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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8일 오전 07:46立冬末候雉入大水爲蜃初日.

solpee 2019. 11. 18. 07:56

悲愁歌, 烏孫公主歌, 黃鵠歌.
《漢書·西域傳下》 《玉臺新咏》 권 제9. 《樂府詩集》권 제84 劉細君 作 “雜歌遙辭”


吾家嫁我兮天一方/우리 조정 나 시집보내니 하늘끝이라
遠託異國兮烏孫王/머나먼 나라로 의탁하니 오손왕이네
穹廬為室兮旃為牆/게르로 집을 삼고 양탄자로 벽 만들며
以肉為食兮酪為漿/고기로 밥을 먹고 타락죽이 국물이네
居常土思兮心內傷/언제나 고국 생각에 마음만 아파오니
願為黃鵠兮歸故鄉/부디 고니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파

 

※. 劉細君은 서한시대 여인으로, 江都王에 책봉된 劉建의 딸이다. (세군은 증조부가 한 景帝 劉啟이며, 조부는 江都 易王 劉非다.) 

 江都公主에 책봉되어 한 무제 元封 6년(기원전 105)에 烏孫國王 昆莫獵驕靡한테 시집간다. (顏師古가 이르기를 “昆莫은 본디 王號이며, 그 이름이 獵驕靡라, 그리하여 사서에서는 그를 昆彌라 한다”고 했다.) 劉細君은 曾祖父가 漢 景帝 劉啟이며, 祖父는 江都 易王 劉非다.  

 

 당시 한나라 조정은 북방의 강자 匈奴를 견제하고자, 그 오른편에 위치하는 烏孫 왕국과의 형제의 나라라는 화친 정책을 추구하거니와, 이를 위해 유세곤이 일종의 볼모로 간택되어 간다. 이후 유세곤을 烏孫公主라 부르게 된다. 
 元狩 2년(기원전 121), 그의 부친 劉建이 모반을 기도했다가 발각되어 자살하고, 모친 역시 같은 혐의로 참수된다. 다만 유세곤은 어리다 해서 환난을 피한다. 이 무렵 匈奴汗國 渾邪王이 투항하자 河西走廊이 한나라 영역이 된다. 이를 통해 한나라는 서역 제국과 마침내 직접 통교하게 된다. 
 元鼎 원년(기원전 116), 張騫이 이끄는 제2차 서역 사절단이 출발해 烏孫王國을 면담한다. 이후 한나라는 西域 諸國과 왕래가 나날이 많아진다. 이 과정에서 烏孫王國은 중국의 풍부한 물산에 놀라 중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元封 3년(기원전 108), 한나라는 서역 정벌군을 일으켜 樓蘭王을 포로로 잡고 車師를 파괴한다. 이에 놀란 烏孫王 昆莫은 한나라에 신복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흉노는 오손을 정벌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곤막은 한나라에 구혼하기로 하고 이런 혼인동맹을 통해 흉노를 견제하고자 한다. 

元封 6년(기원전 105), 공주를 곤막한테 시집보내 오손과 화친하기로 하니, 유세곤을 공주로 책봉하고는 그를 오손왕한테 시집보낸다. 이때 한 무제는 車馬와 황실 기물을 가득 실어보내는 한편, 부속 관리와 환관, 궁녀 등 수백 명을 파견하는데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오손국 감시용이었다. 이에 昆莫은 유세곤을 右夫人에 책봉한다. ( 《漢書·西域傳》에 이르기를, 세군공주가 출가 시에 한 무제가 乘輿와 황실 기물을 잔뜩 하사하고, 관속과 비서진 수백 명을 따르게 해서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