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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驕者滅/교만한 군사는 멸망한다.

solpee 2019. 12. 14. 17:25

 

紀17 宣帝 元康 2 (丁巳, 前64

 

 

 5. 흉노의 대신이 모두 생각하였다.

 "차사는 땅이 비옥하고 흉노에 가까운데, 한으로 하여금 이곳을 갖게 한다면 둔전을 많이 두어 곡식을 쌓아 놓게 되고, 반드시 다른 사람의 나라를 해롭게 할 것이니, 불가불 다투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5. 匈奴大臣皆以爲「車師地肥美,近匈奴近,其靳翻。使漢得之,多田積穀,必害人國,不可不爭」,

 

 이로 말미암아서 자주 병사를 파견하여 차사의 둔전지대를 공격하였다. 정길이 거리에서 둔전하는 병졸 7천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이를 구하다가 흉노에게 포위된 바가 되었다. 정길이 글을 올려서 말하였다.

 由是數遣兵擊車師田者數,所角翻。鄭吉將渠犂田卒七千餘人救之,爲匈奴所圍。吉上言:

 

 "차사는 거리에서 1천여 리 떨어져 있고, 거리에 있는 한의 군사는 적어서, 형세로 보아 서로 구제해 줄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둔전하는 병졸을 늘려 주십시오."

 황상과 조충국 등이 논의하여 흉노가 쇠약해진 것을 이용하여 병사를 출동시켜서 그들의 오른쪽을 공격하여 다시 서역을 소란스럽게 하지 못하게 하고자 하였다.

「車師去渠犂千餘里,漢兵在渠犂者少,勢不能相救,願益田卒。」上與後將軍趙充國等議,欲因匈奴衰弱,出兵擊其右地,使不得【章:甲十五行本「得」作「敢」;乙十一行本同;孔本同。】復擾西域復,扶又翻。

 

 위상이 글을 올려서 간하였다.

 "신이 듣건대, 어지러운 것을 구제하고 흉포한 것을 주살하는 것을 義兵이라 하고, 군사가 의로운 사람은 왕입니다. 적이 나에게 다가오면 부득이하여 일어난 것을 應兵이라 하는데 병사를 가지고 대응한 사람은 승리하며,  한스러움을 가지고 작은 이유를 대서 다투다가 그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은 忿兵이라 하는데 군사가 분함을 가지면 패하고,

 魏相上書諫曰:「臣聞之:救亂誅暴,謂之義兵,兵義者王。敵加於己,不得已而起者,謂之應兵,兵應者勝;爭恨小故,不忍憤怒者,謂之忿兵,兵忿者敗;

 

 다른 사람의 토지와 재물과 보배를 이롭다고 하는 것은 貪兵이라 하는데 군사가 탐심을 가지면 격파되며, 국가가 크다는 것을 믿고서 민인이 많은 것을 자랑하며 적에게 위엄을 보이려는 것을 교병이라 하는데, 병사가 교만하게 되면 멸망합니다.

 利人土地、貨寶者,謂之貪兵,兵貪者破;恃國家之大,務【章:甲十五行本「務」作「矜」;乙十一行本同;孔本同;熊校同。】民人之衆,欲見威於敵者見,賢遍翻。謂之驕兵,兵驕者滅。

 

 이 다섯 가지는 비단 인사뿐만 아니고 하늘의 도리입니다. 최근에 흉노는 일찍이 선의를 가지고 있어서 붙잡은 한의 백성들을 번번이 받들어서 이들을 돌려보내었으며, 아직도 변경에서 범한 일도 없는데 비록 차사에서 둔전하는 병사들과 다툼이 있었다고는 하나 마음에 두기에는 부족한 일입니다.

 此五者,非但人事,乃天道也。間者匈奴嘗有善意,所得漢民,輒奉歸之,未有犯於邊境;雖爭屯田車師,不足致意中。謂不足介意也。

 

 이제 듣건대 여러 장군이 군사를 일으켜서 그들의 땅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신은 어리석으나 이 병사가 어떤 명분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이제 변방에 있는 군은 곤란하고 궁핍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개나 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풀의 열매를 먹어서 늘 스스로 살아갈 수 없을까 두려워하는데, 병사를 움직이는 것은 곤란합니다.

 今聞諸將軍欲興兵入其地丞相不預中朝之議,故言聞諸將軍。大將軍、車騎將軍、前、後、左、右將軍,皆中朝官。臣愚不知此兵何名者也!今邊郡困乏,父子共犬羊之裘,食草萊之實,常恐不能自存,難以動兵師古曰:不可以兵事動之也。

 

"군사를 일으킨 다음에는 반드시 흉년이 온다《도덕경》.'고 하였는데, 백성들이 근심하고 고통 받은 기운으로 음양의 조화를 다치게 한다는 말입니다.

 출병하여 비록 승리한다고 하여도 오히려 후에 걱정거리가 있을 것인데, 아마도 재해라는 변고가 이로 인하여 발생할까 걱정입니다.

『軍旅之後,必有凶年,』師古曰:此引《老子‧道經》之語。言民以其愁苦之氣傷陰陽之和也。出兵雖勝,猶有後憂,恐災害之變因此以生。

 

 이제 군국의 수상들은 대부분 알차게 뽑히지가 못하여서 풍속은 다욱 야박해지고 수재와 한재가 때 없이 들고 있습니다. 살펴 보건대 금년에 자제가 부형을 죽이고, 처가 지아비를 죽인 사람이 무릇 222명이니, 신은 어리석지만 이것을 작은 변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今郡國守相多不實選師古曰:言不得其人。風俗尤薄,水旱不時。按今年【章:甲十五行本「年」下有「計」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子弟殺父兄、妻殺夫者凡二百二十二人,臣愚以爲非小變也。

 

 지금 좌우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걱정하지 아니하고, 마침내 병사를 발동하여서 멀리 있는 이적들에게 터럭같은 분노를 갚으려고 하니, 아마도 공자가 말한 바, '나는 계손이 만든 근심과 걱정은 전유(顓臾Zhuānyú: 춘추시대 나라이름)에 있지 아니하고, 소장(蕭牆: 대문 안쪽 바람막이와 안을 들여다 보이지 않게 하는담. 내부인) 안에 있을까 걱정한다.'고 한 말에 해당합니다."

 今左右不憂此師古曰:左右,謂近臣在天子左右者。乃欲發兵報纖介之忿於遠夷,殆孔子所謂『吾恐季孫之憂不在顓臾而在蕭牆之內也』。師古曰:《論語》,季氏將伐顓臾,孔子謂冉有、季路曰云云,故相引之。顓臾,魯附庸國。蕭牆者,屛牆也。

 

황상이 위상의 말을 좇아 중지하고, 장라후 상혜를 파견하여 장액과 주천에 있는 기병을 거느리고 차사로 가서 정길과 그의 관리와 병사들을 영접하여 거리로 돌아오게 하였다.

 上從相言,止遣長羅侯常惠將張掖、酒泉騎往車師,迎鄭吉及其吏士還渠犂。

 

 옛날에 차사의 태자였던 군숙이 언기에 있는 것을 불러 세워서 불러서 왕으로 삼고 차사국의 백성을 전부 거리로 옮겨서 살게 하니 드디어 차사의 옛 땅을 흉노에게 주었다. 정길을 위사마로 삼아서 선선(누란구) 서쪽의 남도를 보호하게 되었다.

 召故車師太子軍宿在焉耆者,立以爲王;盡徙車師國民令居渠犂,遂以車師故地與匈奴。以鄭吉爲衞司馬,使護鄯善以西南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