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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東烏桓反/오환의 반란과 패퇴.

solpee 2019. 12. 7. 03:47

 

紀15 昭帝 元鳳 3 (癸卯, 前78

 

 

 4. 겨울에 요동의 오환이 반란하였다. 애초에, 묵돌이 동호를 격파하였는데, 동호의 남은 무리들은 흩어져서 오환산과 선비산을 지키면서 두 개의 부족을 이루었고, 대대로 흉노에게 복속되었다.

 4. 冬,遼東烏桓反。初,冒頓破東胡,東胡餘衆散保烏桓及鮮卑山爲二族,遼東郡屬幽州,唐嘗置安東都護府於其地。東胡破見十一卷高祖六年。《後漢書》:烏桓之地在丁零西南、烏孫東北。武帝遣霍去病擊破匈奴左地,因徙烏桓於上谷、漁陽、右北平、遼東、遼西五郡塞外,爲漢偵察匈奴動靜。其大人歲一朝見。於是始置護烏桓校尉,秩比二千石。鮮卑先遠竄於遼東塞外,與烏桓相接,未嘗通中國;至後漢稍徙遼西塞外,始爲中國患。世役屬匈奴。

 

 무제가 흉노의 동쪽을 격파하였고, 이어서 오환을 상고, 어양, 우북평, 요동의 요새 밖으로 이사시키고는 한을 위하여 흉노의 동정을 살폈다. 호오환교위를 두고 그들을 감독하고 관장하면서 흉노와 왕래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이에 이르러서 부족들이 점점 강하여져서 드디어 반란한 것이다.

 武帝擊破匈奴左地,因徙烏桓於上谷、漁陽、右北平、遼東塞外,上谷、漁陽、北平皆屬幽州。上谷,唐嬀州。漁陽,唐檀、薊州。北平,唐平州之地。爲漢偵察匈奴動靜。爲,于僞翻。偵,丑鄭翻,又丑貞翻:候也。置護烏桓校尉監領之,監,古銜翻。使不得與匈奴交通。至是,部衆漸強,遂反。

 

 이보다 먼저 흉노의 3천여 기병이 오원에 침입하여 수천 명을 약탈하고 살해하였고, 후에도 수만의 기병이 남하하여 요새 근방에서 수렵하고 다니며 요새 밖애 있는 亭과 障을 공격하고 이민을 노략질하고 빼앗아갔다.

 先是,匈奴三千餘騎入五原,五原郡屬幷州。先,悉薦翻。殺略數千人;後數萬騎南旁塞獵,旁,步浪翻。行攻塞外亭障,略取吏民去。

 

 이때에 한의 변방에 있는 군현의 봉화 시설에서는 살피고 바라보는 것이 아주 정밀하여서 흉노들이 변방의 요새를 침구하는 것도 이익이 적어서 다시 요새를 침범하는 일이 드물었다. 한에서 다시 흉노의 항복한 자를 잡을 수 있었는데, 오환이 일찍이 선우의 무덤을 먼저 파서 흉노가 이를 원통히 여기고 바야흐로 2만여 기병을 발동하여 오환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是時漢邊郡烽火候望精明,匈奴爲邊寇者少利,希復犯塞。少,詩照翻。復,扶又翻;下同。漢復得匈奴降者,言烏桓嘗發先單于冢,匈奴怨之,方發二萬騎擊烏桓。

 

 곽광은 병사를 발동하여 이들을 격파하고자 하여 호군도위 조충국에게 물었다. 조충국이 말하였다.

 "오환은 중간 중간에 자주 요새를 침범하였는데 이제 흉노가 그들을 공격한다면 우리 한에게는 편리합니다. 또 흉노는 침구하여 도적질하는 일이 드물어서 북방의 변경은 다행히도 무사할 것이며, 만이들이 스스로 서로 공격하는데, 군사를 발동하여 이를 요격하는 것은 침구하도록 초청하여 일을 만드는 것이니,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霍光欲發兵邀擊之,師古曰:邀迎而擊之。以問護軍都尉趙充國,護軍都尉,秦官;武帝以屬大司馬,此時蓋屬大將軍也。充國以爲:「烏桓間數犯塞,師古曰:間,卽中間也。猶言比日也。數,所角翻。今匈奴擊之,於漢便。又匈奴希寇盜,北邊幸無事,蠻夷自相攻擊而發兵要之,要,與邀同。招寇生事,非計也!」

 

 곽광이 다시 중랑장 범명우에게 물었더니, 범명우는 공격할 수 있다고 말하자, 이에 범명우에게 벼슬을 주어 도요장군으로 삼고 2만의 기병을 거느리고 요동을 출발하게 하였다. 흉노는 한의 병사가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가버렸다.

 光更問中郎將范明友,明友言可擊,於是拜明友爲度遼將軍,度遼將軍,蓋使之度遼水以伐烏桓。至後漢,遂以爲將軍之號以護匈奴。將二萬騎出遼東。匈奴聞漢兵至,引去。

 

 애초에, 곽광은 범명우에게 경계하여 말하였다.

 "군사란 헛되이 출동하는 것이 아니니, 바로 흉노를 치는 것이 늦는다면 끝내 오환을 공격하시오."

 오환은 그때에 새로 흉노의 병사들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으며, 범명우는 흉노를 치는 것이 이미 늦게 되자 이어서 오환이 피로한 것을 타고서 그들을 공격하여 참수한 것이 6천여 급이었고, 세 명을 왕의 머리를 얻었다. 흉노는 이로부터 두려워하여 다시는 출병할 수가 없었다.

 初,光誡明友:「兵不空出,卽後匈奴,遂擊烏桓。」師古曰:後匈奴者,言兵遲後,邀匈奴不及。後,戶遘翻。烏桓時新中匈奴兵,師古曰:爲匈奴所中傷。中,竹仲翻。明友旣後匈奴,因乘烏桓敝,擊之,斬首六千餘級,獲三王首。匈奴由是恐,不能復出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