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以黃歇爲相,封以淮北地,號曰春申君고열왕이 즉위하자 황헐을 재상으로 삼고 春申君이라 했다.

solpee 2019. 9. 21. 17:30

 

《周紀5 赧 52 (戊戌, 前263

 

 

 2.초의 경양왕이(羋橫) 병들었다. 황헐이 응후에게 말하였다.

 "이제 초왕이 병들었으니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 걱정인데 진은 그 태자를 돌려보냄만 못할 것입니다. 태자가 설 수 있다면 그의 진을 섬기는 태도가 아주 정중할 것이고, 상국에 덕스럽게 여기는 것이 무궁할 것이니, 이는 우방국과 가까이하여 만승의 나라를 저축해 둘 수 있는 것입니다.

 2.楚頃襄王疾病。疾至於甚曰病。黃歇言於應侯曰:「今楚王疾恐不起,秦不如歸其太子。太子得立,其事秦必重而德相國無窮,是親與國而得儲萬乘也。

 

 돌려보내지 않는 것은 함양에 있는 포의일 뿐입니다. 또한 초가 바꾸어 임금을 세운다면 반드시 진을 섬기지 않을 것이니, 이는 우방국을 잃고 만승의 나라와의 평화관계를 끊는 것이니 나쁜 계책입니다."

 不歸,則咸陽布衣耳。四十三年,黃歇與楚太子爲質於秦。應,於陵翻。相,息亮翻。乘,繩證翻。歇,許竭翻。楚更立君,必不事秦,更,工衡翻。是失與國而絕萬乘之和,非計也。」

 

 응후가 왕에게 보고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태자의 선생님으로 하여금 먼저 가서 병문안을 하게 하고, 돌아온 다음에 이를 도모하도록 하시오."

 황헐이 태자와 더불어 모의하여 말하였다.

 應侯以告王。王曰:「令太子之傅先往問疾,反而後圖之。」黃歇與太子謀曰:

 

 "진이 태자를 머물게 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태자의 힘으로는 진을 이롭게 할 수 없으나 양문군의 두 아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왕이 만약에 대명하면 태자는 없으니 양문군의 아들이 반드시 서서 후사가 될 것이고, 태자께서는 종묘를 받들 수 없게 됩니다.

「秦之留太子,欲以求利也。今太子力未能有以利秦也令,力丁翻。歇,許竭翻。而陽文君子二人在中。王若卒大命,謂死也。卒,終也,音子恤翻。太子不在,陽文君子必立爲後,太子不得奉宗廟矣。

 

 진에서 도망하여 사자와 함께 탈출하는 것만 못합니다. 신이 청컨데 머물다가 죽음으로써 이를 맞이하게 해주십시오."

 이어서 태자는 복장을 바꾸어 입고 초의 사자의 마부가되어 말을 몰아서 관문을 빠져나갔고, 황헐은 집을 지키면서 항상 태자를 위하여 병이 났다고 손님을 사절하였다.

 不如亡秦,與使者俱出。逃去爲亡。使,疏吏翻。臣請止,以死當之!」太子因變服爲楚使者御而出關;而黃歇守舍,常爲太子謝病。

 

 태자가 멀리 갔을 것이라고 헤아리고 마침내 스스로 왕에게 말하였다.

 "초의 태자는 이미 돌아가는데, 떠나서 멀리 갔습니다. 저 황헐이 바라건데, 죽음을 내려주십시오."

 왕이 노하여 이 말을 들으려 하였다.

 度太子已遠,歇,許竭翻。守舍者,守楚太子所寓館舍。常爲,于僞翻。度,徒洛翻。乃自言於王曰:「楚太子已歸,出遠矣。歇願賜死!」王怒,欲聽之。

 

 응후가 말하였다.

 "황헐은 초나라의 신하인데, 몸을 내어 그 주인을 위하여 죽기를 원합니다만 태자가 서게 되면 반드시 황헐을 채용할 것입니다. 죄를 없애고 그를 돌려보내어 초와 친해 둠만 못합니다."

 應侯曰:「歇爲人臣,出身以徇其主,太子立,必用歇。不如無罪而歸之,言無以罪加歇,而歸之於楚,以結其和親也。應,於陵翻。以親楚。」

 

 왕이 이에 따랐다.

 황헐이 초에 도착하여 석 달이 되고 가을이 되자, 경양왕이 죽고, 고열왕(23대)이 즉위하자 황헐을 재상으로 삼고 회수 북쪽의 땅을 가지고 책봉하고 춘신군이라 불렀다.

 王從之。黃歇至楚三月,秋,頃襄王薨,考烈王卽位;頃,音傾。秋,卽是年秋。考烈王,卽太子完。以黃歇爲相,封以淮北地,號曰春申君。《史記》,歇初封春申君,賜淮北十四縣;後徙封江東,因城吳故墟以爲都邑,今蘇州是也。相,息亮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