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群雄割據

solpee 2019. 10. 3. 17:57

 

《秦[Qín]紀2 2世 元 (壬辰, 前209

 

 

 3. 가을, 7월에 양성 사람 진승과 양하 사람 오광이 기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여좌의 사람들을 징발하여 어양을 수수하게 하니, 900인이 대택항에 주둔하였는데, 진승과 오광은 모두 둔장이 되었다. 마침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 길이 불통되자, 헤아려 보니 이미 기한을 놓치게 되었는데, 기한을 놓치면 법으로는 모두 참수하게 되어 있었다. 진승과 오광은 천하의 사람들이 늦을 것을 근심하고 원망하는 것을 이용하여 장위를 죽이고, 무리들을 소집하여 명령하였다.

 3.秋,七月,陽城人陳勝、陽夏人吳廣起兵於蘄。《史記正義》曰:卽河南陽城縣;班《志》,屬潁川郡。陽夏縣屬淮陽國。《括地志》:陳州太康縣,本漢陽夏縣地。盤洲洪氏曰:陽夏鄕去太康縣三十里。夏,音賈。班《志》,蘄縣屬沛郡,有大澤鄕。蘄,音渠依翻。是時,發閭左戍漁陽,鼂錯曰:秦以謫發戍,先發吏有謫及贅壻、賈人,後以嘗有市籍者,又後以大父母嘗有市籍者,後入閭取其左。《索隱》曰:閭左,謂居閭里之左也。秦時,復除者居閭左。今力役凡在閭左者盡發之也。又云:凡居以富強爲右,貧弱爲左。秦役戍多富者,役盡,兼取貧弱而發之也。班《志》,漁陽縣屬漁陽郡。《括地志》:漁陽故城在檀州密雲縣南十八里,在漁水之陽。九百人屯大澤鄕,陳勝、吳廣皆爲屯長。師古曰:人所聚爲屯。長,帥也。會天大雨,道不通,度已失期;度,徒洛翻。失期,法皆斬。陳勝、吳廣因天下之愁怨,乃殺將尉,師古曰:其官本尉耳,時領戍人,故爲將尉。《索隱》曰:尉,官也;《漢舊儀》:大縣三人。其尉將屯九百人,故云將尉。召令徒屬曰:

 

 "공 등은 모두 기한을 넘겼으니 참수를 당할 것이고, 가령 참수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수자리 서면서 죽는 자가 열 명 가운데 진실로 6,7 명일 것이다. 또 장사란 죽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죽는다면 큰 이름을 들어내야 할 뿐이다. 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있단 말이냐?"

「公等皆失期當斬;假令毋斬,而戍死者固什六七。且壯士不死則已,死則舉大名耳!王、侯、將、相寧有種乎!」種,章勇翻。

 

 무리들이 모두 좇았다.

 마침내 공자 영부소와 향연을 사칭하여 단을 만들고 맹약한 후에 대초라고 부르며, 진승은 자립하여 장군이 되고, 오광은 군위가 되었다.

 衆皆從之。乃詐稱公子扶蘇、項燕,以百姓賢扶蘇而楚人憐項燕也。爲壇而盟,稱大楚;陳勝自立爲將軍,吳廣爲都尉。

.....................중략........................

 

 처음에, 대량 사람인 장이와 진여가 서로 목숨을 건 사귐을 하였다. 진이 위를 멸망시키고 두 사람이 위의 병사라는 소문을 듣고 많은 상을 걸고 그들을 찾아 오고자 하였다. 장이와 진여는 마침내 이름과 성을 바꾸어 가지고 함께 진에 가서 이감문이 되어 스스로 밥을 빌어 먹었다. 이리가 일찍이 이들에게 허물을 가지고 진여에게 매질을 하자 진여가 일어나고자 하였으나 장이가 그를 밟고서 태장을 맞게 하였다. 이리가 돌아가자 장이는 마침내 진여를 이끌고 뽕나무 아래로 가서 그를 나무라면서 말하였다.

 初,大梁人張耳、陳餘相與爲刎頸交。秦滅魏,聞二人魏之名士,重賞購求之。張耳、陳餘乃變名姓,俱之陳,爲里監門以自食。師古曰:監門,卒之賤者;耳、餘以卑賤自隱。張晏曰:監門,里正衞也。監,古銜翻。里吏嘗以過笞陳餘,陳餘欲起,張耳躡之,使受笞。欲起者,不能受辱,欲起與吏亢也。躡,尼輒翻,躡其足也。笞,丑之翻。吏去,張耳乃引陳餘之桑下,數之曰:數,所具翻,又所主翻。

 

 "시작하면서 나와 그대는 무엇을 말하였는가? 이제 조그만 모욕을 당하자 한 명의 이리를 죽이려 한단 말이오?"

 진여가 그에게 사과하였다.

 진섭이 진에 들어갔는데 장이와 진여가 문에서 맞이하였다. 진섭은 평소에 그들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진에 사는 호걸들과 부모들이 진섭을 청하여 초왕이 되라고 하자, 진섭이 장이와 진여에게 물었다. 장이와 진여가 대답하였다.

「始吾與公言何如?今見小辱而欲一吏乎!」陳餘謝之。陳涉旣入陳,張耳、陳餘詣門上謁。陳勝,字涉。陳涉素聞其賢,大喜。陳中豪桀父老請立涉爲楚王,涉以問張耳、陳餘,耳、餘對曰:

 

 

 "진이 무도하여 다른 사람의 사직을 없애고 백성들에게 포학했으며 장군께서는 만 번이나 죽을 계책을 세워 천하를 위하여 잔포한 것을 없애려 하였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진에 이르러서 여기에서 왕이되면 천하에 사사로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秦爲無道,滅人社稷,暴虐百姓;將軍出萬死之計,爲天下除殘也。今始至陳而王之,示天下私。

 

 바라건데 장군께서 왕이 되지 마시고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고, 또 사람을 파견하여 6국을 세운 후에 스스로 친한 무리를 만들면, 진에게는 더욱 적이 많아질 것이니, 적이 많으면 힘이 분산되고 무리와 더불어 하면 군사가 강해집니다.

 願將軍毋王,急引兵而西;遣人立六國後,自爲樹黨,爲秦益敵;敵多則力分,與衆則兵強。

 

 이와 같이 하면 들에서는 전투를 하지 않고, 현에서도 성을 지킬 것이 없을 것이며, 포학한 진을 주멸하고 함양을 점거하여 제후들을 호령하는데, 제후들이 망하였으나, 다시 세울 수 있어서. 덕으로 이를 복종시킨다면  황제의 대업은 이뤄집니다. 이제 홀로 진에서 왕이 되면 천하 사람들이 느슨해질까 두렵습니다."

 진섭은 듣지 않고 드디어 스스로 왕이 되었는데 '장초'라고 호칭하였다.

 如此,則野無交兵,六國皆爲與國,則兵不交鋒於野矣。縣無守城,諸縣皆畔秦復爲六國,無復爲秦守城者。誅暴秦,據咸陽,以令諸侯;諸侯亡而得立,以德服之,則【章:十二行本「則」上有「如此」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帝業成矣!今獨王陳,恐天下懈也。」陳涉不聽,遂自立爲王,號「張楚」。劉德曰:若云張大楚國也。張晏曰:先是楚已爲秦所滅,今立楚爲張。

 

 당시 여러 군현들은 진의 법이 고생스럽다 하여 다투어 장리들을 죽이고 진섭에게 호응하였다. 알자가 동쪽에서 와서 반란한 사람을 보고하였다. 2세 황제가 노하여 그를 관리들에게 내려보냈다. 뒤에 갔었던 사자가 돌아오니 황상이 이를 묻자 대답하였다.

 "여러 도적들이 쥐나 개처럼 도적질만 하는데, 군수, 군위가 바야흐로 쫓아가서 체포하여 지금 거의 다 잡았으니, 근심할 거리가 안 됩니다."

 황상이 기뻐하였다.

 진왕은 오숙을 가왕으로 삼아놓고 여러 장수들을 감독하여 서쪽으로 가서 형양 하남성을 쳤다.

 當是時,諸郡縣苦秦法,爭殺長吏以應涉。謁者【章:十二行本「者」下有「使」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從東方來,以反者聞。二世怒,下之吏。下,遐嫁翻。後使者至,上問之,對曰:「羣盜鼠竊狗偷,郡守、尉方逐捕,今盡得,不足憂也。」上悅。

陳王以吳叔爲假王,監諸將以西擊滎陽。吳廣,字叔。滎陽縣屬三川郡。

 

..........................중략.......................

 

 9월에 패 사람 유방이 패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하상 사람 항량이 오에서 군사를 일으켰으며, 적 사람 전담이 제 지역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九月,沛人劉邦起兵於沛,陶唐氏旣衰,其後有劉累,以擾龍事孔甲,爲豢龍氏。及晉,士會自秦歸晉,其處者爲劉氏。師古曰:沛本秦泗水郡之屬縣。李斐曰:沛,小沛也。《索隱》曰:漢改泗水郡爲沛郡,治相城,故以沛縣爲小沛。沛,博蓋翻。漢高帝事始此。下相人項梁起兵於吳,班《志》,下相縣屬臨淮郡。《索隱》曰:按相,水名,出沛國。沛有相縣;於相水下流置縣,故曰下相。《括地志》:下相故城,在泗州宿豫縣西北七十里。項燕爲楚將,封於項,子孫以邑爲氏。吳縣,會稽郡治所,故吳都也。狄人田儋起兵於齊。服虔曰:儋,音負擔之擔。師古曰:儋,音丁甘翻。

 

 유방의 자는 계이며 사람됨이 코가 크고 용의 얼굴을 가졌으며 왼쪽 팔뚝에는 72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사람을 아끼고 베풀기를 좋아하였고 뜻은 탁 트였으며 항상 큰 도량을 가졌지만 집에서 생산 작업에는 종사하지 않았다. 처음에, 사상정의 정장(10리에 1亭을 두었다.)이었는데, 선보 사람 여공이 관상 보기를 좋아하여 유계의 생긴 모양을 보고 이를 기이하게 생각하고 그의 딸을 처로 삼게 하였다.

 劉邦,字季,爲人隆準、龍顏,左股有七十二黑子。服虔曰:準,音拙。應劭曰:隆,高也。準,頰權準也。顏,額顙也。李斐曰:準,鼻也。文穎曰:音準的之準。晉灼曰:《戰國策》云:眉目準頞權衡。《史記》:秦始皇蜂目長準。李說、文音是也。師古曰:頰權「䪼」字,豈當借準爲之!服音、應說皆失之。黑子,今中國通呼爲黶子,吳、楚俗謂之誌;誌者,記也。愛人喜施,喜,許旣翻。施,式豉翻。意豁如也;常有大度,不事家人生產作業。初爲泗上亭長,秦法:十里一亭。亭長,主亭之吏;亭,謂停留客旅宿食之館。《史記正義》曰:《國語》有寓室,卽今之亭也。亭長,蓋今之里長,民有訟諍,吏留平辨,得成其政。「泗上」,《史記》作「泗水」。《括地志》:泗水亭在徐州沛縣東一百步;有高祖廟。單父人呂公,好相人,見季狀貌,奇之,以女妻之。班《志》,單父縣屬山陽郡。單,音善。父,音甫。妻,七細翻。呂公女,是爲呂后。

 

 이미 그리고 나서 유계는 정장으로서 현을 위하여 형도를 여산으로 호송하는데 형도들이 대부분 길에서 도망하였다. 스스로 헤아려 보니 도착할 때쯤이면 모두 도망할 것인데, 풍의 서쪽에 있는 못 가운데 있는 정에 이르러 쉬면서, 술을 마시다가 밤이 되어 마침내 호송하던 형도들을 풀어서 멋대로 하게하고 말하였다.

 旣而季以亭長爲縣送徒驪山,徒多道亡。自度比至皆亡之,度,徒洛翻。比,必寐翻。到豐西澤中亭,止飲,應劭曰:沛,縣也;豐,其鄕也。孟康曰:後沛爲郡而豐爲縣。師古曰:豐本沛之聚邑耳。夜,乃解縱所送徒曰:

 

 "공 등은 모두 가고, 나 또한 여기서부터 떠나겠소."

 형도 가운데 장사로 좇기를 원하는 사람이 10여 명이었다. 유계가 술을 마시고 밤중에 못 가운데서 길을 가는데, 큰 뱀이 길에 있어서 유계가 칼을 뽑아 뱀을 잘랐다. 어떤 할멈이 곡하면서 말하였다.

 "내 아들은 백제의 아들로 변화하여 뱀이 되어서 길에 있었는데, 이제 적제의 아들이 이를 죽였구나!"

 이어서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유계는 도망하여 망산과 탕산의 소택지에 숨었는데 여러 번 기괴한 일이 있었고, 패에 살던 자제들이 이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이 귀부하고자 하였다.

「公等皆去,吾亦從此逝矣!」徒中壯士願從者十餘人。

劉季被酒,師古曰:被,加也;被酒,爲酒所加也。被,皮義翻。夜徑澤中,有大蛇當徑,季拔劍斬蛇。有老嫗哭曰:「吾子,白帝子也,化爲蛇,當道;今赤帝子殺之!」因忽不見。嫗,威遇翻,老母也。應劭曰:秦襄公自以居西,主少昊之神,作西畤,祠白帝。至獻公時,櫟陽雨金,又作畦畤,祠白帝。少昊,金德也;赤帝,堯後,謂漢也;殺之,明漢當代秦。劉季亡匿於芒、碭山澤【章:十二行本「澤」下有「巖石」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之間。班《志》,芒縣屬沛郡;碭縣屬梁國。應劭曰:二縣之間,有山澤之固,故隱其間。宋白曰:亳州永城縣,漢芒縣地。《括地志》:宋州碭山縣在州東一百五十里,本漢碭縣;碭山在縣東。芒,音忙。碭,音唐;師古又音宕。數有奇怪;沛中子弟聞之,多欲附者。

 

.........................중략....................

 

 항량이라는 사람은 초의 장수였던 항연의 아들인데, 일찍이 사람을 죽여서 조카 항적과 더불어 원수를 피하여 오에 살고 있었다. 오의 똑똑한 사대부들은 모두 그 사람 밑에서 나왔다. 항적은 어려서 책을 배웠으나 성공하지 못하여 떠났고 다시 칼 쓰기를 배웠으나 또 이루지 못하였다. 항량이 그에게 화를 넀다. 항적이 말하였다.

 "책은 이름과 성을 기록할 줄 알면 충분합니다. 칼은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배우기에는 충분치 못하니, 만인을 대적하는 것을 배우겠습니다."

 項梁者,楚將項燕子也,嘗殺人,與兄子籍避仇吳中。吳中賢士大夫皆出其下。籍少時學書,不成,去;學劍,又不成。項梁怒之。籍曰:「書,足以記名姓而已!劍,一人敵,不足學;學萬人敵!」

 

 이에 항량은 마침내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쳤더니, 항적이 이를 크게 기뻐하였는데, 대략 그 뜻을 알고는 또 끝까지 배우려 하지 않았다. 항적은 키가 8척(1尺;23.5cm)이 넘었고, 힘은 솥을 들 수 있었으며, 재주는 보통사람을 뛰어넘었다. 회계 군수 은통은 진섭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내어 집섭에게 호응하고자 하여 항량과 환초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다. 이때 환초는 소택 가운데로 도망치고 있었다. 항량이 말하였다.

 於是項梁乃敎籍兵法,籍大喜;略知其意,又不肯竟學。籍長八尺餘,力能扛鼎,韋昭曰:扛,舉也。《索隱》曰:《說文》云:扛,橫關對舉也。長,眞亮翻。扛,音江。才器過人。會稽守殷通徐廣曰:爾時未言太守。余謂戰國之時,郡守只稱守,景帝中二年七月始曰太守。《姓譜》:武王克商,子孫分散,以殷爲氏。守,式又翻;下同。聞陳涉起,欲發兵以應涉,使項梁及桓楚將。將,卽亮翻。是時,桓楚亡在澤中。梁曰:

 

 "환초가 도망하엿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오직 항적만이 그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항량이 마침내 항적에게 칼을 가지고 밖에서 경계하며 있으라고 하고, 항량이 다시 들어가서 군수와 더불어 앉아서 말하였다.

 "청컨데 항적을 불러서 명령을 받아서 환초를 불러오게 하십시오."

 군수가 말하였다.

 "허락하오."

 항량이 항적을 불러들였다. 잠깐 사이에 항량이 항적에게 눈짓하여 말하였다.

 "실행해도 좋다."

 이에 항적이 드디어 칼을 뽑아서 군수의 머리를 베었다.

「桓楚亡,人莫知其處,獨籍知之耳。」梁乃【章:十二行本「乃」下有「出」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誡籍持劍居外,梁復入,與守坐,曰:「請召籍,使受命召桓楚。」守曰:「諾。」梁召籍入。須臾,梁眴籍曰:「可行矣!」眴,音舜,動目而使之也。於是籍遂拔劍斬守頭。

 

 항량이 군수의 머리를 들고 그 인수를 찼다. 문 아래에서 크게 놀라 소란스럽자, 항적이 쳐서 죽인 것이 십백 인(10~100)이 되니, 한 부 가운데 있는 사람은 모두 엎드려서 감히 일어나질 못하였다.

 項梁持守頭,佩其印綬。《釋名》:印,信也,所以封物以爲驗也;亦言因也,封物相因付也。綬,受也,繫印之組也,以相授受也。應劭《漢官》曰:綬長丈二尺,法十二月;廣三尺,法天、地、人。門下大驚,擾亂;籍所擊殺數十百人,言所殺自數十至百人也。一府中皆慴伏,莫敢起。《說文》曰:慴,失氣也,音之涉翻。

 

 항량이 마침내 예부터 아는 호걸과 관리들을 불러서 큰일을 일으킨 이유를 알아듣게 말하니, 드디어 오에 있는 군사를 들어서 사람들을 시켜 하현에서 거두어 들여 정병 8천 명을 만들었다. 항량은 회계 군수가 되고 항적은 비장이 되어 하현을 경락하였다. 항적은 이때 나이가 24세였다.

 梁乃召故所知豪吏,諭以所爲起大事,遂舉吳中兵,使人收下縣,下縣,會稽管下諸縣也。師古曰:非郡所都,故謂之下也。得精兵八千人。梁爲會稽守,籍爲裨將,徇下縣。籍是時年二十四。項籍始此。

 

 전담은 옛 제왕의 친족이었다. 전담의 사촌동생 전영과 전영의 동생 전횡은 모두 호걸이며 튼튼하였으며, 종족이 강성하여 인재를 얻을 수가 있었다. 주시가 경략하여 적에 이르렀는데, 적성은 지켜졌다. 전담은 거짓으로 그의 노복을 결박하고 소년을 좇아서 현정에 가서 노복을 죽이고자 한다고 아뢰면서 적현의 현령을 보자고 하고, 이를 이용하여 현령을 쳐 죽이고 호걸과 관리의 자제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田儋,【章:十二行本「儋」下有「者」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故齊王族也。儋從弟榮,榮弟橫,皆豪健,宗強,能得人。從,才用翻。周巿徇地至狄,周巿,魏人。狄城守。田儋詳爲縛其奴,從少年之廷,欲謁殺奴,詳,讀曰佯,詐也。應劭曰:古殺奴婢皆當告官。儋欲殺令,故詐縛奴以謁也。廷,縣廷也。師古曰:廷,音定。見狄令,因擊殺令,而召豪吏子弟曰:

 

 "제후들이 모두 진을 반대하고 자립하고 있다. 제는 옛날에 세워졌던 나라이고 나 전담은 전씨이니 마땅히 왕이 되어야 한다."

 드디어 자립하여 제왕이 되고 군사를 내어 주시를 쳤다. 주시의 군사가 돌아갔다. 전담이 군사를 인솔하여 동쪽으로 가서 제 지역을 경략하고 평정하였다.

「諸侯皆反秦自立。齊,古之建國也;儋,田氏,當王!」遂自立爲齊王,發兵以擊周巿。周巿軍還去。田儋率兵東略定齊地。

 

 한공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으로 가서 연 지역을 경략하였는데 연 지역의 호걸들이 함께 한광을 세워서 연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한광이 말하였다.

 "이 한광이 어머니가 조에 있으니 할 수 없소."

 연인들이 말하였다.

 韓廣將兵北徇燕,燕地豪桀欲共立廣爲燕王。廣曰︰「廣母在趙,不可!」燕人曰︰

 

 "조는 바야흐로 서쪽으로는 진을 걱정하고, 남쪽으로는 초를 걱정하고 있으니, 그 힘이 우리를 금지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초의 강함을 가지고도 조왕 장상의 집안을 해치지 못하였는데, 조가 다만 어찌 감히 장군의 집안을 해치겠습니까?"

 한광이 마침내 자립하여 연왕이 되었다. 몇 달이 지나서 조에서는 연왕의 어머니와 가족을 모시어 보냈다.

「趙方西憂秦,南憂楚,其力不能禁我。且以楚之強,不敢害趙王將相之家,趙獨安敢害將軍家乎!」韓廣乃自立爲燕王。居數月,趙奉燕王母家屬歸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