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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周封國八百/주의 나라는 800개국이었다.

solpee 2020. 1. 1. 09:51

 

紀29 王莽 始建國 2 (庚午, 10

 

 

 2. 오위장과 수 72명이 돌아와서 한 일을 상주하였는데, '한의 제후왕 가운데 공으로 한 사람들은 모두 새수를 올려 보내고 민으로 하였으며, 명령을 어긴 사람은 없었다. 오직 옛날 광양왕 유가가 부명을 헌납하고, 노왕 유민이 신서를 바쳤고, 중산왕 유성도가 편지를 바쳐서 황제의 덕을 말하여서 모두 열후에 봉하였다'고 하였다.

 2. 五威將帥七十二人還奏事,漢諸侯王爲公者悉上璽綬爲民,上,時掌翻。無違命者。獨故廣陽王嘉以獻符命,廣陽王嘉,燕王旦之玄孫。魯王閔以獻神書,中山王成都以獻書言莽德,皆封列侯。

 

 반고가 평론하였다.

 "옛날에 주의 봉국은 800이었지만, 동성은 50여 명이었으니, 그러므로 친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현명한 사람을 현명하다 하여 여러 가지 흥성과 쇠망에 관련지어서 그 뿌리를 깊게 박고 근본을 굳게 하여 뽑을 수가 없게 되었다.

 班固論曰:昔周封國八百,同姓五十有餘,所以親親賢賢,關諸盛衰,深根固本,爲不可拔者也。

 

 그러므로 흥성하면 주공과 소공이 서로 다스리는데 형벌이 엇갈리기에 이르렀고, 쇠퇴하면 오백이 그 약함을 도와서 더불어 지켰으니, 천하에서는 이를 공부라고 하여 강대하여도 감히 기울어지게 하지 아니하였다. 800여 년을 지내고서 운수가 극에 달하고 덕이 다하자 강등하여 평민(주 난왕)으로 삼았는데, 천수는 누리게 하였다.

 故盛則周、召相其治,致刑錯;相,息亮翻。治,直吏翻。錯,千故翻。衰則五伯扶其弱,與共守;師古曰:伯,讀曰霸。此五霸,謂齊桓、宋襄、秦穆、晉文、吳子夫差也。天下謂之共主,如淳曰:雖至微弱,猶共以之爲主。強大弗之敢傾。師古曰:言諸侯雖強大,不敢傾滅周也。歷載八百餘年,數極德盡,降爲庶人,用天年終。謂赧王也。

 

 진이 삼대를 헐뜯고 비웃고 가만히 스스로는 황제라고 호칭하였으나 아들과 동생들은 필부로 삼아서, 안으로는 골육이 뿌리로서의 보좌함이 없었고, 밖으로는 한 자의 땅으로 번익의 보위함이 없어져서 진승과 오광이 그 흰 몽둥이를 떨치고, 유방과 항우가 따라서 그를 죽였다. 그러므로 말하였다. 주는 그 역운을 지냈고, 진은 기한을 채우지 못하였는데, 나라의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秦訕笑三代,竊自號爲皇帝,而子弟爲匹夫,內無骨肉本根之輔,外無尺土藩翼之衞;陳、吳奮其白梃,應劭曰:白梃,大杖也。孟子曰:可使制梃以撻秦、楚,是也。師古曰:梃,音徒鼎翻。劉、項隨而斃之。故曰,周過其曆,秦不及期,國勢然也。應劭曰:武王克商,卜世三十,卜年七百;今乃三十六世,八百六十七年,此謂過其曆者也。秦以諡法少,恐後世相襲,自稱始皇帝,子曰二世,欲以一迄萬;今至子而亡,此之謂不及期也。

 

 한이 일어난 초기에는 멸망한 진이 고립되어서 패배한 것을 경계로 하여서 이에 왕의 자제들을 높혀서 크게 아홉 개의 봉국을 열었다. 안문에서부터 동쪽으로 요양에 이르는데, 연과 대이고, 상산의 남쪽은 태행을 왼쪽으로 돌아 하·제를 건너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제와 조를 만들고, 곡과 사로 가면 갑자기 귀왕 몽이 있어서 양과 초를 만들었고,

 漢興之初,懲戒亡秦孤立之敗,於是尊王子弟,王,于況翻。大啓九國。自鴈門以東盡遼陽,爲燕、代;師古曰:遼陽,遼水之陽也。常山以南,太行左轉,渡河、濟,漸于海,爲齊、趙;師古曰:太行,山名也。左轉,亦謂自太行而東也。漸,入也,一曰:浸也。濟,子禮翻。漸,音子廉翻,亦讀如字。穀、泗以往,奄有龜、蒙,爲梁、楚;晉灼曰:《水經》云:泗水出魯國卞縣。臣瓚曰:穀,在彭城,泗之下流爲穀水。師古曰:奄,覆也。龜、蒙,二山名。

 

 동쪽으로 강과 호를 두르고 회계의 가까이에 형과 오를 만들고, 북쪽으로는 회의 물가를 경계로 하고 여와 형을 범하면서 회남을 만들고, 한의 북쪽을 따라서 가다가 구의에 걸쳐서 장사(9개 봉국:燕·代·齊·趙·梁·楚·荊[吳]·淮南·長沙)를 만들었다. 제후들은 변경에 입접하여 삼수를 둘러싸고 있으며, 밖으로는 호와 월에 접해 있다.

 東帶江、湖,薄會稽,爲荊、吳;文穎曰:卽今吳也。高祖六年爲荊國,十六年更名吳。師古曰:荊、吳同是一國。薄,伯各翻。會,工外翻。北界淮瀕,略廬、衡,爲淮南;師古曰:瀕,水厓也。廬、衡,二山名。波漢之陽,亙九嶷,爲長沙。鄭氏曰:波,音陂澤之陂。孟康曰:亙,竟也;音古贈翻。師古曰:波漢之陽者,循漢水而往也。水北曰陽。波,音彼皮翻,又音彼義翻。九嶷,山名,有九峯,在零陵營道。嶷,音疑。諸侯比境,周匝三垂,外接胡、越。師古曰:比,謂相次也。三垂,謂東、北、南也。比,音頻寐翻,接連也。

 

 천자는 스스로 삼하(三河:河東·河南·河內)·東郡(濮陽)·영천·남양을 소유하였고, 강릉에서부터 서쪽으로 파와 촉까지 이르고, 북쪽으로는 운중에서부터 농서에 이르니, 경사, 내사와 더불어 무릇 15개 군인데, 공주와 열후의 읍도 자못 그 안에 있다.

 天子自有三河、東郡、潁川、南陽,自江陵以西至巴、蜀,北自雲中至隴西,與京師、內史,凡十五郡;公主、列侯頗邑其中。師古曰:十五郡中,又往往有列侯、公主之邑。

 

 그러나 번국 가운데 큰 것은 주를 넘고 군을 겸하고 성 수십 개를 이었고, 궁실과 백관이 경사와 같았으니,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하다가 그 정도를 지나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조가 창업하고 날짜로는 쉬는 날을 주지 아니하고, 효혜제가 나라를 향유한 것이 짧았는데, 고후가 여자 주군으로 섭위하였으나 천하가 태평하여 난폭하거나 간교한 일에 대한 근심은 없었고 끝내 여러 여씨의 어려움을 꺾고, 태종의 대업을 이루었는데,  역시 제후들에게 이것을 의뢰한 것이다.

 而藩國大者夸州兼郡,連城數十,宮室、百官同制京師,可謂矯枉過其正矣。師古曰:夸,音跨。枉,曲也。正曲曰矯,言矯秦孤立之敗而大封子弟,過於強盛,以至失其中也。雖然,高祖創業,日不暇給,孝惠享國又淺,高后女主攝位,而海內晏如,亡狂狡之憂,卒折諸呂之難,亡,古無字通。卒,子恤翻。難,乃旦翻;下同。成太宗之業者,亦賴之於諸侯也。

 

 그러나 제후의 원본은 대종의 말류로써 함부로 흘러서 넘치게 되면, 작은 것은 음란하고 거칠어 법을 뛰어넘고, 큰 것은 어그러지고 가로질러 거슬러서 자신의 몸을 해치고 자신의 나라를 없애니, 그러므로 문제는 제와 조를 나누고, 경제는 오와 초를 삭감하였으며, 무제는 추은령을 내려 번국들이 저절로 갈라지게 하였다.

 然諸侯原本以大末,流濫以致溢,小者淫荒越法,大者睽孤橫逆以害身喪國,師古曰:睽孤,乖剌之意。睽,音工攜翻。橫,戶孟翻。喪,息浪翻。故文帝分齊、趙,事見十四卷文帝二年,又見十六年。景帝削吳、楚,事見十六卷景帝三年。武帝下推恩之令而藩國自析。事見十八卷武帝元朔二年。

 

 이로부터 이후로 제는 나뉘어 일곱이 되고, 조는 나뉘어 여섯이 되었으며, 양은 나뉘어 다섯이 되고, 회남은 나뉘어 셋이 되었다. 황제의 아들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큰 나라도 10여 개의 성에 지나지 않았다. 장사·연·대는 비록 옛날의 명성이 있어도 모두 없어진 남북의 변방이었다.

 自此以來,齊分爲七,師古曰:謂齊、城陽、濟北、濟南、甾川、膠西、膠東也。趙分爲六,謂趙、平原、眞定、中山、廣川、河間也。梁分爲五,師古曰:謂梁、濟川、濟東、山陽、濟陰也。淮南分爲三。師古曰:謂淮南、衡山、廬江。皇子始立者,大國不過十餘城。長沙、燕、代雖有舊名,皆亡南北邊矣。如淳曰:長沙之南更置郡,燕、代以北更置緣邊郡,其所有饒利、兵馬、器械,三國皆失之也。亡,古無字通;下同。

 경제는 7국의 난을 만나자 제후를 누르고 덜어내어 그 관리를 줄이고 쫓아냈다. 무제는 형산과 회남이 모의를 하게되자, 좌관률을 만들고 부익법을 제정하여 제후들은 오직 조세로 입고 먹을 수 있었고, 정치에는 참여하지 아니하였다.

 景遭七國之難,抑損諸侯,減黜其官。師古曰:謂改丞相曰相,省御史大夫、廷尉、少府、宗正、博士,損大夫、謁者、諸官長、丞員等也。武有衡山、淮南之謀,事見十九卷武帝元朔五年及元狩元年。作左官之律,服虔曰:仕於諸侯爲左官,絕不使得仕於王侯也。應劭曰:人道尚右,今舍天子而仕諸侯,故謂之左官也。師古曰:左官,猶言左道也,蓋僻左不正,應說是也。漢時依上古法,朝廷之列,以右爲尊,故謂降秩者爲左遷,仕諸侯者爲左官。設附益之法;張晏曰:《律》鄭氏《說》,封諸侯過限曰附益。或曰:阿媚王侯,有重法也。師古曰:附益者,蓋取孔子云「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之義也,皆背正法而厚於私家也。諸侯惟得衣食稅租,不與政事。與,讀曰預。

 

 애제와 평제 때에 이르러서는 모두 몸을 이어받은 후예들이지만 친족들은 소원해지고, 유장 속에서 태어나 사민의 존중을 받지 못하여 형세가 마치 보통의 부잣집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본 왕조가 단명하니 나라의 적통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

 至於哀、平之際,皆繼體苗裔,親屬疏遠,師古曰:言非始封之君,皆其後裔也,故於天子益疏遠矣。生於帷牆之中,不爲士民所尊,勢與富室亡異。而本朝短祚,【章:十二行本「祚」作「世」;乙十一行本同;孔本同。】國統三絕。師古曰:謂成、哀、平皆早崩,又無繼嗣。亡,古無字通。

 

 이러한 연고로 왕망은 한의 안팎이 다하고 미약하며, 본말이 함께 약해진 것을 깊이 알아서 꺼릴 바가 없어져서 그의 간사한 마음을 낳았고, 모후의 권세를 이용하고, 이윤과 주공의 칭호를 빌려서, 묘당 위에서 마음대로 위엄과 복록을 만들고, 섬도를 내려가지도 않고 천하를 운영하였다.

 是故王莽知漢中外殫微,師古曰:殫,盡也,音單。本末俱弱,無所忌憚,生其姦心,因母后之權,假伊、周之稱,顓作威福廟堂之上,不降階序而運天下。師古曰:序,謂東西廂。

 속이는 음모가 이미 이루어지자. 드디어 남면하는 지존을 점거하고, 오위라는 관리들을 나누어 파견하여 말을 달려 천하에 전하고 부명을 반포하여 시행하였고, 한의 제후왕들은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새불을 받들어 올리면서 오직 뒤떨어질까 두려워하였고, 혹은 미덕을 칭송하면서 아첨만 하였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詐謀旣成,遂據南面之尊,分遣五威之吏,馳傳天下,傳,知戀翻。班行符命;漢諸侯王厥角稽首,應劭曰:厥者,頓也。角者,額角也。稽首,首至地也。言王莽漸漬威福日久,亦值漢之單弱,王侯見莽篡弒,莫敢怨望,皆厥角稽首至地而上其璽綬也。晉灼曰:厥,猶豎也。叩頭則額角豎。師古曰:應說是也。奉上璽韍,惟恐在後,或乃稱美頌德以求容媚,豈不哀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