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庇其葉而傷枝/잎을 보호하다 가지를 상함.

solpee 2019. 11. 16. 16:15

 

《漢紀11 武帝 元狩 2 (庚申, 前121

 

 

 6. 가을에 흉노의 혼야왕이 항복하였다. 이때에 흉노의 선우는 혼야왕과 휴도왕이 서쪽에 있었는데, 한에게 수만 명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간 것에 화가 나서 그들을 불러 죽이려고 하였다. 혼야왕과 휴도왕은 두려워서 얼른 한에 항족하기로 모의하고, 먼저 사자를 보내어 변경에서 한인들을 막으려 하며 천자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6. 秋,匈奴渾邪王降。是時,單于怒渾邪王、休屠王居西方爲漢所殺虜數萬人,欲召誅之。渾邪王與休屠王恐,謀降漢,先遣使向邊境要遮漢人,要,一遙翻。令報天子。

 

 이때 대행 이식이 장차 하에 성을 쌓으려고 하다가 혼야왕의 사자를 만나 말을 달려 황제에게 소식을 전하였다. 천자는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이 거짓으로 항복하고서 변경을 습격할까 염려하여 표기장군으로 하여금 병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그들을 영접하게 하였다.

 是時,大行李息將城河上,得渾邪王使,使,疏吏翻。【章:十四行本「馳」上有「卽」字;乙十一行本同;張校同,云無註本亦無「卽」字。】傳以聞。傳,株戀翻;下同。天子聞之,恐其以詐降而襲邊,乃令票騎將軍將兵往迎之。

 

 휴도왕이 후회하자 혼야왕은 그를 죽이고 그의 무리들을 병합하였다. 표기장군이 이미 황하를 건너 혼야왕과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혼야왕의 비장들은 한의 군사들을 보자 대부분 항복하기를 원치 아니하고 자못 숨어서 도망하였다. 표기장군은 말을 달려 들어가서, 그들 가운데 도망치려는 자 8천 명의 목을 베고, 드디어 오직 혼야왕을 보내어 전거에 테워서 행재소에 도착하게 하고, 그 무리들을 모두 거느리고 황하를 건너왔다.

 休屠王後悔,渾邪王殺之,幷其衆。票騎旣渡河,與渾邪王衆相望。渾邪王裨將見漢軍,而多不欲降者,師古曰:恐被掩覆也。頗遁去。票騎乃馳入,得與渾邪王相見,斬其欲亡者八千人,遂獨遣渾邪王乘傳詣至【章:十四行本「傳」下有「先」字,無「至」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行在所,傳,張戀翻。盡將其衆渡河。

 

 항복한 사람이 4만여 명이었지만 10만 명이라고 불렀다. 이미 장안에 이르자, 천자가 상으로 내린 것이 수십 거만이었고, 혼야왕을 1만호로 책봉하고 탐음후로 삼았다. 그의 비왕 호독니 등 네 명도 모두 열후로 삼았으며 표기장군에게는 1,700호의 봉읍이 더해졌다.

 降者四萬餘人,號稱十萬。旣至長安,天子所以賞賜者數十巨萬;封渾邪王萬戶,爲漯陰侯,班《志》,漯陰縣屬平原郡。漯,他合翻。封其裨王呼毒尼等四人皆爲列侯;呼毒尼爲下摩侯,雁疪爲煇渠侯,禽黎爲河綦侯,文當戶調雖爲常樂侯。文穎曰:雁,音鷹。疪,音庇蔭之庇。師古曰:疪,匹履翻。益封票騎千七百戶。

 

 혼야왕이 항복할 때 한에서는 수레 2만 승을 동원하여 그들을영접하였는데, 현관에 돈이 없어서 민간으로부터 말을 빌리려 하니, 민간에서는 혹 말을 숨겨서, 말이 다 갖추어지지 아니하였다. 황상은 화가 나서 장안령의 목을 베고자 하였는데, 우내사인 급암이 말하였다.

 渾邪之降也,漢發車二萬乘以迎之,《考異》曰:《漢書‧食貨志》云「三萬兩」。今從《史記‧平準書》、《汲黯傳》。縣官無錢,從民貰馬,貰,始制翻,貸也。師古曰:賒買也。民或匿馬,馬不具。上怒,欲斬長安令,右內史汲黯曰:

 

 "장안령은 죄가 없고, 다만 신 급암의 목을 베신다면 백성들은 말을 내어놓으려 할 것입니다. 또 흉노가 그의 주군을 배반하고 한에 항복하였으니, 한에서는 그를 천천히 현들에게 차례대로 전거를 보내게 하면 되지, 어찌하여 천하를 소동시켜 중국을 피로하게 하여 이적의 사람들을 섬기려 하십니까?"

「長安令無罪,獨斬臣黯,民乃肯出馬。且匈奴畔其主而降漢,漢徐以縣次傳之,何至令天下騷動,罷敝中國罷,讀曰疲。而以事夷狄之人乎!」

 

 황상은 잠자코 있었다.

 혼야왕이 이르자 상인이나 저자에 있던 사람으로 걸려들어 죽음을 당하게 된 사람이 500여 명이었는데, 급암이 고문전에서 황제에게 알현을 청하여 말하였다.

 上默然。及渾邪至,賈人與市者坐當死五百餘人,黯請間見高門,晉灼曰:《三輔黃圖》,未央宮中有高門殿。賈,音古。見,賢遍翻。曰:

 

 "무릇 흉노들은 해당하는 길을 막은 것을 공격하고 화친하기를 거절하였으니, 중국에서는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죽이게 되었는데, 죽고 다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비용도 수백 거만으로 헤아려집니다. 신은 어리석으나 폐하께서 호인들을 잡으면 모두 노비로 삼으셔서, 종군하다가 죽은 사람의 집에 내려 주시고 노획한 것도 이어서 그들에게 주어서, 천하 사람들이 고생한 것에 대해 사죄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채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夫匈奴攻當路塞,言塞障當匈奴所入之路也。絕和親,中國興兵誅之,死傷者不可勝計,勝,音升。而費以巨萬百數。師古曰:卽數百鉅萬也。臣愚以爲陛下得胡人,皆以爲奴婢,以賜從軍死事者家,所鹵獲,因予之,鹵,與虜同。予,讀曰與。以謝天下之苦,塞百姓之心。師古曰:塞,滿也。塞,悉則翻。

 지금 설사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혼야왕이 수만 명을 인솔하여 항복해 오니 폐하께서는 부고를 다 비워서 상을 내리고, 양민을 징발하여 그들을 봉양하게 함은 마치 교만한 아들놈을 받드는 것과 같으니, 어리석은 백성이 장안에 있는 물건을 매매하였는데, 문리가 변방의 관문에서 재물을 망령되이 유출시킨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今縱不能,渾邪率數萬之衆來降,虛府庫賞賜,發良民侍養,譬若奉驕子,愚民安知市買長安中物,而文吏繩以爲闌出財物于邊關乎!應劭曰:闌,妄也。律:胡市,吏民不得持兵器及錢出關;雖於京師市買,其法一也。臣瓚曰:無符傳出入爲闌也。

 폐하께서 설사 흉노에게서 물자를 얻어서 천하의 사람들에게 사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또한 사소한 법조문을 가지고 무지한 자 500명을 죽이려고 하시니, 이는 이른바 '잎을 비호하다가 가지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은 가만히 폐하를 위하여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陛下縱不能得匈奴之資以謝天下,又以微文殺無知者五百餘人,是所謂『庇其葉而傷枝』者也。臣竊爲陛下不取也。」爲,于僞翻。

 황상은 잠자코 있다가 허락하지 않고 말하였다.

 "내가 오랫동안 급암의 말을 듣지 못하였더니, 이제 또 망발을 하는구나!"

 上默然不許,曰:「吾久不聞汲黯之言,今又復妄發矣!」

 

 얼마를 있다가, 마침내 항복해 온 자들을 변방의 다섯 개 군(隴西郡, 北支郡, 上郡, 朔方郡, 雲中郡)인 옛날의 요새 박에 나누어 이사를 시켯는데, 모두 하의 남쪽이었으며, 이어서 그들의 옛날 습속에 따라 5개의 속국을 만들었다. 金城(蘭州市)의 하서에서 서쪽으로 나아가 남산을 나란히 하여 염택에 으르기까지는 텅 비게 하였고, 흉노들이 없었으며, 흉노들은 때로 척후들을 보내었지만 드문 일이었다.

 居頃之,乃分徙降者邊五郡故塞外,而皆在河南,因其故俗爲五屬國。五郡,謂隴西、北地、上郡、朔方、雲中也。故塞,秦之先與匈奴所關之塞。自秦使蒙恬奪匈奴地而邊關益斥,秦、項之亂,冒頓南侵,與中國關於故塞。及衞青收河南,而邊關復蒙恬之舊。所謂故塞外,其地在北河之南也。師古曰:凡言屬國,存其國號而屬漢朝,故曰屬國。《史記正義》曰:以來降之民徙置五郡,各依本國之俗而屬於漢,故曰屬國。而金城河西,河水出金城河關縣西南塞外積石山,東流逕金城郡界。自允吾以西,通謂之金城門。渡河而西,則武威等四郡之地。然金城郡昭帝於元始六年方置,史追書也。西並南山至鹽澤,空無匈奴,並,步浪翻。匈奴時有候者到而希矣。

 

 휴도왕의 태자인 日䃅와그 어머니인 알지(閼氏;yānzhī;흉노왕의 정실) 그리고 동생 倫은 함께 관청에 몰입되어 황문에 보내져서 말을 길렀다. 오래 지나서 황제가 유연을 열었다가 말을 보는데 후궁들이 옆에 가득하였고, 금일제 등 수십 명이 말을 끌고 전 아래를 지나가자, 몰래 훔쳐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만 일제에게 이르러서는 홀로 감히 하지 않았다.

 休屠王太子日磾與母閼氏、弟倫俱沒入官,輸黃門養馬。久之,磾,丁奚翻。班《表》,黃門屬少府。師古曰:黃門之署,職任親近,以供天子,百物在焉。閼氏,音煙支。帝游宴,見馬,師古曰:方於游宴之時而召閱諸馬。後宮滿側,日磾等數十人牽馬過殿下,莫不竊視,師古曰:視宮人。至日磾獨不敢。

 

 일제는 키가 8척2촌이나 되고 용모도 아주 엄숙하며, 말 또한 살찌고 보기 좋아서 황상은 그를 기이하게 여기며 물었고, 본래의 상황을 갖추어 대답하였고, 황상은 기이하게 여거서, 그날로 그에게 목욕을 하게하고 의관을 차려입게 하고 벼슬을 주어 마감으로 삼았고, 시중·부마도위·광록대부로 승진하였다.

 日磾長八尺二寸,長,直亮翻。容貌甚嚴,馬又肥好,上異而問之,具以本狀對;上奇焉,卽日賜湯沐、衣冠,拜爲馬監,黃門有馬監、狗監。遷侍中、駙馬都尉、光祿大夫。侍中,得出入禁中。駙馬都尉,帝所置,秩比二千石。師古曰:駙,副馬也;非正駕車,皆爲副馬。一曰:駙,近也,疾也。光祿大夫,本中大夫,帝改其名。

 

 일제는 이미 친하고 가깝게 되었으나, 일찍이 허물과 실수를 한 일이 없어서 황상은 그를 대단히 믿고 아꼈으며, 상으로 내려 주어 천금을 쌓았고, 외출할 때에는 참승하였으며, 들어와서는 좌우에서 모셨다. 귀한 친지들은 대부분 몰래 원망하며 말하였다.

 日磾旣親近,近,其靳翻。未嘗有過失,上甚信愛之;賞賜累千金,出則驂乘,乘,繩正翻。入侍左右。貴戚多竊怨曰:

 

 "폐하께서 망령되이 일개의 호족 아이를 얻어서 도리어 이를 귀중히 한다."

 황상은  이 소식을 듣고 더욱 후하게 해주었다. 휴도왕은 금인을 만들어서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주인이었으니, 그러므로 황제는 일제에게 금씨(金氏;jīnshì) 성을 내려 주었다.

「陛下妄得一胡兒,反貴重之。」上聞,愈厚焉。以休屠作金人爲祭天主,故賜日磾姓金氏。爲金氏貴顯張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