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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貴人德冠/마귀인의 덕은 넓고 관대하였다. 小寒節仲候鵲始巢山茶風3日(음12/19)

solpee 2020. 1. 13. 06:07

 

紀36 孝明帝 永平 3 (庚申, 60)

 

 

 2. 봄, 2월 갑자일(19)에 귀인 마씨를 세워 황후로 삼았고, 황제의 아들 유달을 태자로 삼았다.

 황후는 마원의 딸인데, 광무제시대에 뽑혀 태자궁으로 들어왔으며 음후를 잘 시봉하였고, 같은 반열에 있는 사람들을 맞이하면서도 예의를 갖추어서 위아래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니, 드디어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황제가 즉위하자 귀인(황후 다음 1급)이 되었다.

 2. 春,二月,甲子,立貴人馬氏爲皇后,皇子炟爲太子。賢曰:炟,音丁達翻。

后,援之女也,光武時,以選入太子宮,能奉承陰后,傍接同列,禮則脩備,上下安之,遂見寵異;及帝卽位,爲貴人。

 

 그때 황후의 전 어머니 언니의 딸인 가씨도 또한 뽑혀 들어와서 황제의 아들 유달을 낳았다. 황제는 황후에게서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기르도록 명령하며 말하였다.

 "사람이란 반드시 스스로 아들을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아끼고 기르는 것이 지극하지 않을까만 걱정하는 것이오."

 황후는 이에 마음을 다하여 양육하였는데, 수고하고 마음을 쓰는 것이 자기가 낳은 아이에게 하는 것보다 더하였다.

 時后前母姊女賈氏亦以選入,生皇子炟;帝以后無子,命養之,謂曰:「人未必當自生子,但患愛養不至耳!」后於是盡心撫育,勞悴過於所生。悴,秦醉翻。

 

 태자 역시 효성스러운 성격에 순박하고 돈독하여 모자간의 자애로움에 처음부터 끝까지 실오라기 하나와 같은 틈도 없었다. 황후는 항상 황제의 후사가 널리 퍼지지 않아서 주위 사람을 추천하여 가게 하면서도 마치 아직도 부족한 것처럼 걱정하였다. 후궁 가운데 나아가서 알현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매번 위로하며 받아들였고, 만약에 자주 총애를 받아서 불러들인 사람이 있으면 번번이 더욱 융성하게 대우했다.

 太子亦孝性淳篤,母子慈愛,始終無纖介之間。賢曰:纖介,猶細微也。間,隙也。間,古莧翻。后常以皇嗣未廣,薦達左右,若恐不及。後宮有進見者,每加慰納;若數所寵引,見,賢遍翻。數,所角翻;下同。輒加隆遇。

 

 유사가 장추궁(황후궁)을 세우라는 주청을 하자 황제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황태후가 말하였다.

 "마귀인의 덕은 후궁 가운데 제일이니 바로 그 사람이어야 하오."

 及有司奏立長秋宮,皇后宮謂之長秋宮。帝未有所言,皇太后曰:「馬貴人德冠後宮,冠,古玩翻。卽其人也。」

 

 황후는 이미 궁궐에서 황후의 자리에 있게 되고서도 더욱 스스로 겸손하고 정숙하였으며 책읽기를 좋아하였다. 항상 널따란 비단옷을 입었고, 치마에는 끝동을 달지 않았다. 초하루와 보름에는 여러 후궁과 공주 등의 여인들이 문안을 드리겠다고 청하였는데, 황후의 옷이 성글고 거친 것을 보고, 무늬가 있는 비단옷이라고 생각하였다가 다가가서 보고는 마침내 웃었다.

 后旣正位宮闈,愈自謙肅,好讀書。常衣大練,賢曰:大練,大帛也。杜預註《左傳》曰:大帛,厚繒也。好,呼到翻。衣,於旣翻。裙不加緣;緣,俞絹翻。朔望諸姬主朝請,朝,直遙翻。望見后袍衣疏粗,以爲綺縠,就視,乃笑。

 

 황후가 말하였다.

 "이 비단은 특히 염색을 하기에 매우 적당하였던 고로 이것을 사용한 것뿐이오."

 后曰:「此繒特宜染色,故用之耳。」

 

 여러 신하들이 상주한 일 가운데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황제는 자주 황후에게 물었고, 황후는 번번이 분석하고 해설하면서 이치에 따라 각기 그 실정에 맞도록 하였지만 그러나 집안의 사사로운 일로 정사에 간여한 일은 없었다. 황제는 이로 말미암아 총애하고 공경하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줄어들지 아니하였다.

 羣臣奏事有難平者,平,決也。難平,難決者也。帝數以試后,后輒分解趣理,各得其情,然未嘗以家私干政事。帝由是寵敬,始終無衰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