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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포의 죄를 풀고 도위로 삼았다.

solpee 2019. 10. 18. 20:46

 

《漢紀4 高帝 11 (乙巳, 前196

 

 

 6. 팽월은 여후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하고, 바라건데 옛날의 창읍에서 살게 해달라고 하였다. 여후는 허락하고서 더불어 동쪽으로 갔다. 낙양에 이르러서 여후가 황상에게 아뢰었다.

 "팽월은 장사인데, 이제 그를 촉으로 귀양보내면 이는 스스로 근심거리를 남기는 것이니, 끝내 그를 주살하는 것만 못합니다. 첩이 삼가 함께 왔습니다."

 6. 彭王爲呂后泣涕,自言無罪,願處故昌邑。二世二年,彭越起於昌邑。爲,于僞翻。呂后許諾,與俱東。至洛陽,呂后白上曰︰「彭王壯士,今徙之蜀,此自遺患;不如遂誅之。妾謹與俱來。」

 

 이에 여후는 마침내 그 사인으로 하여금 팽월이 다시 반란을 꾀한다고 보고하게 하였다. 정위 왕념개가 그를 족멸하라고 주장하였고, 황상은 그 주청이 가하다고 하였다. 3월에 팽월의 삼족이 이명되었다. 팽월의 목을 잘라 낙양에서 효수하고 조서를 내렸다.

 "이를 거두는 자는 바로 체포한다."

 於是呂后乃令其舍人告彭越復謀反。復,扶又翻。廷尉王恬開奏請族之,上可其奏。三月,夷越三族。此以《漢書‧本紀》爲據;《史記‧高祖紀》作「夏,夷彭越三族」,《年表》書「越反,誅」,又在十年夏誅彭越,蓋以盧綰言爲據。梟越首洛陽,下詔︰「有收視者,輒捕之。」

 

 양의 대부인 난포가 제의 사자로 갔다가 돌아와서 팽월의 머리 아래에서 일을 상주하고, 그에게 제사를 지내며 곡을 하였다. 관리가 그를 체포하고 보고하였다. 황상이 난포를 불러서 욕을 하고 그를 삶으려고 하였다. 바야흐로 그를 들어서 끓는 속에 집어넣으려는데 난포가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바라건데 한마디만 하고 죽겠습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무슨 말인가?"

 梁大夫欒布使於齊,《姓譜》︰欒,晉卿欒氏之後。還,奏事越頭下,祠而哭之。吏捕以聞。上召布,罵,欲烹之。方提趨湯,提,挈也;挈而趨鼎,欲投之於湯。趨,七喻翻。布顧曰︰「願一言而死。」上曰︰「何言?」

 

 난포가 말하였다.

 "바야흐로 황상께서 팽성에 갇혀있고, 형양과 성고 사이에서 패하였는데 항왕이 끝내 서쪽으로 갈 수 없었던 것은 다만 팽왕이 양 지역에 있으면서 한과 더불어 합종하여 초에 고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布曰︰「方上之困於彭城,敗滎陽、成皋間,項王所以遂不能西者,徒以彭王居梁地,與漢合從苦楚也。從,子容翻。

 

 그 당시에는 팽왕이 한 번 고개를 돌려서 초와 더불어 하였다면 한은 격파될 것이고, 한과 더불어 하면 초가 격파되었습니다. 또 해하의 모임에서 팽왕이 없었다면 항씨는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고 팽왕은 부절을 나누고 봉작을 받아서 또 이를 만세에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當是之時,王一顧,與楚則漢破,與漢則楚破。且垓下之會,微彭王,項氏不亡。天下已定,彭王剖符受封,亦欲傳之萬世。

 

 이제 폐하께서는 한 번 양에서 군사를 징발하였고, 팽왕이 병으로 가지 아니하자, 폐하는 의심하여 반란이라고 여겼지만, 반란의 형태는 구체화 되지 않았으니, 소소한 안건을 가혹하게 처리하여 그를 주멸하였습니다. 신은 공신들이 각자 스스로 위태함을 느낄까 걱정입니다.

 今陛下一徵兵於梁,彭王病不行,而陛下疑以爲反;反形未具,以苛小案誅滅之。臣恐功臣人人自危也。

 

 이제 팽왕은 이미 죽었으니, 신은 산다 하여도 죽는 것만 못하니, 청컨데 바로 삶으십시오."

 이에 황상은 마침내 난포의 죄를 풀어주고 벼슬을 주어 도위로 삼았다.

 今彭王已死,臣生不如死,請就烹!」於是上乃釋布罪,拜爲都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