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力戰鬭,不如巧爲奏/힘써 싸우는 것이 교묘하게 상주하는 것만 못하다.

solpee 2019. 12. 31. 06:15

 

紀28 王莽 居攝元 (丙寅, 6

 

 

 4. 4월에 안중후 유승이 재상 장소와 모의하여 말하였다.

 "안한공 왕망은 유씨를 위태롭게 할 것인데, 천하가 그를 비난하지만 감히 먼저 거사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곧 종실의 수치이다. 내가 종족을 거느리고 먼저 나선다면 해내에서 반드시 화답할  것이다."

 장소 등을 따르는 사람 100여 명이 마침내 나아가서 완을 공격하였는데, 들어갈 수 없어서 패하였다.

 4. 四月,安衆侯劉崇師古曰:安衆康侯丹,長沙定王子;崇卽丹玄孫之子也,見《王子侯表》。《地理志》,安衆,侯國,屬南陽郡,故宛西鄕也。與相張紹謀曰:「安漢公莽必危劉氏,天下非之,莫敢先舉,此乃宗室之恥也。吾帥宗族爲先,海內必和。」帥,讀曰率。和,戶臥翻。紹等從者百餘人遂進攻宛;宛,南陽郡治所。宛,於元翻。不得入而敗。

 

 장소의 사촌 동생인 장송은 유승의 족숙인 유가와 더불어 대궐에 가서 스스로 귀부하였더니, 왕망은 그들을 용서하고 죄를 주지 않았다.

 장송은 이어서 유가를 위하여 주문을 지어 왕망의 미덕을 칭송하였고 유승에게 죄상을 주었다.

  紹從弟竦與崇族父嘉詣闕自歸;莽赦弗罪。從,才用翻。竦因爲嘉作奏,爲,于僞翻。稱莽德美,罪狀劉崇:

 

 "바라건대 종실을 위하여 처음으로 달려가 유승의 사당에 이르러서는 의당 박사처럼 하여서 제후들에게 하사하여 영원한 감계(鑑戒:역사를 거울로 경계함)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에 왕망은 크게 기뻐하며 유가를 책봉하여 솔예후로 하고, 유가의 일곱 아들에게는 모두 작위를 하사하여 관내후로 하였고, 후에는 또 장송을 책봉하여 숙덕후로 하였다.

「願爲宗室倡始,師古曰:倡,音先向翻。父子兄弟負籠荷鍤,師古曰:籠,所以盛土。鍤,鍫也。荷,下可翻;又音何。馳之南陽,豬崇宮室,令如古制;古者畔逆之國,旣伏其罪,則豬其宮室以爲汙池。師古曰:豬,謂畜水也。及崇社宜如亳社,以賜諸侯,用永監戒!」武王勝殷,分亳社以班諸侯,四牆其社,覆上棧下,使不得通陰陽之氣,所以著亡國之戒也。於是莽大說,說,讀曰悅。封嘉爲率禮侯,嘉子七人皆賜爵關內侯;後又封竦爲淑德侯。

 

 장안에서는 이 때문에 말하였다.

 "책봉을 받으려고 한다면 장백송을 지나쳐라. 힘써 싸우는 것이 교묘하게 상주하는 것만 못하다."

 이후부터 모반하는 사람들은 모두 '더러운 웅덩이(汙池)'라고 말하였다.

 군신들이 다시 아뢰었다.

 長安爲之語曰:「欲求封,過張伯松。師古曰:伯松,張竦之字。力戰鬭,不如巧爲奏。」自後謀反【章:甲十六行本「反」下有「者」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皆汙池云。師古曰:汙,下也,音烏。

羣臣復曰:

 

 "유숭 등이 모의하여 반역한 것은 왕망의 권위가 가벼워서였으니, 의당 존중하여 천하를 집압하여야 합니다."

 5월 갑자일(17)에 태후가 왕망에게 조서를 내려서 태후를 조현하면서 '가황제'를 칭하게 하였다.

「劉崇等謀逆者,以莽權輕也;復,扶又翻。宜尊重以塡海內。」塡,竹刃翻。五月,甲辰,太后詔莽朝見太后稱「假皇帝」。朝,直遙翻。見,賢遍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