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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의 붕어.

solpee 2019. 12. 8. 06:02

 

紀16 昭帝 元平 元 (丁未, 前74

 

 

 2. 여름, 4월 계미일(17)에 소제가 붕어하였는데, 후사가 없었다. 그 당시에 무제의 아들로는 다만 광릉왕 유서가 있을 뿐이어서 대장군 곽광과 여러 신하들이 황제로 세울 사람을 의논하였는데, 모두 광릉왕을 지지하였다. 왕이 하는 짓이 도를 잃어서( 유서는 음탕하고 힘이 좋아 솥을 들었다) 선제가 쓰지 않았던 바였으며, 곽광은 속으로 편안하지가 못하였다.

 2. 夏,四月,癸未,帝崩于未央宮;臣瓚曰:壽二十三。無嗣。時武帝子獨有廣陵王胥,大將軍光與羣臣議所立,咸持廣陵王。王本以行失道,先帝所不用;光內不自安。

 

 어떤 낭관이 서신을 올려서 말하였다.

 "주의 태왕은 태백을 폐하고 왕계를 세웠으며, 문왕은 맏아들인 백읍고를 버리고 무왕을 세웠는데, 다만 마땅함에 있는 것이니, 비록 맏아들을 폐하고 어린 사람을 세운다고 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광릉왕은 종묘를 계승할 수 없습니다."

 말이 곽광의 뜻에 맞았다.

 郎有上書言:「周太王廢太伯立王季,文王舍伯邑考立武王,師古曰:太伯者,王季之兄;伯邑考,文王長子也。舍,讀曰捨。唯在所宜,雖廢長立少可也。長,知兩翻。少,詩照翻。廣陵王不可以承宗廟。」言合光意。

 

 곽광은 서신을 양창 등에게 보여주고 그 낭관을 발탁하여 구강 태수로 삼았다.

 그날로 황후의 조서를 받아서 행대홍려사인 소부 사낙성과 종정 유덕, 광록대부 병길과 중랑장 이한을 파견하여 창읍왕 유하를 영접하여 칠승의 전거를 타고 장안의 저택으로 오게 하였다. 곽광은 또 황후에게 말을 하여 우장군 장안세를 거기장군으로 삼았다.

 光以其書示丞相敞等,擢郎爲九江太守。九江郡屬揚州,唐濠、壽、廬、滁、和州地。守,式又翻。卽日承皇后詔,遣行大鴻臚事少府樂成、宗正德、光祿大夫吉、中郎將利漢樂成,史樂成。德,劉德。吉,丙吉。利漢,不知其姓。迎昌邑王賀,乘七乘傳文帝之入立也,乘六乘傳;今乘七乘傳。傳,張戀翻。詣長安邸。諸王國皆置邸長安,此謂長安之昌邑邸也。光又白皇后,徙右將軍安世爲車騎將軍。

 

 유하는 창읍애왕의 아들인데, 나라에 있으면서 평소에 미친 듯이 방종하고 행동에는 절도가 없었다. 무제의 상에도 유하는 유람과 수렵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일찍이 방여(方輿:山東魚台)를 갔었는데, 반나절이 못되게 말을 달렸는데 200리였다.

 賀,昌邑哀王之子也,哀王,名髆,武帝子也。在國素狂縱,動作無節。武帝之喪,賀游獵不止。嘗游方與,方與縣本屬山陽郡,武帝以山陽爲昌邑王國,方與縣屬焉。方,音房。與,音豫。不半日馳二百里。..............下略.............

 

 3. 임신일(7)에 효소황제를 평릉에 장사 지냈다.

 3. 壬申,葬孝昭皇帝于平陵。平陵,屬右扶風,在長安西北七十里。自崩至葬十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