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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나가는 황제

solpee 2020. 1. 12. 17:52

紀36 孝明帝 永平 2 (己未, 59)

 

 

 3. 3월에 벽옹(대학)에 입석하여 처음으로 대사례(활쏘기로 인재선발)를 거행하였다.

 3. 三月,臨辟雍,初行大射禮。《儀禮》曰:大射之禮,王將祭射宮,擇士以助祭也。張虎侯、熊侯、豹侯,其制若今之射的也。

 겨울, 10월 임자일(5)에 황상이 벽옹에 행차하여 처음으로 양로예를 치렀는데, 이궁을 삼로로 삼고, 환영을 오경으로 삼았다. 삼로는 모두 좋은 저포로 된 도포를 입엇고, 진현관을 쓰고 옥장을 들었다. 오경도 또한 이와 같았지만 지팡이를 짚지는 않았다.

 冬,十月,壬子,上幸辟雍,初行養老禮;以李躬爲三老,桓榮爲五更。更,工衡翻。三老服都紵大袍,冠進賢,扶玉杖;紵,直呂翻。《說文》曰:紵,檾屬。績紵以爲美布,故曰都紵。《續漢志》:進賢冠,古緇布冠也,文儒者之服也。前高七寸,後高三寸,長八寸。公侯三梁,中二千石至博士兩梁,自博士以下至小史、私學弟子皆一梁。又,仲春之月,縣道皆案戶比民,民年始七十者授之以玉杖。玉杖,長七尺,端以鳩鳥爲飾。鳩者,不噎之鳥也,欲老人不噎。《爾雅翼》曰:刻玉爲鳩,置之杖端,謂之鳩杖,亦曰玉杖。五更亦如之,不杖。

 

 승여가 벽옹의; 예전에 도착하여 동상에 앉아서 사자를 파견, 안거로 삼로와 오경을 태학의 강당으로 모셨는데, 천자가 문 앞에서 이들을 영접하고 서로 예를 교환하였다.

 乘輿到辟雍禮殿,乘,繩證翻。御坐東廂,遣使者安車迎三老、五更於太學講堂,天子迎于門屛,交禮;

 

 조계(阼階: 東쪽 階段, 주인이 손님을 맞이 할때 주인은 동쪽 계단을 이용한다)에서부터 이들을 인도하니 삼로는 빈계(賓階: 至階로 손님이 이용하는 계단)에서부터 올라갔는데 계단에 올라가자 천자가 예법대로 읍하였다.

 道自阼階,道,讀曰導。三老升自賓階;至階,天子揖如禮。

 

 삼로가 계단에 오른 다음에 동쪽을 향해 서니, 삼공이 궤안을 차려놓고, 9경이 신발을 바르게 놓았으며, 천자는 친히 소매를 걷고 제사지낸 고기를 자르고 간장을 집어서 이들에게 드리고 나서 잔을 잡아 술로 입가심을 권하였는데 가시에 걸리지 말기를 먼저 축수하고, 밥이 목메이지 않기를 뒤에 축수하였다. 오경은 남쪽으로 향하여 앉았고, 삼공이 음식을 올렸는데 그 예도 또한 같았다.

 三老升,東面,三公設几,九卿正履,天子親袒割牲,執醬而饋,饋,進食也,醬,食味之主,故執之而饋。執爵而酳,酳,音胤,又士覲翻。祝鯁在前,祝饐在後。饐,一結翻,食窒氣不通。五更南面,三公進供,禮亦如之。賢曰:宋均曰:三老,老人知天地人之事者;五更,老人知五行更代事者。鄭康成曰:三老、五更,皆年老更事致仕者也;天子以父兄養之,示天下之孝弟也。名以三、五者,取象三辰、五星,天所以照明天下者。都布,布名。進賢冠,古緇布冠也,文儒者之服,前高七寸,後高三寸,長八寸。禮殿,先聖、先師也。阼階,東階,主階也;賓階,西階也。賢曰:醬,醢也;酳,漱也,所以潔口也。陸德明曰:以酒曰酳,以水曰漱。《音義隱》云:飯畢盪口也,音胤。老人食多鯁饐,故置人於前後祝之,令其不鯁饐也。都,布之美者也。進賢冠,古緇布冠也。玉杖,長七尺,端以鳩鳥爲飾,鳩者,不噎之鳥也,欲老人不噎。更,工衡翻。

 

 예를 마치자 환영과 그의 제자를 이끌어 강당으로 오르게 하였다. 황상이 스스로 강설하였고, 여러 유자들은 앞에서 경전을 들고 어려운 부분을 물었다. 관대진신(冠帶縉紳: 관, 대, 진신은 홀)을 한 자들로 교문을 둘러 쌌고 보고들은 사람이 억만 명을 헤아렸다.

 禮畢,引桓榮及弟子升堂,上自爲下說,賢曰:下說,謂下語而講說也。諸儒執經問難於前,難,乃旦翻。冠帶縉紳之人圜橋門而觀聽者,蓋億萬計。《漢官儀》曰:辟雍,四門外有水,以節觀者,門外皆有橋,觀者在水外,故云圜橋門也。圜,繞也。

 

 이에 조서를 내려 환영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삼로와 오경에게는 모두 2천 석의 녹봉으로 종신토록 그 몸을 봉양하게 하였다. 천하에 삼로주를 내렸는데, 한사람에게 술 1석과 고기 40근이었다.

 於是下詔賜榮爵關內侯;《考異》曰:《帝紀》載詔文,上言李躬而下獨封榮,似脫「躬」字。《榮傳》、袁《紀》,詔獨言桓榮,不及李躬,今闕疑。三老、五更皆以二千石祿養終厥身。賜天下三老酒,人一石,肉四十斤。

 

 황상은 태자 때부터 환영에게서 《상서》를 배웠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도 여전히 환영을 스승의 예로써 존경하였다. 일찍이 태상부에 행차하여 환영을 동면에 앉게 하고 궤안과 옥장을 두게 하였으며, 백관들과 환영의 문생 수백 명을 모아 놓고 황상은 친히 스스로 경서를 잡고 있었다. 제생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자리를 피하여 어려움을 드러냈으나, 황제는 겸손하게 말하였다.

 上自爲太子,受《尚書》於桓榮,及卽帝位,猶尊榮以師禮。嘗幸太常府,令榮坐東面,設几杖,會百官及榮門生數百人,門生,受業於門者也。上親自執業;執業,猶執經也。諸生或避位發難,發難,發疑難也。難,乃旦翻。上謙曰:

 

 "태사께서 여기 계시오."

 다 마치고나서 태관에서 공급하였던 것을 모두 태상의 집에 하사하였다.

 환영이 병으로 아플 때마다 황제는 번번이 사자를 보내 문안을 드리게 하였는데, 태관과 태의가 길에서 서로 쳐다볼 수 있을 정도였다. 위독해지자 은혜에 감사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작위와 식읍을 양보하여 반납하였다.

「太師在是。」旣罷,悉以太官供具賜太常家。榮每疾病,帝輒遣使者存問,太官、太醫相望於道。及篤,上疏謝恩,讓還爵土。

 

 황제는 그 집에 행차하여 기거하는 상황을 물었는데, 골목에 들어서자 수레에서 내려 경서를 가지고 앞으로 가서 환영을 위무하며 눈물을 흘렸고, 책상, 후장, 칼,  의복을 하사하고 오래 머물다가 떠났다.

 帝幸其家問起居,入街,下車,擁經而前,撫榮垂涕,賜以牀茵、帷帳、刀劍、衣被,良久乃去。

 

 이로부터 제후와 장군, 대부들이 병문안을 오면서 다시는 수레를 타고 문 앞에 이르지 아니하였고, 모두가 침상 아래서 절을 하였다.

 自是諸侯、將軍、大夫問疾者,不敢復乘車到門,復,扶又翻。皆拜牀下。

 

 환영이 죽으니 황제는 친히 복장을 상복으로 바꾸어 입고 장례식에 임석하여 영구를 보내고, 수산의 남쪽에서 무덤을 쓰도록 하사하였다

 榮卒,帝親自變服臨喪送葬,賜冢塋于首山之陽。賢曰:首陽山,在今偃師縣西北。

 

 자 환욱이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나 형의 아들 환범에게 양보하였다. 황제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마침내 환욱은 책봉하는 작위를 받았으나 모든 조세 수입은 그에게 주었다.

 황제는 환육을 시중으로 삼았다

 子郁當嗣,讓其兄子汎;帝不許,郁乃受封,而悉以租入與之。帝以郁爲侍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