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假賊兵,爲虎翼者也/도적에게 무기를 주고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다.

solpee 2019. 11. 2. 08:33

《漢紀6 文帝 前8 (己巳, 前172

 

 

 1. 여름, 회남여왕의 아들인 유안 등 네 명을 책봉하여 열후로 삼았다. 가의는 황상이 반드시 장차 이들을 다시 왕으로 할 것을 알고 상소를 올려 간하였다.

 1. 夏,封淮南厲王子安等四人爲列侯。淮南厲王長子安封阜陵侯,勃封安陽侯,賜封陽周侯,良封東城侯。賈誼知上必將復王之也,上疏諫曰︰

 

 "회남왕이 패역무도한 것은 천하에서 누가 그 죄를 모릅니까! 폐하께서는 다행히도 그들을 사면하고 옮겼지만, 스스로 병이 들어서 죽었으니 천하에서 누가 왕의 죽음을 마땅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죄인의 아들을 받들어 높이니, 바로 천하에서 비방을 듣기에 충분합니다.

「淮南王之悖逆無道,悖,蒲內翻。天下孰不知其罪!陛下幸而赦遷之,自疾而死,天下孰以王死之不當!當,丁浪翻。今奉尊罪人之子,適足以負謗於天下耳。師古曰︰言若尊王其子,則是淮南王無罪,漢枉殺之也。

 

 이 사람들이 조금씩 자라면 어찌 그 아버지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백공승이 아버지를 위하여 원수 갚아야 될 사람은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였습니다. 백공이 난을 일으킨 것은 나라를 빼앗아서 임금을 대신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분한 마음을 드러내서 마음을 시원하게 하려고 날카로운 손으로 원수의 가슴을 찔러서 진실로 함께 망해버리자고 하였을 뿐입니다.

 此人少壯,師古曰︰少壯,猶言稍長大。少,詩沼翻。豈能忘其父哉!白公勝所爲父報仇者,大父與叔父也。爲,于僞翻。白公爲亂,非欲取國代主;發忿快志,剡手以衝仇人之匈,固爲俱靡而已。白公勝,楚平王之孫,太子建之子。建得罪於平王,出奔而死於鄭,勝又奔吳;子胥以吳師入郢,勝蓋預焉,是讎其大父也。及其還楚,殺子西、子期,是讎其叔父也。剡,式冉翻;利也。靡,武彼翻;師古曰︰言與讎人俱斃。康曰︰武皮切,碎也。

 

 회남은 비록 작지만 경포가 일찍이 이곳을 이용하였었는데, 한이 아직도 존재하니 특별히 다행일 뿐입니다. 무릇 원수들을 제멋대로 하게하는 것은 한을 위태롭게 하기에 충분할 밑천이니, 정책에서는 좋지 아니합니다.

 淮南雖小,黥布嘗用之矣,事見十二卷高祖十一年。漢存,特幸耳。師古曰︰言漢之勝布得存,此直天幸耳。夫擅仇人足以危漢之資,於策不便。師古曰︰言假四子以資權,則當危漢。

 

 그들에게 많은 재물을 내리니 이는 오자서나 백공이 광도에서 보복하는 일이 있지 않다고 하여도, 바로 전저와 형가가 두 개의 기둥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이 있을까 의심이 되니, 이는 이른바 도적에게 무기를 주는 것이며,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바라건데 폐하께서는 조금 계책을 보류하십시오."

 황상은 이 말을 듣지 않았다.

  予之衆積之財,予,讀曰與。此非有子胥、白公報於廣都之中,卽疑有剸諸、荊軻起於兩柱之間,剸諸,吳人,爲闔閭刺殺王僚。荊軻事見七卷始皇二十年。兩柱之間,南面鄕明,人君聽政正坐之處。剸,音專。所謂假賊兵,爲虎翼者也。應劭曰︰《周書》云︰無爲虎傅翼,將飛入邑,擇人而食之。願陛下少留計!」少,詩沼翻。上弗聽。

 

 

《漢紀6 文帝 前10 (辛未, 前170

 

 

 2. 장군인 박소(박태후의 동생이자 문제의 외삼촌)가 한의 사자를 죽였다. 황제는 차마 그에게 주살을 가하지 못하고 공경들로 하여금 그를 좇아서 술을 마시게 하고 스스로 몫을 하게하려고 하였으나 박소가 하려 하지 않으니, 군신들로 하여금 상복을 입고 그에게 가서 곡을 하니 마침내 자살하였다.

 2.將軍薄昭殺漢使者。帝不忍加誅,使公卿從之飲酒,欲令自引分,引分,猶言引決也。昭不肯;使羣臣喪服往哭之,乃自殺。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이덕유(당 재상)는 생각하였습니다. '한 문제가 박소를 주살한 것은 과단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의에 있어서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진의 강공이 진 문공을 호송하면서 흥이 나기를 마치 함께 살아 있는 것 같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태후가 아직 살아 있고, 또 그의 유일한 동생이 박소인데 이를 단안하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지만 어머니를 위로하는 마음을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臣光曰︰李德裕以爲︰「漢文帝誅薄昭,斷則明矣,斷,丁亂翻;下同。於義則未安也。秦康送晉文,興如存之感;《詩‧小序》曰︰秦康公之母,晉獻公之女。文公遭驪姬之難,未反而秦姬卒。穆公納文公,康公時爲太子,贈送文公于渭之陽;念母之不見也,我見舅氏,如母存焉。況太后尚存,唯一弟薄昭,斷之不疑,非所以慰母氏之心也。」

 

 신은 어리석지만 '법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공기이고, 오직 법을 잘 유지하는 것은 가깝건 멀건 똑 같아서 시행되지 아니할 것이 없으니, 사람이 감히 믿는 바를 갖고 있다고 하여서 이를 범하는 것은  없습니다.

 臣愚以爲法者天下之公器,惟善持法者,親疏如一,無所不行,則人莫敢有所恃而犯之也

 

 무릇 박소는 비록 본디 어른이라고 불렀지만, 문제는 그에게 현명한 사부를 두지 않고, 무력을 총괄하도록 하는 일에 썼으니, 교만하여 황상을 범하고 한의 사자를 죽이기에 이른 것은 믿는 데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까?

 夫薄昭雖素稱長者,文帝不爲置賢師傅而用之典兵;驕而犯上,至於殺漢使者,非有恃而然乎!

 

 만약에 그를 좇아서 사면하였다면 성제와 애제 시절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위의 문제는 일찍이 한 문제의 미덕을 칭찬하였지만 그가 박소를 죽인 것을 봐주지 않고서 말하였습니다. '외삼촌과 태후의 집안인데 다만 은혜로 마땅히 길러주어야지, 권력을 빌려준 것은 마땅하지 않으며 이미 그리하고 죄를 지어 법에 저촉되게 하였으니, 또한 해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若又從而赦之,則與成、哀之世何異哉!魏文帝嘗稱漢文帝之美,而不取其殺薄昭,曰︰「舅后之家,但當養育以恩而不當假借以權,旣觸罪法,又不得不害。」

 

 문제가 처음에 박소가 범법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을 나무란 것인데, 이 말은 제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한즉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하였다면 장차 처음에 신중해야 합니다."

 譏文帝之始不防閑昭也,斯言得之矣。然則欲慰母心者,將愼之於始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