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여치가 칭황하고 여러 여씨들을 왕으로 삼았다.

solpee 2019. 10. 20. 02:59

 

《漢紀5 高皇后 元 (甲寅, 前187

 

 

 

 1. 겨울, 태후가 여러 여씨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논의를 하면서 우승상 왕릉에게 물었다.

 "고제는 백마를 죽여 맹세하여 말하였습니다. '유씨가 아닌 사람이 왕이 되면 천하가 함께 이를 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여씨를 왕으로 하는 것은 약속된 것이 아닙니다."

 1. 冬,太后議欲立諸呂爲王,問右丞相陵,陵曰︰「高帝刑白馬盟曰︰高祖刑白馬與羣臣盟曰︰「非劉氏不王,非有功不侯。」『非劉氏而王,天下共擊之。』今王呂氏,非約也。」太后不說,說,讀曰悅。

 

 태후가 기뻐하지 아니하고 좌승상 진평과 태위 주발에게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고제는 천하를 평정하고 자제들을 왕으로 삼았고, 이제 태후께서 칭제하시는데, 여러 여씨를 왕으로 하는 것은 아니 될 것이 없습니다."

 태후가 기뻐하였다.

 問左丞相平、太尉勃,對曰︰「高帝定天下,王子弟;今太后稱制,王諸呂,無所不可。」王,于況翻。太后喜。

 

 조회를 끝내자 왕릉이 진평과 강후를 나무라며 말하였다.

 "애초에, 고제와 삽혈하면서 맹세하였는데, 그대들은 없었던가? 이제 고제가 붕어하고 태후가 여자 군주로 여씨를 왕으로 삼고자 하는데, 그대들이 멋대로 아부하는 마음으로 약속을 배반하려고 하니, 나중에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고제를 뵈올 것인가?"

 

 罷朝,朝,直遙翻。王陵讓陳平、絳侯曰︰「始與高帝啑血盟,諸君不在邪!啑,所由翻,小啜也。《索隱》引鄒氏,音使接翻。今高帝崩,太后女主,欲王呂氏;諸君縱欲阿意背約,背,蒲妹翻。何面目見高帝於地下乎?」

 

 진평과 강후가 말하였다.

 "이제 면전에서 꺾고 조정에서 간쟁하는 것은 신이 그대만은 못하지만 사직은 온전히 보존하고 유씨의 후예를 안정시키는 데서는 그대가 또한 신만은 못하오."

 왕릉이 이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11월 3일(갑자)에 태후는 왕릉을 황제의 태부로 삼고, 실제로 그에게서 재상의 권한을 빼앗으니, 왕릉은 드디어 병으로 면직되어 돌아갔다.

 陳平、絳侯曰︰「於今,面折廷爭,謂當朝廷而諫諍。臣不如君;全社稷,定劉氏之後,君亦不如臣。」陵無以應之。十一月,甲子,太后以王陵爲帝太傅,實奪之相權;陵遂病免歸。

 

 이에 좌승상 진평으로 우승상을 삼고 피양후 심이기를 좌승상으로 삼았는데, 일은 처리하지 않고 궁중을 감시하게 하니, 마치 낭중령과 같았다. 심이기는 이러한 연고로 태후의 총애를 얻었고, 공경들은 모두 이를 통하여 일을 처리하였다.

 乃以左丞相平爲右丞相;此時尚右,故陳平自左丞相遷右丞相。以辟陽侯審食其爲左丞相,不治事,治,直之翻。令監宮中,如郎中令。言食其不董丞相職事,常監宮中若郎中令。監,古銜翻。食其故得幸於太后,公卿皆因而決事。

 

 태후는 조요가 조의 은왕을 위하여 모의하였던 것을 원망하여 마침내 조요를 죄에 걸리도록 만들었다.

 상당군의 군수인 임오는 패의 옥리였는데, 태후에게 은덕을 베푼 일이 있어서 마침내 어사대부가 되었다.

 太后怨趙堯爲趙隱王謀,乃抵堯罪。堯爲趙王謀,事見上卷高祖十年。趙王如意,諡隱。《諡法》︰隱拂不成曰隱;不顯尸國曰隱;見美堅長曰隱。爲,于僞翻。

上黨守任敖嘗爲沛獄吏,有德於太后;乃以爲御史大夫。任敖,沛人,少爲獄吏。高祖常避吏,吏繫呂后,遇之不謹,敖擊傷主呂后吏,故后德之。

 

 태후는 또 그의 아바지인 임사후 여공을 선왕으로 추존하고, 오빠인 주려영무후 여택을 도무왕으로 삼고, 여러 여씨를 왕으로 삼는 것을 점차 늘리고자 하였다. 

 太后又追尊其父臨泗侯呂公爲宣王,兄周呂令武侯澤爲悼武王,欲以王諸呂爲漸。臨泗侯,班《表》︰以后父賜號。《索隱》曰︰應劭云︰周呂,國也,按周及呂皆國名。濟陰有呂都縣,晉灼曰︰呂,縣名,以爲侯國。予據班《志》,呂縣屬楚國。令武,諡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