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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皇帝

solpee 2019. 10. 2. 04:43

 

《秦[Qín]紀2 始皇帝 26 (庚辰, 前221

 

 

 2. 왕이 처음으로 천하를 병탄하자 스스로 덕은 삼황을 겸하였고, 공로는 오제를 능가하였다고 여겨서 마침내 호칭을 바꾸어 '황제'라고 하고, '命[mìng]'을 '制[zhì]'로 하고, '令[lìng]'을 '詔[zhào]'라며, 스스로를 칭하여 '朕[zhèn]'이라고 하였다.

 2.王初幷天下,自以爲德兼三皇,功過五帝,伏羲、神農、黃帝爲三皇。少昊、顓頊、高辛、唐堯、虞舜爲五帝。宋均註《援神契》引《甄耀度》曰:伏羲、神農、燧人爲三皇。黃帝、顓頊、帝嚳、唐堯、虞舜爲五帝。孔穎達曰:鄭玄註《中候敕省圖》引《運斗樞》:伏羲、女媧、神農爲三皇。五帝者,德合五帝座星者稱帝,則黃帝、金天氏、高陽氏、高辛氏、陶唐氏、有虞氏是也;實六人而稱五者,以其俱合五帝座星也。《白虎通》取伏羲、神農、祝融爲三皇。帝者,天之一名,所以名帝。帝者,諦也,言天蕩然無心,忘於物我,公平通遠,舉事審諦,故謂之帝也。帝號同天,名所莫加,而稱皇者,以皇是美大之名,言大於帝也。乃更號曰「皇帝」,命爲「制」,令爲「詔」,師古曰:天子之言,一曰制書,二曰詔書。制書,謂其制度之命也。如淳曰:詔,告也。自秦、漢以上,唯天子得稱之。更,工衡翻。自稱曰「朕」。古者君臣之間通稱曰朕;自秦定制,唯天子獨稱之。

 

 장양왕을 추존하여 태상황이라고 하였다. 제하여 말하였다.

 "죽고 나서 행적을 가지고 시를 만든다면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논의하는 것이며 신하가 임금을 논의하는 것이니 아주 말이 안된다. 지금 부터는 시법을 없앤다. 짐은 시황제이고 후세에는 수를 계산하여 2세, 3세 하여 만세에 이르는데, 이를 무궁하게 전할 것이다.

 尊莊襄王爲太上皇。太上者,極尊之稱也。始皇自號曰始皇帝,故追尊莊襄王爲太上皇。自漢高帝以尊太公,此後不復爲追號。制曰:「死而以行爲諡,則是子議父,臣議君也,甚無謂。自今以來,除諡法。周公作《諡法》,緣行之美惡以立諡。如幽、厲之君,雖孝子、慈孫,百世不能改也。今秦除之,畏後人加己以惡諡也。諡,神志翻。朕爲始皇帝,後世以計數,《史記正義》:數,色主翻。二世、三世至于萬世,傳之無窮。」

 

 3. 처음에, 제의 위왕과 선왕 때 추연이 종시오덕(木德;伏羲, 火;神濃, 土;黃帝, 金;少昊, 水;顓頊)의 운을 논저하였는데, 시황제가 천하를 병탄하게 되자 제인이 이를 상주하였다.

 3.初,齊威、宣之時,鄒衍論著終始五德之運;所謂終始五德之運者:伏羲以木德王;木生火,故神農以火德王;火生土,故黃帝以土德王;土生金,故少昊以金德王;金生水,故顓頊以水德王;水生木,故帝嚳又以木德王;木又生火,故帝堯以火德王;火又生土,故帝舜以土德王;土又生金,故夏以金德王;金又生水,故商以水德王;水又生木,故周以木德王:此五德之終而復始也。鄒衍以爲周得火德,蓋以火流王屋爲周受命之符,且服色尚赤故也。就衍之說以爲終始,秦當以土爲行。今始皇以水勝火,自以水爲行,所謂推五勝也。漢初以土爲行,蓋亦祖衍之說也。及始皇幷天下,齊人奏之。

 

 시황제는 그 설을 채용하여 보고, 주는 火德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진은 주를 대신하였으므로 이기지 못할 바를 좇아서 水德으로 하였다. 비로소 연대를 고쳐서 조회와 하례를 모두 10월 초하루부터 하도록 하고 의복, 절기는 모두 검은색을 숭상하게 하였고, 숫자도 6을 단위로 하였다.

 始皇采用其說,以爲周得火德,秦代周,從所不勝,爲水德。始改年,朝賀皆自十月朔;衣服、旌旄、節旗皆尚黑;數以六爲紀。改年句斷。夏以建寅之月爲歲首,殷以建丑之月爲歲首,周以建子之月爲歲首;今始皇以建亥之月爲歲首,是改年也。自此紀年皆以十月爲歲首,朝賀以十月朔。以水爲行,故色尚黑。水成數六,故以六爲紀。

 

 4. 승상 왕관이 말하였다.

 "연·제·형의 땅은 먼 곳에 있으므로 왕을 두지 않으면 이를 눌러 지킬 수 없습니다. 청컨데 여러 아들을 세우십시오."

 시황제가 내려 보내서 그것을 의논하게 하였더니 정위 이사가 말하였다.

 4.丞相綰【章:十二行本「綰」下有「等」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言:「燕、齊、荊地遠,避莊襄王諱,故以楚爲荊。《索隱》曰:丞相綰,姓王。不爲置王,無以鎭之。請立諸子。」始皇下其議。下,遐嫁翻;凡自上而下之下皆同音。廷尉斯曰:班《書‧百官表》:廷尉,秦官。應劭曰:聽獄必質諸朝廷,與衆共之;兵獄同制,故稱廷尉。師古曰:廷,平也;治獄貴平,故以爲號。

 

 "주의 문왕과 무왕이 책봉한 바는 자제와 동성들이 아주 많았지만 그런 다음에 소원하게 되어 서로 공격하기를 마치 원수 같이 하였으나, 주의 천자는 금지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사해의 안에서는 폐하의 신령스러움에 의지하여 하나로 합쳤으니 모두 군과 현으로 만들고, 여러 아들들과 공신들은 아주 공적인 부세를 가지고 이들에게 많은 상을 내려주시면 아주 충분하고 쉽게 통제하게 되어 천하에는 다른 뜻이 없게 될 것이니, 안녕을 지키는 술책입니다. 제후를 두는 것은 편하지 못합니다."

「周文武所封子弟同姓甚衆,然後屬疏遠,相攻擊如仇讎,周天子弗能禁止。今海內賴陛下神靈一統,皆爲郡、縣,諸子功臣以公賦稅重賞賜之,甚足易制,易,以豉翻;《史記正義》音以職翻,非也。天下無異意,則安寧之術也。置諸侯不便。」

 

 시황제가 말하였다.

 "천하가 다 함께 전투하고 쉬지 못한 것은 후왕이 있었으므로 해서이다. 종묘에 의지하여 천하가 처음 안정되었는데, 또다시 나라를 세운다면 이는 군사를 심어놓는 것이니, 그리고 그들이 편안하게 쉬기를 구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정위가 논의한 것이 옳다."

 천하를 나누어 36개 군으로 하고 군에는 守, 尉, 監을 두었다.

 始皇曰:「天下共苦戰鬬不休,以有侯王。賴宗廟,天下初定,又復立國,是樹兵也;而求其寧息,豈不難哉!廷尉議是。」

分天下爲三十六郡,郡置守、尉、監。裴駰曰:三川、河東、南陽、南郡、九江、鄣郡、會稽、潁川、碭郡、泗水、薛郡、東郡、琅邪、齊郡、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代郡、鉅鹿、邯鄲、上黨、太原、雲中、九原、鴈門、上郡、隴西、北地、漢中、巴郡、蜀郡、黔中、長沙,凡三十五郡,與內史爲三十六郡。班《書‧百官表》:郡守掌治其郡;郡尉掌佐守典武職、甲卒;監御史掌監郡。守,始究翻。監,去聲;康又居銜切。余謂守、尉、監,官名也,當從去聲;若監郡之監則從平聲。《記‧王制》:天子使其大夫爲三監,監於方伯之國。陸德明《釋文》:監,古暫翻;監於,古銜翻;可以知矣。

 

 천하의 병기를 함양에 모아다가 녹여서 종거(鐘은 악기, 鐻는 종을 거는 얼개)와 金人(융족들의 신물) 12개를 만들었는데, 무게는 각기 1천 석이며, 궁의 뜰 가운데에다 두었다. 度, 衡, 石, 丈尺도 하나의 법으로 만들었다. 천하의 호걸 12만 호를 함양으로 이사시켰다.

 收天下兵聚咸陽,銷以爲鍾鐻、鐻與虡同,音巨。虡者所以懸鍾;橫曰筍,植曰虡。金人十二,重各千石,置宮庭【章:十二行本「庭」作「廷」;乙十一行本同;孔本同。】中。《史記正義》曰:《漢書‧五行志》:時大人見臨洮,長五丈,足履六尺,皆夷狄服,凡十二人;故銷兵器,鑄而象之,所謂「金狄」也。一法度、衡、石、丈尺。徙天下豪桀於咸陽十二萬戶。

 

 여러 묘(사당)와 장대(화려하게 꾸민 대), 그리고 상림(황제의 놀이동산)은 모두 위수의 남쪽에 두었다. 제후들을 점령할 때마다 그 궁실을 모방하여 그려다가 이를 함양의 북판(구종산 기슭)에다 만들고, 남쪽으로 위수에 다다르게 하고 옹문의 동쪽에서부터 경수와 위수에 이르게 하였으며, 전옥과 복도와 주각이 서로 이어지게 하고 얻은 제후들의 미인과 종고를 그 안에 채워 넣었다.

 諸廟及章臺、上林皆在渭南。上林在漢長安縣西南。秦始起上林苑,至漢武帝又增而廣之。每破諸侯,寫放其宮室,作之咸陽北阪上,程大昌《雍錄》曰:咸陽北阪,漢武帝別名渭城。阪,卽九嵕諸山麓也。南臨渭,自雍門以東至涇、渭,殿屋、復道、周閣相屬,徐廣曰:雍門在高陵縣。《史記正義》曰:在今岐州雍縣東。余按班《志》,高陵縣屬左馮翊,左輔都尉治焉;雍縣屬右扶風。二說相去何遠也?《三輔黃圖》曰:長安城西出北頭第一門曰雍門,本名西城門。但長安本秦離宮,秦之咸陽則漢扶風之渭城也。渭城與長安相去雖不遠,然秦時長安未有十二門也。豈作史者因漢之雍門而書之歟!涇、渭,言涇、渭之交也。復,與複同,音方目翻。複道,閣道也;上下有道,故謂之複。所得諸侯美人、鍾鼓以充入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