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譏世卿/춘추는 세습되는 경을 비난하였다.

solpee 2019. 12. 11. 16:37

 

紀16 宣帝 地節 2 (癸丑, 前68

 

 

 3. 선제는 대장군의 은덕에 보답하려고 생각하여 마침내 곽광의 형의 손자인 곽산을 책봉하여 낙평후로 삼고, 봉거도위·영상서사로 삼았다. 위상은 창성군 허광한을 통하여 봉사를 올려서 말하였다.

 3. 上思報大將軍德,乃封光兄孫山爲樂平侯,使以奉車都尉領尚書事。魏相因昌成君許廣漢奏封事,言

 

 "《춘추》에서는 세습되는 경을 비난하였으며, 송에서 3세에 걸친 대부가 없었고, 노에서는 계손씨가 전권을 누리게 되자 모두 국가를 위험스럽고 혼란하였습니다. 후원(무제의 연호로 원년이 전88년) 이후로 녹봉은 황실에서 떠나갔고, 정치는 총재(冢宰:6경의 수장 즉 이부상서)로 말미암고 있습니다.

「《春秋》譏世卿,《公羊傳》:隱三年,夏,四月,辛卯,尹氏卒。尹氏者何?天子之大夫也。其稱尹氏何?貶。曷爲貶?譏世卿。世卿,非禮也。惡宋三世爲大夫《公羊傳》曰:宋三世無大夫,三世內取也。師古曰:三世,謂襄公、成公、昭公也,內取於國之大夫也。「爲」,恐當作「無」。惡,烏路翻。及魯季孫之專權,魯自季友立僖公,行父逐東門氏,意如逐昭公,世專魯國。至哀公,惡季氏之逼而不能去,遂孫于邾。皆危亂國家。自後元以來,祿去王室,政由冢宰。

 

 이제 곽광이 죽었는데, 아들이 다시 우장군이 되었으며, 형의 아들이 추기를 잡았고, 형제들과 여러 사위들도 권세에 의지하여 병사를 관장하는 관서에 있고, 곽광의 부인인  현과 여러 딸들은 모두 장신궁에 통적을 갖고 있어서 혹 밤중에도 조문을 출입하며, 교만하고 사치하고 방종함을 아마도 제어하지 못할까 걱정이니, 마땅히 그들의 권한을 덜어내고 빼앗아서 음모를 깨고 흩어버려서 만세의 기틀을 굳게 하여 공신의 후세를 온전하게 하여야 합니다."

 今光死,子復爲右將軍,兄子秉樞機,謂領尚書事也。賢曰:樞機,近要之官也。《春秋運斗樞曰》:北斗,第一天樞,第二璇,第三機也。昆弟、諸壻據權勢,在兵官,光夫人顯及諸女皆通籍長信宮,師古曰:通籍,謂禁門之中皆有名籍,恣出入也。應劭曰:籍者,爲二尺竹牒,設其年紀、名字、物色,懸之宮門,按省相應,乃得入也。或夜詔門出入,驕奢放縱,恐寖不制,師古曰:寖,漸也。不制,不可制御也。宜有以損奪其權,破散陰謀,以固萬世之基,全功臣之世。」

 

 또 고사에는 여러 가지 올라오는 편지는 모두 두 부를 만들어서 그 하나에는 '副'자를 써 놓고, 상서를 관장하는 사람이 먼저 부본을 열어서 보고 그 말하는 내용이 좋지 아니하면 묶어 치우고 상주하지 않았다.

 又故事:諸上書者皆爲二封,署其一曰「副」,領尚書者先發副封,所言不善,屛去不奏。

 

 위상은 다시 허백을 통하여 부본을 없애버려서 이 상서가 중간에서 걸러서 가려지는 것을 막았다. 황제는 이를 좋다고 하고 위상에게 조서를 내려서 급사중으로 삼고 모두 그의 의논을 좇았다.

 相復因許伯白去副封以防壅蔽。屏,必郢翻。去,丘呂翻。帝善之,詔相給事中,皆從其議。漢三公,九卿皆外朝,今魏相給事中,則得入禁中,預中朝之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