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治河.황하를 다스림

solpee 2019. 12. 30. 06:01

 

紀28 平帝 元始4 (甲子, 4

 

 

 7. 왕망이 주문으로 명당(明堂:황제가 정사를 보는 곳)·벽옹·영대를 세우고, 학자들을 위하여 만여 채의 건물을 지으니, 그 규모가 매우 융성하였다.

 또《악경》을 세워 박사의 인원을 늘리고, 경에는 각기 5명씩 이었다. 천하에서 一藝에 정통하고, 교수하는 11명 이상 사람을 징소하고,《逸禮》·古書·천문·도참·鐘律·《月令》·병법·《史篇》의 문자를 가지고 그 뜻을 관통하여 아는 사람은 모두 공거에 이르게 하였다.

 7. 莽奏起明堂、辟雍、靈臺,應劭曰:明堂所以正四時,出敎化。明堂上圓下方,八窗四達,布政之宮,在國之陽:上八窗法八風,四達法四時,九室法九州,十二重法十二月,三十六戶法三十六雨,七十二牖法七十二風。黃帝曰合宮,有虞曰總章,殷曰陽館,周曰明堂。辟雍者,象璧;圜之以水,象敎化流行。《大戴禮》:明堂,以茅蓋,上圓下方。天子曰靈臺,諸侯曰觀臺,以望氣,書雲物。爲學者築舍萬區,爲,于僞翻。制度甚盛。立《樂經》;益博士員,經各五人。徵天下通一藝、敎授十一人以上,及有《逸禮》、古書、天文、圖讖、張衡曰:圖讖虛妄,非聖人之法。劉向父子領校祕書,閱定九流,亦無讖錄;成、哀之後,乃始聞之。鍾律、《月令》、兵法、《史篇》文字,孟康曰:史籀所作十五篇古文書也。師古曰:周宣王太史史籀所作大篆書也。籀,直救翻。通知其意者,皆詣公車。

 

 천하에 특이한 재능을 가진 선비들을 망라하니 전후로 도착한 사람이 천을 헤아렸는데, 모두 궁중에서 기억하여 설명하게 하고, 잘못된 곳들을 바로잡게 하여 이설을 하나로 한다고 하였다.

 또 하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부르니 100여 명을 헤아렸는데, 그 중에 대략 특이한 자는 장수교위인 평릉 사람 관병 이었고, 말하였다.

 網羅天下異能之士,前後至者千數,皆令記說廷中,將令正乖謬,壹異說云。令各造廷中而記其說也。

又徵能治河者以百數,治,直之翻。其大略異者,長水校尉平陵關並《姓譜》:關,夏大夫關龍逢之後。《風俗通》:關令尹喜之後。言:

 

 "하가 터지는 것은 대개 늘 평원(平原: 山東 平原縣)과 동군(東郡:河南 濮陽縣)의 좌우인데, 그 지형이 내려가고 토질이 성기고 나쁩니다. 듣건대 우가 하수를 다스릴 때에 본래 이 땅을 비워놓고 물이 범람하는 것이 성하면 내보내서 넘치게 하고, 조금씩 스스로 말라버리게 하였으니, 비록 시기는 다르지만 오히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河決率常於平原、東郡左右,其地形下而土疏惡。疏,音疎。聞禹治河時,本空此地,以爲水猥盛則放溢,少稍自索,少,詩沼翻。師古曰:猥,多也。索,盡也,音先各翻。雖時易處,猶不能離此。離,力智翻。

 

 상고에는 알기 어렵지만 근래 진·한 이후를 보면 하수는 曹(山東 定都縣)와 魏(河南 凌縣) 지역에서 터졌는데, 그 남북 간은 180리(1里≒459m)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땅을 비워두고 관청과 백성들의 집을 짓지 않게 할 뿐입니다."

 上古難識。近察秦、漢以來,河決曹、衞之域,漢之濟陰、定陶,故曹國也。東郡及魏郡黎陽,古衞地也。其南北不過百八十里。可空此地,勿以爲官亭、民室而已。」

 

 어사인 임회 사람 한목이 생각하였다.

 "《禹貢》에 구하가 흐르는 곳에 이를 뚫은 것이 대략 기록되어 있는데 늘어 놓아도 아홉이 될 수 없고, 다만 4~5개가 되니 마땅히 유익할 것입니다."

 대사공 연리인 왕횡이 말하였다.

 御史臨淮韓牧以爲:「可略於《禹貢》九河處穿之,縱不能爲九,但爲四、五,宜有益。」大司空掾王橫言:

 

 "하수가 흘러서 발해 땅으로 들어가는데 한목이 뚫고자 하는 곳보다 높습니다. 옛날에 하늘에서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동북풍이 불어 바닷물이 넘쳐서 서남쪽으로 나가서 수백 리를 잠기게 하였으니 구하의 땅은 이미 바다에 침식되었습니다. 우가 하수를 다니면서 본래 서산(西山:太行山)을 따라 동북쪽으로 내려와서 가게하였습니다.

「河入勃海地,高於韓牧所欲穿處。往者天常連雨,東北風,海水溢,西南出,寖數百里,九河之地已爲海所漸矣。師古曰:漸,寖也,讀如本字,又音子廉翻。禹之行河水,本隨西山下東北去。師古曰:行,謂通流也。

 

 《주보》에서는 '定王 5년에 하수가 옮겨졌다.'고 말하였으니, 오늘날 흐르는 곳은 우가 뚫은 것이 아닙니다. 또 진이 위를 공격하면서 하수를 터서 그 도움으로 물을 대었는데, 터진 곳이 드디어 커져서 다시 매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땅히 오히려 평지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옮기고 다시 구멍을 뚫어서 서산(여양 서쪽 여산) 기슭을 따라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동북쪽으로 가서 바다로 들어가게 하면 마침내 수재를 없앨 것입니다."

《周譜》云:『定王五年,河徙。』如淳曰:譜,音補,世統譜諜也。則今所行非禹之所穿也。又秦攻魏,決河灌其都,事見七卷秦始皇二十二年。決處遂大,不可復補。復,扶又翻。宜卻徙完平處更開空,空,音孔。師古曰:空,猶穿。使緣西山足,乘高地而東北入海,乃無水災。」西山,謂黎陽以西諸山。

 

 사공의 연리인 패국 사람 환담이 그 논의를 주관하면서 진풍을 위하여 말하였다.

 "무릇 이 몇 가지의 의견에는 반드시 옳은 것이 하나 있으니, 마땅히 자세히 생각하고 검사하면 모두 예견할 수가 있습니다. 계책이 정해진 다음에 일을 시행하면 비용은 수억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역시 유랑생활을 하며 생업이 없는 여러 백성들에게 일하게 할 수 있습니다.

 司空掾沛國桓譚典其議,爲甄豐言:爲,于僞翻;下同。「凡此數者,必有一是;宜詳考驗,皆可豫見。計定然後舉事,費不過數億萬,亦可以事諸浮食無產業民。師古曰:事,謂役使也。

 

 텅 빈채 사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는데, 같이 의복과 양식도 감당해야 하니, 현관에서 의복과 양식을 공급받고 이를 위하여 일하면 마침내 두 쪽(국가와 백성)이 편하여 위로는 우의 공로를 계승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충을 제거합니다."

 空居與行役,同當衣食,衣食縣官而爲之作,乃兩便,師者曰:言無產業之人,端居無爲及發行力役,俱須衣食耳。今縣官給其衣食而使修治河水,是爲公私兩便也。可以上繼禹功,下除民疾。」時莽但崇空語,無施行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