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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팔아 아버지와 군주를 지켰으니 옳은 일이다.

solpee 2019. 10. 20. 17:00

 

《漢紀5 高皇后 8 (辛酉, 前180

 

 

 4. 가을, 7월에 태후의 병이 심하게 되자 마침내 조왕 여록을 상장군으로 삼아서 북군을 통솔하게 하고 여왕 여산은 남군에 있게 하였다. 태후는 여록과 여산에게 훈계하여 말하였다.

 4. 秋,七月,太后病甚,乃令趙王祿爲上將軍,居北軍;呂王產居南軍。班《表》︰中壘校尉掌北軍壘門外。又有中尉掌徼循京師,屬官有中壘、寺互等令、丞。至後漢始置北軍中候,掌監五營。劉昭《註》曰︰舊有中壘校尉,領北軍營壘之事;中興,省中壘,但置中候以監五營。又據班《表》︰中壘以下八校尉,皆武帝置。意者武帝以前,北軍屬中尉,故領中壘令、丞等官;南軍蓋衞尉所統。班《表》︰衞尉掌宮門衞屯兵。周勃之入北軍也,尚有南軍。乃先使曹窋告衞尉毋入呂產殿門,然後使朱虛侯逐產,殺之未央宮郎中府吏廁中,以此知南軍屬衞尉也。太后誡產、祿曰︰

 

 "여씨가 왕이 된 것을 대신들이 불평을 하고 있다. 내가 바로 죽게 되면 황제는 나이가 어리니 대신들이 변란을 일으킬까 두렵다. 반드시 병사를 점거하고 궁궐을 호위하며, 신중하게 상여를 전송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통제되기 때문이다.!"

「呂氏之王,大臣弗平。我卽崩,帝年少,大臣恐爲變。必據兵衞宮,愼毋送喪,爲人所制!」

 

 30일(신사)에 태후가 붕어하였고, 조서를 남겼는데, '천하를 크게 사면하고, 여왕 여산을 상국으로 삼고, 여록의 딸을 제후로 삼으라.'고 하였다. 고후를 이미 장사지내고 나서, 좌승상 심이기를 황제의 태부로 삼았다.

 辛巳,太后崩,遺詔︰大赦天下,以呂王產爲相國,以呂祿女爲帝后。高后已葬,以左丞相審食其爲帝太傅。《考異》曰︰《史記‧將相表》︰「八年七月辛巳,食其爲太傅;」「九月丙戌,復爲丞相;後九月免。」《漢書‧公卿表》︰「七年七月辛巳,食其爲太傅;」「八年九月,復爲丞相;後九月免。」以《長曆》推之︰八年七月無辛巳,九月無丙戌,閏月羣臣代邸上議,無食其名。二《表》皆誤,今從《史記‧本紀》,免相在此月。《本紀》又云︰「八月壬戌,食其復爲左丞相。」亦誤。

 

 5. 여러 여씨들이 변란을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대신 강후와 관영 등을 두려워하여 아직 감히 발동하지 아니하였다. 주허후는 여록의 딸을 처로 삼았으니 그런 고로 그 음모를 알아서 마침내 몰래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형인 제왕 유양에게 말하고 군사를 내서 서쪽으로 나오고, 주허후와 동모후(劉章의 동생 劉興)가 내응하여 여러 여씨를 죽이고 제왕을 세워서 황제로 삼고자 하였다. 제왕이 마침내 그의 장인인 사균과 낭중령 축오 그리고 중위 위발과 더불어 몰래 군사를 발동하기로 모의하였다.

 제의 재상 소평이 말을 듣지 않았다.

 5. 諸呂欲爲亂,畏大臣絳、灌等,未敢發。朱虛侯以呂祿女爲婦,故知其謀,乃陰令人告其兄齊王,欲令發兵西,朱虛侯、東牟侯爲內應,以誅諸呂,立齊王爲帝。齊王乃與其舅駟鈞、郎中令祝午、中尉魏勃陰謀發兵。齊相召平弗聽。班《表》︰諸侯王,高祖初置,有太傅輔王,內史治國民,中尉掌武職,丞相統衆官,如漢朝。景帝中五年,令諸侯王不得復治國,天子爲置吏,改丞相曰相。武帝分漢內史爲左右,後又更右爲京兆尹,左爲馮翊,中爲執金吾,郎中令爲光祿勳;故王國如故,損其郎中令秩千石;改太僕曰僕,秩亦千石。成帝綏和元年,更令相治民如郡太守,中尉如郡都尉。康曰︰廣陵人召平與東陵侯召平及此召平,凡三人。此召平之子奴,以平死事封黎侯,見《功臣表》。召,與邵同。《姓譜》︰駟,鄭七穆駟氏之後。祝,周武王封黃帝之後於祝,後以爲氏。..........중략............

 

  태위가 북군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양평후 기통이 상부절(부절을 주관하는 직)이었는데 마침내 부절을 가지고 고쳐서 태위에게 부절을 받도록 하였다. 태위는 다시 역기와 전객 유계에게 명령하여 먼저 여록에게 유세하게 하였다.

 太尉欲入北軍,不得入。襄平侯紀通尚符節,乃令持節矯內太尉北軍。班《志》,襄平縣屬遼東郡。張晏曰︰紀通,紀信子也。尚,主也;今符節令也。晉灼曰︰紀信焚死,不見其後。《功臣表》云︰通,紀成之子,以成死事故封侯。貢父曰︰漢祖以善用人得天下,豈忘紀信之功哉!疑成者,卽信之一名也。通尚符節,故使持節矯以帝命內勃北軍。內,讀曰納。太尉復令酈寄與典客劉揭先說呂祿曰︰復,扶又翻。班《志》︰典客,秦官,掌諸侯、歸義蠻夷;景帝中六年,更名大行令;武帝太初元年,更名大鴻臚。揭,音竭。

 

 "황제가 태위로 하여금 북군을 지키게 하고, 족하에게는 국으로 가기를 원하였습니다. 급히 장군의 인새를 돌려보내서 사직하고 떠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화가 또 일어납니다."

 여록은 역기가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고 여기고 드디어 인새를 풀어서 전객에게 부탁하고, 군사를 태위에게 주었다.

「帝使太尉守北軍,欲足下之國。急歸將印,辭去!不然,禍且起。」呂祿以爲酈況不欺己,遂解印屬典客,而以兵授太尉。

 

 태위가 북군에 이르니 여록은 이미 떠났다. 태위가 들어서자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말하였다.

 "여씨를 위하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를 위하면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

 군중에서 모두 왼쪽 어깨를 드러냈다.

 太尉至軍,呂祿已去。太尉入軍門,行令軍中曰︰「爲呂氏右袒,爲劉氏左袒!」師古曰︰袒者,脫衣袖而肉袒也;左、右袒者,偏脫其一耳。袒,徒旱翻。鄭氏註《覲禮》云︰凡爲禮事者左袒;若請罪待刑則右袒。軍中皆左袒。

 

 태위가 드디어 북군을 거느렸지만 그러나 아직도 남군이 남아 있었다. 승상 진ㅊ평이 마침내 주허후 유장을 불러서 태이를 돕게 하니 태위는 주허후에게 명령하여 군문을 감독하게 하고 평양후(어사대부)를 시켜서 위위(금군사령관)에게 알리게 하여 말하였다.

 "상국 여산은 궁전 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太尉遂將北軍;然尚有南軍。丞相平乃召朱虛侯章佐太尉;太尉令朱虛侯監軍門,監,古銜翻。令平陽侯告衞尉︰「毋入相國產殿門!」衞尉,掌宮門衞屯兵。平陽侯時爲御史大夫,蓋將丞相之命以告衞尉,使毋納產也。

 

 

 여산은 여록이 이미 북군을 떠난 것을 모르고 마침내 미앙궁으로 들어가서 변란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궁전 문에 이르렀으나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배회하며 왔다갔다하였다. 평양후는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여 말을 달려 태위에게 가서 말하였다. 태위는 오히려 여러 여씨를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여 감히 그를 죽이라고 공언하지 못하고 마침내 주허후에게 말하였다.

 "급히 입궁하여 황제를 호위하라!"

 呂產不知呂祿已去北軍,乃入未央宮,欲爲亂。至殿門,弗得入,徘徊往來。平陽侯恐弗勝,馳語太尉。語,牛倨翻。太尉尚恐不勝諸呂,未敢公言誅之,乃謂朱虛侯曰︰「急入宮衞帝!」....중략....

 

 

 드디어 사람을 파견하여 여러 갈래로 나누어서 여러 여씨의 남여를 모두 체포하여 어린이고 어른이고 가릴 것 없이 모두 목을 베었다. 다음 날인 5일(신유)에 여록을 체포하여 죽이고 여수는 태장을 때려 죽였고, 사람을 시켜서 연왕 여통을 주살하고 노왕 장언을 폐위시켰다. 12일(무진)에 제천왕 유태를 옮겨서 양에서 왕 노릇하게 하였다. 주허후 유장을 파견하여 여러 여씨를 죽인 일을 제왕에게 알리고 군사행동을 철폐하게 하였다.

 遂遣人分部悉捕諸呂男女,無少長皆斬之。分,扶問翻。辛酉,捕斬呂祿而笞殺呂?,使人誅燕王呂通而廢魯王張偃。戊辰,徙濟川王王梁。呂產旣誅,故徙太王梁。遣朱虛侯章以誅諸呂事告齊王,令罷兵。

 

 관영은 형양에 있다가 위발이 본래 제왕을 교사하여 군사를 일으키게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로 하여금 위발을 불러오게 하여 도착하자 그를 문책하였다. 이에 위발이 말하였다.

 "잘못하여 불을 낸 집에서 어느 겨를에 먼저 어른에게 말씀드리고 나서 불을 끄겠습니까?"

 灌嬰在滎陽,聞魏勃本敎齊王舉兵,使使召魏勃至,責問之。勃曰︰「失火之家,豈暇先言丈人而後救火乎!」

 

 

 이어서 물러나 섰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말할 수 없을까 두려워하며 끝내 다른 말은 없었다. 관영이 그 모습을 자세히 보고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사람들이 위발은 용감하다고 생각하였는데, 망령되고 용렬한 사람일 뿐이로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위발을 놓아주었다. 관영의 군사도 역시 형양에서 철폐하고 돌아갔다.

 因退立,股戰而栗,師古曰︰言以社稷將危,故舉兵而正之,不暇待有詔命也。股,脚也。戰者,懼之甚也。栗,與慄同。恐不能言者,終無他語。灌將軍熟視笑曰︰「人謂魏勃勇;妄庸人耳,何能爲乎!」乃罷魏勃。灌嬰兵亦罷滎陽歸。

 

 

 반고가 찬탄하였습니다.

 

 "효문제 때에 천하에서는 역기가 친구를 팔았다고 하였다. 무릇 친구를 팔았다는 것은 이익을 보고 의를 잊는 것을 말한다. 만약에 역기처럼 아버지가 공신이면서도 또 잡혀 위협을 당하였다면, 비록 여록을 꺽더라도 사직을 안정시켰으니,  의당 군주와 아버지를 살아남게 하는데 있었으니, 옳은 일이다.

 班固贊曰︰孝文時,天下以酈寄爲賣友。言寄與祿友善,詭說之出游,因奪其兵而誅之,是寄賣友也。夫賣友者,謂見利而忘義也。若寄父爲功臣而又執劫;雖摧呂祿以安社稷,誼存君親可也。師古曰︰周勃劫其父,令其子行說。予謂劫者,劫質也。蓋劫寄父商爲質,諭以不行說祿將殺之也。蓋當時皆以寄爲賣友,故固發明父子、朋友各有其倫,爲人臣子者當知所緩急先後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