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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海不擇細流

solpee 2019. 9. 29. 04:55

 

《秦[Qín]紀1 始皇帝 10 (甲子, 前237

 

 

 1. 겨울, 10월에 문신후(여불위)가 재상에서 면직되자, 떠나서 그의 봉국(낙양)으로 갔다.

  1.冬,十月,文信侯免相,出就國。相,息亮翻。文信侯國於河南洛陽。

 

 종실의 대신들이 의논하여 말하였다.

 "제후의 사람들로 와서 벼슬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임금을 위하여 유세하며 이간시키고 있을 뿐이니, 청컨데 이들을 모두 내좇으십시오."

 이에 크게 객을 내쫓았다. 객경인 초인 이사도 역시 쫓겨 가는 속에 있었는데, 가면서 또한 편지를 올려 말하였다.

 宗室大臣議曰︰「諸侯人來仕者,皆爲其主遊間耳,謂遊說以間秦之君臣。爲,于僞翻。間,古莧翻。請一切逐之。」於是大索,逐客。索,山客翻。客卿楚人李斯亦在逐中,行,且上書曰︰

 

 

 "옛날 9대 목공은 선비를 구하는데, 서쪽으로는 융족에서 유여를 얻었으며, 동쪽으로는 완에서 백리해를 얻었으며, 건숙을 송나라에서 영접하였고, 晉 [Jìn] 에서는 비표와 공손지를 찾아내서 20개의 나라를 합병하였고, 드디어 西戎 [Xīróng] 에서 패권을 누렸습니다.

「昔穆公求士,西取由余於戎,東得百里【章︰十二行本「里」下有「奚」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於宛,迎蹇叔於宋,求丕豹、公孫支於晉,上,時掌翻。《史記》︰戎王使由余使於秦,穆公留由余而遺戎王以女樂,戎王受而說之,乃歸由余。由余諫戎王而不聽,穆公使人要之,由余遂去戎降秦。穆公用其謀伐戎,幷國十二,開地千里。晉獻公滅虞,虜其大夫百里奚,以媵於秦;百里奚亡秦走宛。穆公贖之於楚,授以國政;奚薦其友蹇叔,穆公使人厚幣迎之,以爲上大夫。晉惠公殺大夫丕鄭,其子豹奔秦,穆公用之。公孫支,子桑也。余使,疏吏翻。遺,于季翻。說,讀爲悅。要,一遙翻。降,戶江翻。媵,以證翻。宛,於元翻。幷國二十,遂霸西戎。

 

 

 효공은 상앙의 법을 써서 제후들이 가까이하고 복종하게 하였으며, 오늘에 이르러서 잘 다스려지고 강하게 되었습니다. 혜왕은 장의의 계책을 써서 6국의 합종책을 흩어버리고 이들로 하여금 진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소왕은 범휴를 얻어서 공실을 강하게 하고 사적 문벌을 막았습니다. 이 네 주군은 모두 객의 공로로 하였습니다.

 孝公用商鞅之法,諸侯親服,至今治強。惠王用張儀之計,散六國之從,使之事秦。昭王得范睢,強公室,杜私門。事並見前。治,直吏翻。從,子容翻。睢,息隨翻。此四君者,皆以客之功。

 

 

 이로 본다면 객이 어찌하여 진[Qín]에 손해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무릇 여색, 음악, 구슬, 옥 같은 것은 진[Qín]에서 산출되지 않을지라도 왕께서 입고 타는 것이 많지만, 사람을 뽑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니, 옳고 그른 것을 묻지 않고, 굽고 곧은 것을 막론하고 진 사람이 아닌 사람은 보내고 객이 된 자는 쫓아버립니다. 이는 중히 여기는 것이 여색, 음악, 구슬, 옥에 있고, 가벼이 여기는 것이 인민에 있는 것입니다.

 由此觀之,客何負於秦哉!夫色、樂、珠、玉不產於秦而王服御者衆;夫,音扶。色,女色也。取人則不然,不問可否,不論曲直,非秦者去,爲客者逐。是所重者在乎色、樂、珠、玉,而所輕者在乎人民也。

 

 

 신이 듣기로는 태산은 흙을 물리치지 않으니 그러므로 그렇게 크게 될 수 있었으며, 황하와 바다는 가는 시냇물이라고 하여도 가리지 않으니, 그러므로 그렇게 깊게 될 수가 있고, 왕이 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으니 그러므로 그의 덕을 밝힐 수 있었는데, 이것이 오제와 삼왕이 적을 없게 한 이유입니다.

 臣聞太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王者不卻衆庶,故能明其德;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

 

 

 이제 마침내 검수(黔首:객경)들을 포기하여 적국에 도움을 주는 것인데, 빈객을 물리쳐서 제후들이 업적을 쌓게 하니, 이른바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는 것이고, 도적에게 양식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今乃棄黔首以資敵國,秦謂民爲黔首。黔,其廉翻,黧黑也。卻賓客以業諸侯,所謂藉寇兵,【章︰十二行本「兵」下有「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齎盜糧者也。」藉,慈夜翻,假也,惜也。齎,子兮翻,持遺也;或爲資,義亦通。

 

 

 이 마침내 이사를 불러서 그 관직을 회복시켜주고, 축객의 명령을 철폐하였다. 이사는 여읍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王乃召李斯,復其官,除逐客之令。李斯至驪邑而還。班《志》,京兆新豐縣,秦之驪邑,古驪戎國也;驪山在其南。漢高帝七年,更名新豐。驪,呂支翻。還,從宣翻,又音如字。更,工衡翻。

 

 왕은 끝내 이사의 꾀를 써서 몰래 변사들을 파견하여 금과 옥을 가지고 제후들에게 유세하게 하고 제후의 명사들 가운데 따르지 않는 자는 예리한 칼로 찌르고, 그들의 군신을 이간시키는 계책도 쓰고, 그런 다음에 훌륭한 장수로 하여금 그 뒤를 이어 좇게 하니, 몇 년 사이에 끝내 천하를 겸병하였다.

 王卒用李斯之謀,陰遣辯士齎金玉遊說諸侯,諸侯名士可下以財者厚遺結之,不肯者利劍刺之,離其君臣之計,然後使良將隨其後,數年之中,卒兼天下。卒,子恤翻。遺,于季翻。刺,七亦翻,又七賜翻。將,卽亮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