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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吟/己亥 仲冬 子月 冬至 末候 水泉動5日(음12/11).

solpee 2020. 1. 3. 17:58

 

白頭吟 

                        卓文君(前175~前121)

 

 

皚如山上雪 / 머리 희기가 산 위의 눈 같고

皎若雲間月 / 밝가 구름사이의 달 같구나.

聞君有兩意 / 당신이 두 마음 품고 있음을 듣고

故來相決絶 / 그 일로 서로 헤어지려고 했지요. 


今日斗酒會 / 오늘 만나 말 술을 마시고

明旦溝水頭 / 내일 아침에 시궁창에 떨어져 

躞蹀御溝上 / 대궐 시궁창을 저벅저벅 걸어나와 

溝水東西流 / 시궁창 따라 동서로 갈라지겠지요.


凄凄復凄凄 / 서글프고 서러워라

嫁娶不須啼 / 시집간 여인네는 울일이 없을줄 알았는데

願得一人心 / 원컨대 한 마음 지닌 남자 만나

白頭不相離 / 백발이 되도록 헤어지지 않으려 했는데


竹竿何嫋嫋 / 대나무 줄기는 어이하여 하늘거리고

魚尾何簁簁 / 물고기 꼬리는 왜 이다지도 흔들리나요? 

男兒重意氣 / 사내는 의를 중히 여긴다는데

何用錢刀爲 / 어찌하여 돈을 낭비하려 하나요? 

 

 탁문군의 白頭吟樂府詩集相和歌辞에 실려 있다. 상화가사(漢代에 민가에서 부르던 노래)의 백두음은 이외에도 劉希夷代悲白頭翁(白頭吟/有所思), 李白의 백두음, 鲍照代白頭吟이 실려 있다.

탁문군의 白頭吟나라의 司馬相如(前179~前118)와 결혼해 살던 卓文君이 사마상여가 武陵의 여자를 첩으로 맞아들이려고 하자 원망하며 지은 곡이다. 사마상여는 이 노래를 듣고 무릉의 여자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한다. ※.司馬遷(前145? 又 前135~?).

 

 

 ※ 司馬相如(기원전 179~ 기원전 117) : 중국 前漢의 문학자이다. 成都 사람으로 자는 長卿이다. 景帝를 섬겼는데 경제는 상여의 특기인 辭賦를 싫어해서, 그 곳을 떠나 孝王에게 몸을 의탁하고, 鄒陽이나 枚乘( ?~기원전 140)과 교유했다. 효왕이 죽은 후 고향으로 돌아가 토호인 卓王孫의 딸 文君과 결혼하여 부유하게 되었다. 子虛賦에 의해서 무제의 부름을 받고, 서남의 蠻夷 땅에서 공적을 올렸다.

사마상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卓文君과의 연애 사건이다. 고향에서 곤궁에 처해 있을 무렵 쓰촨성 임공현의 부호 卓王孫에게 초대된 자리에서, 그 딸인 탁문군을 보자 연정을 품게 되었다. 탁문군은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있었던 터에 사마상여가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청두로 사랑의 야반도주를 하였다. 두 사람의 생활은 극도로 가난하고 궁하여 수레와 말을 팔아 선술집을 차렸다. 문군이 술을 팔고, 상여는 시중에 나가 접시닦이 일을 하였다고 한다. 탁왕손은 진노하였다가 결국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고 훗날 많은 재산을 남겨주었다. 상속으로 부유해진 사마상여는 7대 황제 무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궁정문인으로 많은 명작을 남겼다. 탁문군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한나라 최고의 문인으로 등극한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하다. 사마상여는 일찍부터 消渴症을 앓아, 만년에는 陜西省 茂陵에 칩거하였다. 무제에게 封禪에 관하여 권한 封禪文遺稿로 남겨진 것이라고 한다.

 

 卓文君 : 臨邛 사람으로 본명은 文后이다. 西漢 시기의 才女司馬相如(BC 179-BC 118)이다. 詩文과 거문고에 능했다. 대표작품으로 白頭吟, 訣別書, 怨郎詩가 있다. 蔡文姬, 李清照, 上官昭容와 더불어 중국 古代四大才女로 일컬어지고, 薛濤, 花蕊夫人, 黃娥와 더불어 蜀中四大才女로 일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