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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帝, 自度曲,被歌聲./원제는 스스로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solpee 2019. 12. 25. 15:18

 

紀21 元帝 竟寧元 (戊子, 前33

 

 

 7. 순열이 평론하였다.

 "진실로 그의 공로와 의가 충분히 봉작할 만하다면 전의 일을 추가로 기록하는 것이 옳다. 《춘추》의 대의는 천대(泉臺:분묘)를 훼손하였다면 이를 싫어하였고, 중군을 버렸다면 그것을 선이라 하였던 것은 각기 그 마땅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7. 荀悅論曰:誠其功義足封,追錄前事可也。《春秋》之義,毀泉臺則惡之,舍中軍則善之《春秋公羊傳》:文公十六年,毀泉臺。何以書?譏。何譏爾?先祖爲之,己毀之,不如勿居而已矣。昭五年,舍中軍。舍中軍者何?復古也。《穀梁》之義略同。惡,烏路翻。各由其宜也。

 

 무릇 교제(矯制:왕의 명령이라 거짓 꾸밈)의 일은 선왕들이 신중하게 처리한 것이며 부득이하여 이를 시행하였다. 만약에 고친 것은 큰데 세운 공로가 작다면 그에게 죄를 주어도 좋을 것이다.

 夫矯制之事,先王之所愼也,不得已而行之。若矯大而功小者,罪之可也;

 

 고친 것이 적은데 공로를 세운 것이 크다면 그에게 상을 주는 것이 옳고, 공로와 허물이 서로 비슷하다면 이처럼 그쳐도 좋다. 그 경중을 달아보아서 이를 처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矯小而功大者,賞之可也;功過相敵,如斯而已可也。權其輕重而爲之制宜焉爲,于僞翻。

 

 8.

 8. 初,太子少好經書少,詩照翻。好,呼到翻;下同。寬博謹愼;其後幸酒,樂燕樂,晉灼曰:幸酒,好酒也。師古曰:樂燕樂,若《論語》稱孔子云:損者三樂:樂驕樂,樂逸遊,樂燕樂,損矣。燕樂,燕私之樂也。上樂,讀如本字,又音五孝翻。下樂,音來各翻。上不以爲能。而山陽王康有才藝,母傅昭儀又愛幸,上以故常有意欲以山陽王爲嗣。

........................중략....................

 사단은 친밀한 신하로서 황제를 모시면서 병을 살필 수가 있었는데, 황상이 홀로 침상에 있는 틈을 기다렸다가 사단이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청포 위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史丹以親密臣得侍視疾,候上間獨寢時,丹直入臥內,頓首伏青蒲上服虔曰:青緣蒲席也。應劭曰:以青規地曰青龍;自非皇后不得至此。孟康曰:蒲青爲席,用蔽地也。師古曰:應說是也。涕泣而言曰:

 

 황태자는 적장자로서 세워져서 이미 10여 년이 지났고, 이름은 백성들에게 이어져서 천하에서는 마음을 돌려 신하가 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산양왕을 보면 평소에 아끼고 자주 찾으니, 지금 거리에는 흘러 다니는 말이 있는데, 나라를 위하여 뜻이 생겨서 태자에게 동요하는 논의가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皇太子以適長立,積十餘年師古曰:適,讀曰嫡。名號繫於百姓,天下莫不歸心臣子。師古曰:自託爲臣子。仲馮曰:臣子,當屬下句,不當斷之。余以下文大意觀之,顏說爲是。見山陽王雅素愛幸,今者道路流言,爲國生意,爲,于僞翻。以爲太子有動搖之議。

 

 이와 같은 것을 살펴보건대 공경 이하의 사람들은 반드시 죽음으로써 다투고 조서를 받들지 아니할 것입니다. 신이 바라건대 먼저 죽음을 내려 주셔서 여러 신하들에게 보여주십시오."

 審若此,公卿以下必以死爭,不奉詔。臣願先賜死以示羣臣!」

 

 천자는 평소에 인자하여 사단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말하는 것도 간절하여 속으로 커다란 깨달음을 느껴서 장탄식을 하면서 말하였다.

 天子素仁,不忍見丹涕泣,言又切至,意大感寤,喟然太息曰:

 

 "내가 날로 어려워지고 약해지는데, 태자와 두 왕은 아직도 어려 마음 속에 연연하니 또한 어찌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의논을 한 일이 없소. 또 황후도 삼가고 신중하며,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도 태자를 아끼셨는데, 내가 어찌 그 가리킴을 어기겠는가? 부마도위는 어떻게 이러한 말을 들었소?"

「吾日困劣,劣,弱也。【章:乙十一行本「太」上有「而」字;孔本同。】子、兩王幼少兩王,山陽王康、信都王興。意中戀戀,亦何不念乎!然無有此議。且皇后謹愼,先帝又愛太子事見二十七卷宣帝甘露三年。吾豈可違指!駙馬都尉安所受此語?師古曰:安,焉也。余謂安,何也。

 

 사단이 바로 물러나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어리석은 신이 망령되게 소문을 들었으니, 그 죄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황상이 이어서 받아들이고 사단에게 말하였다.

 "나의 병세가 점차 더해가서 아마도 스스로 돌아올 수 없으니 태자를 잘 보도하고 나의 뜻을 어기지 마시오."

丹卽卻,頓首曰:「愚臣妄聞,罪當死!」師古曰:卻,退也,離青蒲上。上因納,謂丹曰:「吾病寖加,恐不能自還納者,納其言也。師古曰:寖,漸也。不自還者,言當遂至崩亡也。還,讀曰旋。善輔道太子,毋違我意!」

 

 사단이 허허롭게 일어났고 태자는 이로부터 드디어 확정되어 후사가 되었다. 그리고 우장군인 광록대부 왕상과 중서령 석현도 역시 태자를 옹호하고 도와서 자못 힘을 썼다. 여름, 5월 임진일(24)에 황제가 미앙궁에서 붕어하였다.

 丹噓唏而起師古曰:道,讀曰導。噓,音虛。唏,音許旣翻。太子由是遂定爲嗣。而右將軍、光祿大夫王商、中書令石顯亦擁佑太子,頗有力焉。夏,五月,壬辰,帝崩于未央宮臣瓚曰:帝年二十七卽位,卽位十六年,壽四十三。

 

 반표가 찬양하였다.

 "신의 외할아버지 형제는 원제의 시중이었는데, 신에게 항상 말하였다. '원제는 재예가 많고 사서를 잘 다루었고, 금슬을 치고 퉁소도 불었고, 스스로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불렀으며, 절도를 분간하였는데, 아주 정교하였다.

 班彪贊曰:臣外祖兄弟爲元帝侍中應劭曰:外祖金敞也。語臣曰:「元帝多材藝,善史書應劭曰:周宣王太史史籀所作大篆。語,牛倨翻。鼓琴瑟,吹洞簫如淳曰:簫之無底者也。杜佑曰:前代有洞簫,今無其器。自度曲,被歌聲應劭曰:自隱度作新曲,因持新曲以爲歌詩聲也。荀悅曰:被聲,能播樂也。臣瓚曰:度曲,謂歌終更授其次,謂之度曲。《西京賦》曰:度曲未終,雲起雪飛。張衡《舞賦》亦曰:度終復位,次受三八。師古曰:應、荀二說皆是也。度,音大洛翻。被,音皮義翻。分刌節度,窮極幼眇。蘇林曰:刌,度也;知曲之終始節度也。韋昭曰:刌,切也;謂能分切句絕爲之節制也。師古曰:韋說是也。刌,音千本翻。幼眇,讀曰要妙。

 

 어려서는 유학을 좋아하였으며 즉위하게 되자 유생들을 초빙하여 등용시켜서 그들에게 정치를 맡겼는데, 공우, 설광덕, 위현성, 광형이 번갈아 재상을 맡았다.

 少而好儒少,詩照翻。好,呼到翻。及卽位,徵用儒生,委之以政,貢、薛、韋、匡迭爲宰相師古曰:貢禹、薛廣德、韋玄成、匡衡迭互而爲丞相也。

 그러나 황상은 글자의 뜻에 얽매어서 통제되어 우유부단하니 효선제의 대업은 쇠퇴하였다. 그러나 넓은 마음으로 아랫사람을 극진히 대하였고 공손하고 검역에서 나왔고, 호령은 따뜻하고 우아하여 옛날의 기풍을 갖고 있었다.

 而上牽制文義,優游不斷,孝宣之業衰焉師古曰:爲文義所牽制,故不斷決。斷,丁亂翻。然寬弘盡下,出於恭儉,號令溫雅,有古之風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