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非其種者,鋤而去之/그 종자가 아닌것은 호미로 매어 버리리라!

solpee 2019. 10. 20. 16:45

 

《漢紀5 高皇后 7 (己未, 前181

 

 

 8. 이때에 여러 여씨들이 권력을 멋대로 하고,용사하였는데, 주허후 유장(유방의 손자)은 나이가 스무 살이고, 기력도 가지고 있어서 유씨들이 직책을 얻지 못하는 것을 분하게 생각하였다. 일찍이 들어가서 태후를 모시고 연회에서 술을 마시는데, 태후가 유장에게 주리(酒吏:주흥을 책임지는 사람)를 하라 하였다. 유장이 스스로 요청하여 말하였다.

 8. 是時,諸呂擅權用事;朱虛侯章,年二十,有氣力,忿劉氏不得職。嘗入侍太后燕飲,太后令章爲酒吏。章自請曰︰

 

 "신은 장수의 종자입니다. 청컨대 군법으로 술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태후가 말하였다.

 "좋다."

 술이 취하자 유장이 '경전가'를 부르겠다고 청하니, 태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유장이 노래하였다.

 "깊이 갈아 씨를 뿌리고, 싹이 돋아나면 솎으려 하니, 그 종자가 아닌 것은 호미로 매어 버리리라!"

 태후는 잠자코 있었다.

「臣將種也,將,卽亮翻。種,章勇翻;下其種同。請得以軍法行酒。」太后曰︰「可。」酒酣,章請爲《耕田歌》;太后許之。章曰︰「深耕穊種,立曲欲疏;非其種者,鋤而去之!」師古曰︰穊,稠也。穊種,言多生子孫也。疏立者,四散置之,令爲藩輔也。非其種者鋤而去之,以斥諸呂也。穊,音冀。去,羌呂翻。太后默然。

 

 얼마 후에 여러 여씨 가운데 한 사람이 술에 취하여 술에서 도망하니 유장이 좇아가서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고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술을 피하여 도망하는 사람이 있어서, 신이 삼가 군법을 시행하여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頃之,諸呂有一人醉,亡酒,章追,拔劍斬之而還,報曰︰「有亡酒一人,臣謹行法斬之!」師古曰︰亡酒,避酒而逃亡也。

 

 태후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으나, 이미 그 군법을 시행하도록허락하였으므로 죄를 줄 수가 없었고 이어서 끝냈다.

 太后左右皆大驚,業已許其軍法,無以罪也;因罷。自是之後,諸呂憚朱虛侯,雖大臣皆依朱虛侯,劉氏爲益強。爲,于僞翻;下因爲同。

 

 진평은 여러 여씨들을 걱정하였으나 힘으로 통제할 수가 없었고, 그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 일찍이 조용히 홀로 깊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육가가 곧바로 들어가서 앉았으나, 진 승상이 쳐다보지 않았다. 육생이 말하였다.

 陳平患諸呂,力不能制,恐禍及己;嘗燕居深念,師古曰︰以國家不安,故靜居獨慮其方策。陸賈往,直入坐;而陳丞相不見。師古曰︰言不因門人將命而徑自入座,平方深思,不覺其至。坐,徂臥翻。陸生曰︰

 

 "무슨 생각이 그렇게 깊습니까?"

 진평이 말하였다.

 "그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헤아려 보시오."

 육생이 말하였다.

 "족하께서는 아주 부귀하시니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러나 근심거리가 있다면 여러 여씨와 어린 황제를 걱정하는데 불과할 것입니다."

 진평이 말하였다.

 "그렇소. 이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오?"

「何念之深也!」陳平曰︰「生揣我何念?」揣,初委翻,度也。陸生曰︰「足下極富貴,無欲矣;然有憂念,不過患諸呂、少主耳。」陳平曰︰「然。爲之柰何?」

 

 육생이 말하였다.

 "천하가 편안하다면 재상에 대하여 주목할 것이고, 천하가 위태로우면 장수에 대하여 주목을 합니다. 장수와 재상이 조화를 이루면 사대부들은 평소에도 잘 따르고, 천하가 비록 변란이 있다고 하여도 권력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사직을 위하여 계책을 세운다면 양군 손에서 장악될 뿐입니다. 신은 일찍이 태위 강후에게 말을 하고 싶었는데 강후는 나와는 유희를 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나의 말을 가볍게 취급하였습니다. 공은 어찌하여 태위와 사귀는데, 서로 깊이 사귀지를 못합니까?"

 陸生曰︰「天下安,注意相;天下危,注意將。將相和調,則士豫附;師古曰︰豫,素也。余謂豫,順也。天下雖有變,權不分。爲社稷計,在兩軍【章︰甲十五行本「軍」作「君」;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掌握耳。臣嘗【章︰甲十五行本「嘗」作「常」;乙十一行本同;孔本同。】欲謂太尉絳侯;絳侯與我戲,易吾言。謂,告語也。言絳侯素與之戲狎,輕易其言也。周勃封絳侯。班《志》,絳縣屬河東郡,晉之舊都。君何不交驩太尉,深相結!」

 

 이어서 진평을 위하여 여씨에 관한 몇 가지 일을 계획하였다. 진평은 그 계책을 써서 마침내 500금으로 강후에게 축수를 보내고 두터운 예를 갖추어 즐기고 마셨고, 태위도 보답하기를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두 사람이 깊이 서로 단결하니 여씨의 음모는 더욱 쇠퇴하였다. 진평이 노비 100명과 수레와 말 50대 그리고 전 500만을 육생에게 보내어 음식의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因爲陳平畫呂氏數事。陳平用其計,乃以五百金爲絳侯壽,厚具樂飲;師古曰︰厚爲其具而與太尉樂飲。樂,音洛。太尉報亦如之。兩人深相結,呂氏謀益衰。陳平以奴婢百人、車馬五十乘、錢五百萬遺陸生爲飲食費。遺,于季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