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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怨於下,莽亦不能文也。백성들의 원망을 문식할 수 없었다.麋角解末日(음12/6)

solpee 2019. 12. 30. 20:07

 

紀28 平帝 元始5 (乙丑, 5

 

 

 11. 이때에 황제의 춘추는 더욱 건장하였는대, 위후(평제의 어머니, 경사로 오지 못하고 독살되었다) 때문에 그러므로 원망하며 기뻐하지 않았다. 겨울, 12월에 왕망이 납일(臘日:陰曆 冬至 後 3 번째 戊日로민간에서는 小歲라 하여 부모를 찾아뵙고 신료들은 군왕을 알현하였다.)을 이용하여 초주를 헌상하며 술에다 독을 넣었는데, 황제에게 병이 생겼다.

 11. 時帝春秋益壯,以衞后故,怨不悅。謂衞后不得至京師,其族皆死徙,故不悅。冬,十二月,莽因臘日上椒酒,上,時掌翻。置毒酒中;帝有疾。

 

 왕망이 책서를 지어가지고 태치에서 기도를 하는데, 몸으로 대신하기를 원하며, 책서를 금등에 넣어서 전전에 두고서 여러 공들에게 감히 말하지 못하게 칙령을 내렸다.

 莽作策,請命於泰畤,願以身代,藏策金縢,置于前殿,敕諸公勿敢言。師古曰:詐依周公爲武王請命作《金縢》也。《書》曰:周公納策金縢之匱中。孔安國曰:爲請命之書,藏之於匱,緘之以金,不欲人開之。孔穎達曰:縢,是縛約之名。

 

 병오일에 황제가 미앙궁에서 붕어하였다. 천하를 크게 사면하였다. 왕망은 천하의 吏 600석 이상은 모두 3년상을 입게 하였다. 상주하여 효성제의 묘호를 높혀서 통종이라 하고 효평제의 묘호를 원종이라 하였다. 효평황제를 염하고 원복을 입혀서 강릉(康陵:장안에서 북쪽으로 30km지점)에 매장하였다.

 丙午,帝崩于未央宮。臣瓚曰:帝年九歲卽位;卽位五年,壽十四。大赦天下。莽令天下吏六百石以上皆服喪三年。奏尊孝成廟曰統宗;孝平廟曰元宗。斂孝平,加元服,斂,力贍翻。葬康陵。臣瓚曰:康陵,在長安北六十里。

 

 반고가 찬하였다.

 "평제 시대(9세 즉위 5년 재위)에는 정치는 왕망으로부터 나오고 선행을 표창하고 공로를 드러내서 스스로 높이는 것이 성대하였다. 그의 글을 보면 바야흐로 외부의 백만이 복종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일이 없었고, 아름다운 징조로 좋게 호응하니, 칭송하는 소리가 함께 일어났는데, 변고와 이상한 일들이 위에서 나타났고 원망도 역시 문식할 수는 없었다."

 班固贊曰:孝平之世,政自莽出,褒善顯功,以自尊盛。觀其文辭,方外百蠻,無思不服,休徵嘉應,頌聲並作;至於變異見於上,見,賢遍翻。民怨於下,莽亦不能文也。如淳曰:不可復文飾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