之鞲從革,褠此從衣,釋單衣也,皆音古侯翻。領袖正白,言其新潔無垢污也。衣,於旣翻。顧視御者,不及遠矣。

 

 일부러 그들을 견책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고 다만 매년 주는 용품을 끊었을 뿐이었으며 아무 말을 하지 않고도 그들의 마음을 부끄럽게 하려고 기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게을러서 나라를 걱정하고 집안을 잊어버리는 염려를 하는 일이 없었다. 신하를 알아보는 데는 임금만한 사람이 없는데 하물며 친척의 경우에서이랴! 내가 어찌 위로는 먼저 돌아가신 황제의 뜻에 죄를 짓고, 아래로는 선인들이 남긴 덕을 훼손하여 서경이 패망한 화를 다시금 이어받을 것인가?"

 고집스럽게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故不加譴怒,但絕歲用而已,冀以默愧其心;猶懈怠無憂國忘家之慮。懈,古隘翻。知臣莫若君,況親屬乎!吾豈可上負先帝之旨,下虧先人之德,重襲西京敗亡之禍哉!」賢曰:西京外戚,呂祿、呂產,竇嬰,上官桀、安父子,霍禹等皆被誅。重,直龍翻。固不許。

 

 황제가 이 조서를 살펴보고 슬픔에 잠겨 탄식하고서 다시금 청하여 말하였다.

 "한나라가 일어나고 나서 외삼촌들을 후작에 책봉하는 것은 황제의 아들을 왕으로 삼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태후께서 진실로 겸허하심을 갖고 계시다 하여 어찌 신만이 세 분의 외삼촌에게 은혜를 베풀지 못하게 하십니까? 또 위위께서는 연세도 높으시고, 두 분의 교위께서는 큰 병환을 갖고 계신데 만약에 거리끼지 못할 일이 발생한다면 신으로 하여금 뼈에 사무치는 한스러움을 오래 품게 할 것입니다. 의당 길할 때가 되었으니 이를 잡아두지 마십시오."

 帝省詔悲嘆,復重請曰:省,悉景翻。復,扶又翻。重,直用翻。「漢興,舅氏之封侯,猶皇子之爲王也。太后誠存謙虛,柰何令臣獨不加恩三舅乎!且衞尉年尊,兩校尉有大病,衞尉,太后兄廖;兩校尉,兄防、兄光也。校,戶敎翻。如令不諱,使臣長抱刻骨之恨。宜及吉時,不可稽留。」漢封爵羣臣皆涓吉。

 

 태후가 회답하였다.

 "내가 반복하여 이를 생각하여 보았는데, 이러한 나의 조치는 양쪽을 다 좋게 하려는 것이엇지 어찌 헛되이 겸양하였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 황제로 하여금 외삼촌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였다는 비판을 받게 하려고 한 것이겠소?

 太后報曰:「吾反覆念之,思令兩善,兩善,謂國家無濫恩,而外戚亦以安全也。豈徒欲獲謙讓之名而使帝受不外施之嫌哉!以恩澤封爵外家爲外施也。施,式智翻。

 

 옛날에 두태후가 왕황후의 오빠에게 작위를 주려고 하자 승상인 조후가 말하기를 '고조가 약속하기를 군사적인 공로를 세운 사람이 아니면 후작에 책봉할 수 없다고 하였다.' 고 하였소.

 지금 마씨는 나라에 아무런 공로를 세우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음씨나 곽씨 같이 중흥을 한 시기의 황후와 같겠소! 항상 부귀한 집안을 보면 녹봉과 직위가 중첩되었으니, 마치 1년에 두 번 열매를 맺는 과일 나무가 반드시 상하게 되는 것과 같소.

 昔竇太后欲封王皇后之兄,丞相條侯言:『高祖約,無軍功不侯。』事見十六卷景帝中三年。今馬氏無功於國,豈得與陰、郭中興之后等邪!常觀富貴之家,祿位重疊,猶再實之木,其根必傷。文子曰︰再實之木根必傷,掘臧之家後必殃。重,直龍翻。

 

 또 사람들이 후작에 책봉되기를 원하는 까닭은 위로는 제사를 모시고, 아래로는 따뜻하고 배부르게 먹고자 할 뿐이오. 지금 제사는 태관에서 내려주는 것을 받고있고, 입고 먹는 것은 어부에서 넉넉히 공급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어찌 만족할 수 없고 반드시 한 개의 현을 얻어야 한단 말이오. 나는 이를 아주 충분히 걔산한 것이니 의심을 갖지 마시오!

 且人所以願封侯者,欲上奉祭祝,下求溫飽耳;今祭祀則受太官之賜,衣食則蒙御府餘資,自西都以來,皇后家祀其父母,太官供具。御府令,掌中衣服及補澣之屬;飲食則太官主之。此言衣食皆資於御府,槪言之也。斯豈不可足,而必當得一縣乎!吾計之孰矣,古字孰、熟通。勿有疑也!

 

 무릇 지극히 효성스러운 행동이란 부모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오. 지금 자주 이변을 만나고, 곡식 값도 여러 배나 올라서 밤낮으로 걱정근심이 되어 편안히 낮거나 눕지 못하는데 외가 사람들에게 직위를 책봉하려는 일을 먼저 하려고 하니, 이는 자애로운 어미의 부지런함을 어기는 것이오!

 夫至孝之行,安親爲上。揚子曰:孝莫大於寧親,寧親莫大於四表之驩心。行,下孟翻。今數遭變異,數,所角翻。穀價數倍,憂惶晝夜,不安坐臥,而欲先營外家之封,違慈母之拳拳乎!賢曰:拳拳,猶勤勤也,音權。

 

 나는 평소 강하고 급하여 가슴속에서는 기침병이 들었으니 숨을 고르게 하지 아니하면 안되오. 아들이 아직 관례를 치르게 전에는 부모로 말미암앗고, 이미 관례를 치르고 성인이 되면 아들의 뜻대로 실천하는 것이오.

  吾素剛急,有匈中氣,不可不順也。匈中氣,今所謂上氣之疾。匈,與胸同。子之未冠,由於父母,已冠成人,則行子之志。冠,古玩翻。

 

 황제를 생각하면 사람들의 군주이고, 나는 아직도 삼년상을 넘기지 않앗던 연고로, 그리고 내 스스로의 가족에 관한 일이었으니 그러므로 이를 혼자 처리하려고 하였던 것이오. 만약에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고 변경 지역이 깨끗하고 고요해 진다면 그런 다음에 그대의 뜻대로 시행하도록 하시오. 나는 다만 사탕이나 입에 물고 손자들과 놀면서 다시는 정사에 관여하지 않겠소."

 황상이 이에 중지하였다.

 念帝,人君也;吾以未踰三年之故,自吾家族,故得專之。若陰陽調和,邊境清靜,然後行子之志;吾但當含飴弄孫,《方言》曰:飴,餳也,宋、衞之間通語。不能復關政矣。」關,豫政也。復,扶又翻。上乃止。

 

 테후가 일찍이 삼보 지역에 조서를 내렸었다. 여러 마씨들과 혼인한 인척의 무리들 가운데 군이나 현에 청탁을 하거나 관리들의 다스림에 간여하여 어지럽힌 자를 법으로 처리하고 보고하게 하였다.

 태부인(馬太后 친정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는데 봉분이 조금 높아서 태후가 말하려고 하자 오빠 마료 등이 즉시 깎아서 높이를 줄였다. 그 외에 친족 가운데 겸손하고 평소 의로운 행동을 하는 자에게는 바로 따뜻한 말을 해주고 상으로 재물과 지위를 주었다.

 太后嘗詔三輔:諸馬婚親有屬託郡縣、干亂吏治者,以法聞。繩之以法而奏聞也。屬,之欲翻。治,直吏翻。太夫人葬起墳微高,太夫人,太后母也。漢列侯墳高四丈,關內侯以下至庶人有差。太后以爲言,兄衞尉廖等卽時減削。其外親有謙素義行者,行,下孟翻。輒假借溫言,賞以財位;

 

 만약에 실오라기 같은 흠집이라도 있으면 먼저 엄격한 얼굴색을 드러내고 그런 다음에 견책을 내렸다.

 그 수레와 의복을 아름답게 하고 법도를 준수하지 않는 자는 바로 친족의 호적에서 끊어버리고 시골 고향으로 보냈다. 광평왕·거록왕·낙성왕은 수레와 타는 것이 소박하엿고, 금은으로 장식한 것이 없었다. 황제가 태후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바로 각 사람에게 5백만 전씩을 하사하였다.

 如有纖介,則先見嚴恪之色,見,賢遍翻。然後加譴。其美車服、不遵法度者,便絕屬籍,遣歸田里。絕外戚之屬籍也。廣平、鉅鹿、樂成王,車騎朴素,無金銀之飾,廣平王羨,鉅鹿王恭,樂成王黨,皆明帝子。帝以白太后,卽賜錢各五百萬。

 

 이에 안팎이 모두 이러한 덕화를 좇아서 입는 의복이 하나같았다. 여러 집안들은 모두 황공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영평시대보다 배나 되었다. 또한 직실을 설치하고 탁룡원에 누에를 치게 하고 자주 가서 살펴보는 것을 오락으로 삼았다. 항상 황제와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도와 정사에 관하여 토론하였으며, 소왕들에게 《논어》와 경서를 가르쳤고, 자기 일생을 서술하며 하루 종일 온화하게 지냈다.

 於是內外從化,被服如一;被,皮義翻。諸家惶恐,倍於永平時。置織室,蠶於濯龍中,《續漢志》:濯龍監,屬鉤盾令。本《註》曰:濯龍,亦園名,近北宮。數往觀視,以爲娛樂。數,所角翻。樂,音洛。常與帝旦夕言道政事及敎授小王《論語》經書,小王,諸王年尚幼,未就國者。述敍平生,雍和終日。

 

 마료는 자기가 갖고 있는 좋은 지위와 사업을 끝까지 잘 보존하기 어려울까 염려되어 상소문을 올려 덕정을 완성하도록 권고하며 말하였다.

 "옛날 원제께서 삼복관(황제 의복실)을 철페하셨고, 성제는 세탁한 옷을 입었으며, 애제는 악부를 철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치하는데 드는 비용이 그치지 아니하여 쇠퇴하고 어지러움에 이르렀던 것은 백성들이란 실천하는 것을 보고 좇지, 말을 듣고 좇지 않기 때문입니다.

 馬廖慮美業難終,上疏勸成德政曰:「昔元帝罷服官,事見二十八卷初元五年。成帝御浣衣,言服浣濯之衣也。哀帝去樂府,事見三十三卷綏和二年。去,羌呂翻。然而侈費不息,至於衰亂者,百姓從行不從言也。《書》曰:違上所命,從厥攸好。行,下孟翻。

 

 무릇 정치를 고치고 풍속을 바꾼다 하여도 근본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하는 말을 보면 '오나라의 왕이 검객을 좋아하게 되니 백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다친 흔적이 있고, 초왕은 가는 허리를 가진 여자를 좋아하게 되니 궁중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 고 하였습니다.

 夫改政移風,必有其本。《傳》曰:『吳王好劍客,百姓多創瘢;傳,直戀翻。創,初良翻。瘢,蒲官翻,痕也。好劍客,蓋指吳闔閭也。楚王好細腰,宮中多餓死。』《墨子》曰:楚靈王好細腰,而國多餓人。

 

 장안에서도 말하기를 '성 안에서 상투를 높게 틀기를 좋아하면 사방에서는 한 자로 높이게 되고, 성 안에서 넓은 눈썹을 좋아하면 사방에서는 또 눈썹이 얼굴의 반쯤이나 차지하게 그리며, 또 성 안에서 큰소매 달린 옷을 좋아하면 사방에서는 소매를 한 필이나 되게 만든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이 농담 같지만 실제 사실입니다.

 長安語曰:賢曰:當時諺語。『城中好高結,四方高一尺;結,讀曰髻。城中好廣眉,四方且半額;城中好大袖,四方全匹帛。』斯言如戲,有切事實。

 

 앞서 제도를 내려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조금씩 실천하지 아니하니 비록 어떤 관리가 법을 제대로 받들지 않기도 하였겠지만 정말로 실천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경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前下制度未幾,後稍不行;未幾,言未幾時也。幾,居豈翻。雖或吏不奉法,良由慢起京師。

 

 지금 페하께서 평소 간소하게 생활하는 곳에서 편안하게 계시는데, 이는 끝까지 가게 한다면 사해에서 그 덕을 칭송하고, 그 명성이 천지를 훈도하고, 신명함도 통할 수 잇을 것인데, 하물며 법령을 실천하는 데서이겠습니까!"

 태후가 이 내용을 깊이 받아들였다.

 今陛下素簡所安,發自聖性,賢曰:言儉素簡約,后之所安。誠令斯事一竟,竟,猶終也。則四海誦德,聲薰天地,賢曰:薰,猶蒸也,言芳聲薰天地也。神明可通,況於行令乎!」太后深納之。

 

 ①.蘧伯玉,衞賢大夫。거백옥은 위의 현대부다. 위 영공과 그의 부인 남자와 밤중에 앉아있는데, 밖에서 요란한 수레바퀴 소리가 나다가 궁궐 앞에서 그쳤다. 이를 듣고 남자가 이는 거백옥이 오는 소리라고 하였다. 영공이 그 이유를 물으니 거백옥은 아무도 없는데서 멋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밤중에라도 숨어 다니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