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夫乘時以徼利者,市井之志也/무릇 때를 틈타서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시정잡배의 생각!

solpee 2019. 10. 16. 05:54

《漢紀4 高帝 11 (乙巳, 前196

 

 

 1.회음후 한신은 병을 칭하고 진희를 공격하는 일에 좇아가지 않고, 몰래 진희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서 더불어 모의한 내용을 전달하였다. 한신은 가신들과 모의하기를 '밤중에 조서라고 속이고 여러 관청의 도와 노를 사면하고 징발하여 여후와 태자를 습격하는데, 부서를 이미 평정시키고 진희의 회보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1. 淮陰侯信稱病,不從擊豨,陰使人至豨所,與通謀。信謀與家臣夜詐詔赦諸官徒、奴,有罪而居作者爲徒;有罪而沒入官者爲奴。欲發以襲呂后、太子;部署已定,待豨報。

 

 그의 사인이 한신에게 죄를 지으니, 한신이 그를 가두고 죽이려 하였다. 봄, 정월에 사인의 동생이 변고를 올려서 한신이 반란하려는 상황을 여후에게 보고하였다. 여후는 부르려고 하였으나, 그 무리들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여 마팀내 소상국과 모의하고, 거짓으로 황상이 있는 곳에서 사람이 온 것으로 하며, 진희는 이미 붙잡아서 죽였으니 열후와 군신들은 모두 축하하도록 말하였다.

 其舍人得罪於信,信囚,欲殺之。春,正月,舍人弟上變,告信欲反狀於呂后。按班《書‧功臣表》,告信反者,舍人樂說也,封愼陽侯。呂后欲召,恐其儻不就;儻,或然之辭。乃與蕭相國謀,詐令人從上所來,言豨已得,死,列侯、羣臣皆賀。

 

 상국은 한신을 속여서 말하였다.

 "그대가 비록 병들었지만 억지로라도 들어가서 축하하시오."

 한신이 들어가니 여후는 무사들로 하여금 한신을 결박하여 그를 장락궁의 종실에서 목을 베었다. 한신의 바야흐로 참할 즈음에 말하였다.

 "내가 괴철의 계략을 쓰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니, 이에 아녀자에게 속은 바 되었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랴!"

 드디어 한신의 3족이 이멸되었다.

 相國紿信曰︰「雖疾,強入賀。」強,其兩翻。信入,呂后使武士縛信,斬之長樂鐘室。師古曰︰懸鐘之室。信方斬,曰︰「吾悔不用蒯徹之計,不用蒯徹,見十卷四年。乃爲兒女子所詐,豈非天哉!」遂夷信三族。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한신이 첫째로 큰 계책을 세웠다고 하니, 고조와 더불어 한중에서 군사를 일으켜 삼진(三秦:雍·塞·翟)을 평정하고, 드디어 군사를 나누어 가지고 북쪽으로 가서 위를 사로잡고, 대를 빼앗았으며, 조를 무너뜨렸고, 연을 위협하였으며, 동쪽으로 제를 공격하여 이를 소유하고 남쪽으로는 초를 해하에서 멸망시켰으니, 한 왕조가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대대 모두 한신이 공로입니다.

 臣光曰︰世或以韓信【章︰甲十五行本「信」下有「爲」字;乙十一行木同;孔本同。】首建大策,與高祖起漢中,定三秦,遂分兵以北,禽魏,取代,仆趙,脅燕,東擊齊而有之,南滅楚垓下,漢之所以得天下者,大抵皆信之功也。

 

 그가 괴철의 유세를 거절하고 고조를 진구에서 환영한 것을 보면 어찌 반란할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오랫동안 직책을 잃어서 앙앙불락하다가 드디어 패역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입니다. 무릇 노관은 고조와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옛날의 정리를 가지고 오히려 남면하고 연에서 왕 노릇하는데, 한신은 마침내 열후로서 봉조청(奉朝請: 허울뿐인 조회참석직)하니 어찌 고조가 또한 한신에게 빚진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觀其距蒯徹之說,迎高祖於陳,見卷六年。豈有反心哉!良由失職怏怏,遂陷悖逆。夫以盧綰里閈舊恩,猶南面王燕,信乃以列侯奉請;閈,侯旰翻。王,于況翻。朝,直遙翻。請,才性翻,又如字。豈非高祖亦有負於信哉?

 

 신은 고조가 속이는 꾀를 써서 진구에게 한신을 사로잡았으니, 말에서 빚을 진 것은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비록 그러하더라도 한신 역시도 이를 받을 일을 한 것입니다. 애초에, 한이 초와 형양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한신은 제를 멸망시키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지도 않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며, 그 후에 한이 초를 추격하여 고릉에 이르러서는 한신과 더불어 초를 공격하기로 기약하고서도, 한신은 오지를 않았는데, 당시에 고조는 본디 한신을 사로잡을 마음을 가졌으나, 돌아보니 힘이 부족하였을 뿐입니다.

 臣以爲高祖用詐謀禽信於陳,言負則有之;雖然,信亦有以取之也。始,漢與楚相距滎陽,信滅齊,不還報而自王;見十卷四年。其後漢追楚至固陵,與信期共攻楚而信不至;見十卷五年。當是之時,高祖固有取信之心矣,顧力不能耳。

 

 천하가 이미 평정되기에 이르자, 한신은 다시 무엇을 믿었겠습니까? 무릇 때를 틈타서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시정잡배의 생각이고, 공로를 돌리고 은덕에 보답하는 것이 선비나 군자의 마음입니다.

 及天下已定,【章︰甲十五行本「定」;下有「則」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信復何恃哉!復,扶又翻。夫乘時以徼利者,市井之志也;徼,一遙翻。醻功而報德者,士君子之心也。醻,時流翻。

 

 한신은 시정잡배의 뜻을 가지고 그 몸을 이롭게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선비나 군자의 마음을 가져주기를 바랐으니 또한 어렵지 아니합니까?

 信以市井之志利其身,而以士君子之心望於人,不亦難哉!

 

 이러한 연고로 태사공은 이를 논평하였습니다. '가령 한신으로 햐여금 도와 겸양을 배우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자기의 능력을 아끼지 않았다면 거의 군자에 가까웠을 것이다. 한가에 세운 공훈에서는 주공·소공·태공의 무리들과 견줄 수가 있어서 후세들이 혈식을 차렸을 것이다. 이런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이 되었는데, 마침내 반역을 모의하여 종족을 이멸하게 하였으니, 또한 마땅하지 아니한가?'

 是故太史公論之曰︰「假令韓信學道謙讓,不伐己功,不矜其能,則庶幾哉!幾,居衣翻。於漢家勳,可以比周、召、太公之徒,後世血食矣!不務出此,而天下已集,乃謀畔逆;夷滅宗族,不亦宜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