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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交絕不出惡聲,忠臣去國,不潔其名/군자는 교제가 끊어져도 악담하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

solpee 2019. 9. 20. 11:25

 

《周紀4 赧 36 (壬午, 前279

 

 

 3...略...

 3.初,燕人攻安平燕,因肩翻。班《志》,東安平縣屬淄川;司馬彪《志》屬北海郡。《括地志》:安平城在青州臨淄縣東十九里,古紀國之酅邑。《唐志》,青州有安平縣,後省入博昌縣。按三十一年樂毅入臨淄,以中軍據之,燕人攻安平,當在三十二年、三十三年之間,故《通鑑》於是年以「初」字發之。酅,戶圭翻。臨淄市掾田單在安平,使其宗人皆以鐵籠傅車轊。掾,以絹翻,掌市官屬也。卷鐵以傅車轊,故謂之鐵籠。籠,盧東翻。傅,音附。轊,音衞。車軸頭謂之轊。及城潰,人爭門而出,皆以轊【章:十二行本「轊」作「軸」;乙十一行本同;孔本同。】折車敗,爲燕所擒;潰,戶對翻,潰散也。折,食列翻。燕,因肩翻。獨田單宗人以鐵籠得免,遂奔卽墨。是時齊地皆屬燕,獨莒、卽墨未下,樂毅乃幷右軍、前軍以圍莒,左軍、後軍圍卽墨。卽墨大夫出戰而死。

 

 즉묵 사람들이 말하였다.

 "안평의 싸움에서 전단의 종인들은 수레의 축을 쇠로 싸서 온전할 수가 있었으니, 이는 지혜가 많고 군사도 익힌 것이다."

 이어서 함께 그를 장수로 세워서 연에 대항하게 하였다.

 卽墨人曰:「安平之戰,田單宗人以鐵籠得全,是多智習兵。」因共立以爲將以拒燕。燕,因肩翻。將,卽亮翻。

 

 낙의는 두 읍을 포위하고 1년이 되어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포위를 풀게 하고 각기 성에서 9리 떨져서 보루를 쌓게 하고 명령을 내렸다.

 "성에 있는 백성이 나오면 잡지 말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진휼하며, 바로 옛날의 직업에 복귀하게 하고 새로운 백성들을 진정시켜라."

 樂毅圍二邑,期年不剋,乃令解圍,各去城九里而爲壘,令曰:「城中民出者勿獲,困者賑之,令,力正翻。勿獲,勿禽之以爲俘獲。賑,卽忍翻,救也,恤也。毅欲懷柔二邑,使之自服,不及計其死守也。使卽舊業卽,就也。以鎭新民。」恐新民思爲齊而反,則以此鎭之。

 

 3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성이 점령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연의 소왕에게 참소하였다. ...중략...

 三年而猶未下。或讒之於燕昭王曰:「樂毅智謀過人,伐齊,呼吸之間剋七十餘城,今不下者兩城耳,非其力不能拔,所以三年不攻者,欲久仗兵威以服齊人,南面而王耳。今齊人已服,所以未發者,以其妻子在燕故也。且齊多美女,又將忘其妻子。願王圖之!」

 

 소왕이 술을 벌려놓고 대회를 열고 소왕에게 말한 사람을 나무라면서 말하였다.

 "선왕께서 거국적으로 현명한 사람을 예로써 대우한 것은 토지를 탐내서 이를 자손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이 아니었소...중략...

 이제 낙군은 친히 과인을 위하여 제를 탈취하고 그 종묘를 헐어버려서 선왕의 원수를 갚았으니, 제는 본디 낙군의 소유이지 연이 얻을 것이 아니오.

 昭王於是置酒大會,引言者而讓之曰:讓,責也。「先王舉國以禮賢者,非貪土地以遺子孫也。遺,于季翻。遭所傳德薄,不能堪命,國人不順。齊爲無道,乘孤國之亂以害先王。謂王噲讓國於子之,以至亡國殺身也。事見上卷愼靚王五年,今王元年。堪,勝也,任也。不能堪命者,言王噲命子之,子之不能勝王噲所命而任燕國之事也。噲,苦夬翻。靚,疾正翻。勝,音升。任,音壬。寡人統位,統,他綜翻。丁度曰:統,攝理也。痛之入骨,故廣延羣臣,外招賓客,以求報讎;其有成功者,尚欲與之同共燕國。今樂君親爲寡人破齊,夷其宗廟,夷,平也。爲,于僞翻。報塞先仇,塞,悉則翻。齊國固樂君所有,非燕之所得也。

 

 낙군께서 만약에 제를 소유하고 우리 연과 나란히 열국이 되어 즐거운 관계를 맺고 같이 좋아하며 제후들의 어려움을 막아준다면 연의 복이며 과인이 원하는 바이오. 네가 어찌 감히 그와 같은 말을 하는가?"

 마침내 그를 참수하였다.

 樂君若能有齊,與燕並爲列國,結歡同好,以抗諸侯之難,燕國之福,寡人之願也。塞,悉則翻。燕,因肩翻。好,呼到翻。難,乃旦翻。汝何敢言若此!」乃斬之。

 

 낙의의 처에게 왕후의 복장을 내려주고, 그의 아들에게는 공자의 복장을 내려주고, 노거승마(제후의 수레와 네 마리 말)에 그 뒤로 100대의 수레가 따르게 하면서 국상을 파견하여 그들을 낙의에게 보내고 낙의를 세워서 제왕으로 하였다.

 賜樂毅妻以后服,賜其子以公子之服;輅車乘馬,後屬百兩,夏奚仲作車,至周而備其制。輿方象地;蓋圓象天;三十輻以象日、月;蓋弓二十八以象列星;龍旂九斿、七仞、齊軫以象大火;鳥旟七斿、五仞、齊較以象鶉火;熊旂六斿、五仞、齊肩以象參伐;龜旐四斿、四仞、齊首以象營室;弧旌、枉矢以象弧:此諸侯以下所建者也。輅車之後,又有屬車百兩,亦當時諸國之儀。乘馬,四馬也。孔穎達曰:《書序》云:武王戎車三百兩,皆以一乘爲一兩。謂之兩者,《風俗通》以車有兩輪,故車稱兩。乘,繩正翻。好,呼到翻。難,乃旦翻。屬,音蜀。兩,音亮。旂,渠希翻。斿,夷周翻,旒也。參,所今翻,列宿星名也。旐,音兆。遣國相奉而致之樂毅,立樂毅爲齊王。相,息亮翻。

 

 낙의가 당황하고 두려워하여서 이를 받지 아니하고 절하며 편지를 써서 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서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제인들은 그 의로움에 복종하고, 제후들은 그의 신의에 두려워하여 감히 잔꾀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樂毅惶恐不受,拜書,以死自誓。由是齊人服其義,諸侯畏其信,莫敢復有謀者。復,扶又翻。

 

 얼마 안 되어 소왕이 죽고 혜왕이 섰다. 혜왕은 태자 때부터 일찍이 낙의에게 불쾌해하였다. 제의 전단이 이 소식을 듣고, 마침내 연에 반간을 풀어놓아 선언하였다.

 頃之,昭王薨,惠王立。頃之,言無幾何時。相,息亮翻。毅,魚器翻。惠王自爲太子時,嘗不快於樂毅。田單聞之,乃縱反間於燕,《孫子》五間,有反間,因其敵間而用之。又曰:敵間之間我者,因而利之,導而舍之,故反間可得而用也。間,古莧翻。宣言曰:

 

 "제왕이 이미 죽었는데, 성 가운데 함락되지 않은 것은 두 개 뿐입니다. 낙의와 연의 새로 된 왕 사이에는 틈이 있어서 주살될까 두려워 감히 귀국하지 않고 제를 친다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사를 연합하고서 남면하여 제에서 왕 노릇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齊王已死,城之不拔者二耳。樂毅與燕新王有隙,畏誅而不敢歸,以伐齊爲名,實欲連兵南面王齊。王,于況翻,又音如字。

 

 제인들이 아직 그에게 귀부하지 않았으므로 천천히 즉묵을 공격하면서 그 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인들이 두려워하는 바는 오히려 그가 장차 공격해 와서 즉묵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齊人未附,故且緩攻卽墨以待其事。齊人所懼,唯恐他將之來,卽墨殘矣。」

 

 연왕이 본디 이미 낙의를 의심하고 있던 터에 제의 반간을 만나 보게 되자 마침내 기겁으로 하여금 대신 군사를 거느리게 하고 낙의를 소환하였다.

 燕王固已疑樂毅,得齊反間,乃使騎劫代將而召樂毅。將,卽亮翻。燕,因肩翻,下同。騎,奇寄翻,康曰:姓也。余謂騎劫時以能而將,騎以官稱,非姓也。毅,魚器翻。

 낙의는 왕이 자기에게 좋지 못한 생각으로 다른 사람으로 대체토록 하였음을 알고, 마침내 조로 도망하였다. 연의 장군과 사병들이 이로 말미암아서 분하고 원통해 하면서 불화하게 되었다.

 樂毅知王不善代之,知王遣代,其意不善,將誅之也。遂奔趙。燕將士由是憤惋不和。燕,因肩翻。將,卽亮翻。惋,烏貫翻。

 

...중략...

 田單令城中人食,必祭其先祖於庭,飛鳥皆翔舞而下城中。燕人怪之,田單因宣言曰:「當有神師下敎我。」有一卒曰:「臣可以爲師乎?」因反走。田單起引還,坐東鄕,師事之。鄕,讀曰嚮。卒曰:「臣欺君。」田單曰:「子勿言也!」因師之。每出約束,必稱神師。田單恐衆心未一,故假神以令其衆。乃宣言曰:「吾唯懼燕軍之劓所得齊卒,劓,魚器翻,割鼻也。置之前行,行,戶剛翻。卽墨敗矣!」燕人聞之,如其言。城中見降者盡劓,皆怒,堅守,唯恐見得。降,戶江翻。單又縱反間,言「吾懼燕人掘吾城外冢墓,可爲寒心!」掘,其月翻。冢,之隴翻。燕軍盡掘冢墓,燒死人。齊人從城上望見,皆涕泣,共欲出戰,怒自十倍。田單知士卒之可用,乃身操版、鍤,與士卒分功;操,七刀翻。鍤,則洽翻,鍫也。妻妾編於行伍之間;盡散飲食饗士。令甲卒皆伏,使老、弱、女子乘城,乘,登也,登城而守也。遣使約降於燕;使,疏吏翻。降,戶江翻。燕,因肩翻。燕軍皆呼萬歲。田單又收民金得千鎰,令卽墨富豪遺燕將,曰:「卽降,願無虜掠吾族家!」燕將大喜,許之。燕軍益懈。

 

 전단은 마침내 성 안에서 소 1천여 마리를 모아서 붉은 옷을 입히고 그 위에 5색으로 용의 그림을 그리고는 뿔에는 칼을 묶어놓고 기름 묻힌 갈대를 소의 꼬리에 묶어놓고 나서 그 끝에 불을 붙이고, 성을 수십 군데 뚫어 놓고 밤중에 소를 놓아두고 장사 5천 명이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田單乃收城中,得牛千餘,爲絳繒衣,鎰,弋質翻。遺,于季翻。令,盧經翻。懈,古隘翻。繒,慈陵翻,絹也。畫以五采龍文,畫,古?字通。束兵刃於其角,而灌脂束葦於其尾,葦,于鬼翻,葭也。燒其端,鑿城數十穴,夜縱牛,壯士五千【章:十二行本「千」下有「人」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隨其後。《史記‧田單傳》,「壯士五千」下有「人」字。

 

 소는 꼬리가 뜨거워지자 성이 나서 연의 부대로 달려갔다. 연의 군사가 크게 놀랐고, 소들이 모두 용의 무늬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부딪치면 죽거나 다쳤다. 성 안에서는 북을 치면서 시끄럽게 하며 이를 좇고 노약자들은 모두 놋그릇을 쳐서 소리를 내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연의 군대가 크게 놀라서 패하여 달아났다.

 牛尾熱,怒而奔燕軍。燕軍大驚,視牛皆龍文,所觸盡死傷。而城中鼓譟從之,譟,先到翻,羣呼也。老弱皆擊銅器爲聲,聲動天地。燕軍大駭,敗走。

 

 제인들이 기겁을 잡아 죽였고, 도망자들을 추격하여 북쪽으로 쫓는데, 지나가는 성과 읍들이 모두 연을 배반하여 다시 제의 것이 되었다. 전단의 군사는 날로 많아져서 이긴 기세를 탔고, 연은 날로 패망하여 도망쳐서 황하에 이르렀고 제의 70여개 성이 모두 복귀하였다.

 齊人殺騎劫,追亡逐北,亡,逃亡也。北,奔北也。逃亡者追之,奔北者逐之。楊倞曰:北者,乖背之名,故以敗走爲北。毛晃曰:人道面南偝北,北者偝也,故古以堂北爲背,背亦偝也。以敗走爲北者,取偝之而走耳。所過城邑皆叛燕,復爲齊。田單兵日益多,乘勝,燕日敗亡,走至河上,而齊七十餘城皆復焉。燕,因肩翻。爲,于僞翻,又音如字。

 

 마침내 양왕을 거에서 영접하여 임치로 들어갔고, 전단을 책봉하여 안평군으로 삼았다.

 ...중략...

 乃迎襄王於莒;入臨淄,封田單爲安平君。齊以田單安國平難,又嘗保安平,故因以安平封之。

齊王以太史敫之女爲后,生太子建。太史敫曰:「女不取媒,因自嫁,非吾種也,汙吾世!」徐廣曰:敫,音躍,一音皎。師古曰:敫,古穆字。種,之隴翻。汙,烏故翻;凡染汙之汙皆同音。終身不見君王后,君王后亦不以不見故失人子之禮。

 

 조왕은 낙의를 관진에 책봉하고 그를 높이고 아껴서 연·제에 경종을 주었다. 연의 혜왕은 마침내 사람을 시켜서 낙의를 나무라고 또 사과하면서 말하였다.

 "장군은 지나치게 남의 말을 들어서 과인과 틈이 생기게 되었고, 드디어 연을 버리고 조에 귀부하였소. 장군이 스스로 헤아려 본다면 좋겠지만 또한 어떻게 선왕이 장군을 대우해주었던 뜻에 보답하겠소?"

 趙王封樂毅於觀津,班《志》,觀津縣屬信都國。觀,工喚翻。尊寵之,以警動於燕、齊。燕惠王乃使人讓樂毅,且謝之曰:「將軍過聽,以與寡人有隙,遂捐燕歸趙。捐,余專翻,弃也。將軍自爲計則可矣,而亦何以報先王之所以遇將軍之意乎?」

 

 낙의가 회답하는 편지를 썼다.

 "옛날 오자서가 합려에게 말하여 듣자 오는 멀리 영에까지 넓혔으나, 부차는 옳게 여기지 아니하여 그를 죽여서 말가죽 자루에 넣어 장강에 띄워보냈습니다.

 樂毅報書曰:「昔伍子胥說聽於闔閭而吳遠迹至郢;夫差弗是也,賜之鴟夷而浮之江。

 

 오왕은 먼저 이를 논의하여야 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오자서를 빠뜨리고도 후회하지 않았고, 오자서는 일찍이 지금의 주군이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에 장강에 들어가서 귀신도 되지 못하기에 이르렀습니다.

 吳王不寤先論之可以立功,故沈子胥而不悔;子胥不蚤見主之不同量,是以至於入江而不化。遠迹,言自吳至郢,其道里甚遠而行迹得至也。弗是,謂夫差弗以子胥之言爲是也。伍子胥,楚人也。楚平王信讒,殺其父、兄,子胥奔吳。吳王闔閭信而用之,伐楚入郢。闔閭卒,夫差立,子胥屢諫不聽,賜之屬鏤以死。子胥旣死,夫差取其尸,盛之鴟夷,浮之江中。應劭曰:鴟夷,榼形也,以馬革爲之。韋昭曰:革囊也。或曰:生牛皮也。《索隱》曰:言子胥怨恨,故雖投江而神不化,猶爲波濤之神也。郢,以井翻。說,式芮翻。夫,音扶。差,初加翻。鴟,丑之翻。沈,持林翻。量,力讓翻。闔,戶臘翻。卒,子恤翻。鏤,力俱翻,又力侯翻。盛,時征翻。榼,戶盍翻。

 

 무릇 자신은 죽음을 면하고, 공로를 세워서 선왕의 업적을 밝히려는 것이 저의 가장 좋은 계책이었습니다. 훼손되고 욕을 먹는 비방을 받고 선왕의 이름을 떨어뜨리는 것은 신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죄에 가까이 가서 행복을 이롭다고 여기는 의로운 입장에서 감히 나갈 수 없습니다.

 夫免身立功以明先王之迹,臣之上計也。夫,音扶。離毀辱之誹謗,墮先王之名,臣之所大恐也。離,與罹同。墮,與隳同,音火規翻;後凡墮毀之墮皆同音。臨不測之罪,以幸爲利,義之所不敢出也。謂不敢與趙謀燕。

 

 신이 듣기로는 옛날의 군자는 교제가 끊어진다 하여도 나쁜 소리를 내지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난다고 하여도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은 비록 재주가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자주 군자에게서 가르침을 받들었습니다. 다만 군왕께서 이 점을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臣聞古之君子,交絕不出惡聲,忠臣去國,不潔其名。臣雖不佞,不佞,猶言不才也。數奉敎於君子矣。數,所角翻。唯君王之留意焉!」

 

 이에 연왕은 다시 낙의의 아들인 낙한을 창국군으로 삼으니 낙의가 왕래하여 연에 다시 통하게 하였는데, 조에서 죽으니 그의 호를 망제군이라고 하였다.

 於是燕王復以樂毅子閒爲昌國君,燕,因肩翻。《索隱》曰:閒,音紀閑翻。而樂毅往來復通燕,卒於趙,號曰望諸君。望諸,澤名,本齊地;毅自齊奔趙,趙人以此號之,本其所從來也。卒,子恤翻。

 

 전단이 제의 재상이 되어서 치수를 지나가는데 어떤 노인이 치수를 건너다가 물이 차서 물에서 나와 가지를 못하였다. 전단이 그의 갑옷을 벗어서 그에게 입혀주었다. 양왕이 이를 싫어 하여서 말하였다.

 田單相齊,相,息亮翻。過淄水,《水經》︰淄水出泰山萊蕪縣原山,東北過臨淄縣,又東過利縣東,東北入于海。有老人涉淄而寒,出水不能行。田單解其裘而衣之。襄王惡之,曰:

 

 "전단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장차 나의 나라를 빼앗으려는 것인가! 일찍이 도모하지 않으면 후에 변괴를 일으킬까 두렵구나."

 좌우로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지만 궁궐 아래에 구슬을 꿰는 사람이 있었기에 양왕이 그를 불러서 물었다.

「田單之施於人,衣,於旣翻。惡,烏路翻。施,式豉翻;後凡布施之施皆同音。【章:十二行本「將」下有「欲」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以取我國乎!不早圖,恐後之變也。」左右顧無人,巖下有貫珠者,巖下,殿巖之下也。昔舜遊巖廊。襄王呼而問之曰: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들어는가?"

 대답하였다.

 "들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대답하였다.

「汝聞吾言乎?」對曰:「聞之。」王曰:「汝以爲何如?」對曰:

 

 "왕께서 이를 이용하여서 자기의 선으로 여기는 것만 못합니다. 왕께서 전단이 한 선한 일을 가상히 여기시고 명령을 내려서 말하기를 '과인은 백성들이 배고파 주릴까 걱정하였는데, 전단이 그들을 거두어 먹였고, 과인은 백성들이 추울까를 걱정하였는데, 전단이 외투를 벗어서 그들에게 입혔다.

「王不如因以爲己善。王嘉單之善,下令曰:『寡人憂民之飢也,單收而食之。寡人憂民之寒也,單解裘而衣之。

 

 과인은 백성들을 수고롭게 할까 걱정하였는데 전단이 역시 걱정하였으니, 과인의 뜻과 같도다.'라고 하십시오. 전단이 선한 일을 했다면 왕께서 이를 칭찬하시면 전단의 선한 일은 또한 왕의 선한 일이 됩니다."

 寡人憂勞百姓,而單亦憂,【章:十二行本「憂」下有「之」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稱寡人之意。』食,祥吏翻。稱,昌孕翻,愜也;後凡稱愜之稱皆同音。單有是善而王嘉之,單之善亦王之善也!」

 

 왕이 말하였다.

 "훌륭하다."

 마침내 전단에게 술과 쇠고기를 내렸다.

 며칠 뒤에 구슬을 꿰는 사람이 다시 왕을 뵙고 말하였다.

 "왕께서 조회가 있는 날에 마땅히 전단을 불러서 뜰에서 그에게 읍하고 입으로 그를 위로하십시오. 그리고 명령을 반포하여 백성들 가운데 주리고 추운 사람을 찾아서 그들을 거두어 길러주라고 하십시오."

 王曰:「善。」乃賜單牛酒。後數日,貫珠者復見王曰:「王朝日宜召田單而揖之於庭,口勞之。復,扶又翻。朝,陟遙翻,旦日;又直遙翻,朝羣臣之日也。勞,力到翻;凡撫勞之勞皆同音。乃布令求百姓之飢寒者,收穀之。」穀,如字,養也。收穀,收而養之也。

 

 마침내 사람을 시켜서 마을에 가서 소문을 듣게 하였더니 대부들이 서로 말하였다.

 "전단이 사람들을 아끼는 것은, 아! 바로 왕이 가르친 것이었군."

 乃使人聽於閭里,聞大夫之相與語者曰:「田單之愛人,嗟,乃王之敎也!」

 

 ...중략...

 田單任貂勃於王。任,汝鴆翻,保也。今之任子,義亦如此。貂,丁聊翻,康曰:姓也。王有所幸臣九人,欲傷安平君,傷,譖毀也,害也,損也。相與語於王曰:「燕之伐齊之時,楚王使將軍將萬人而佐齊。軍將,卽亮翻,又音如字,領也。今國已定而社稷已安矣,何不使使者謝於楚王?」王曰:「左右孰可?」九人之屬曰:「貂勃可。」貂勃使楚,楚王受而觴之,數月不反。使,疏吏翻。觴之者,舉觴以禮之也。九人之屬相與語【章:十二行本「語」下有「於王」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曰:「夫一人之身而牽留萬乘者,豈不以據勢也哉!謂貂勃以安平君之重,楚王留而禮遇之也。夫,音扶。乘,繩證翻。且安平君之與王也,君臣無異而上下無別。別,彼列翻。且其志欲爲不善,內撫百姓,外懷戎翟,翟,與狄同。禮天下之賢士,其志欲有爲,願王【章:十二行本「爲」下有「也」字,「王」下有「之」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云:「爲」下有「也」字。】察之!」異日,王曰:「召相單而來!」異日,猶言他日也。相,息亮翻。田單免冠、徒跣、肉袒而進,徒跣,徒行而跣足也。跣,先典翻,不屨而以足親地也。李巡曰:襢裼,脫衣;袒肩見體曰肉袒。襢,與袒同。裼,先的翻。退而請死罪,五日而王曰:「子無罪於寡人。子爲子之臣禮,吾爲吾之王禮而已矣。」貂勃從楚來,王賜之酒。酒酣,王曰:「召相單而來!」貂勃避席稽首酣,戶甘翻,酒樂也。應劭曰:洽也。稽,音啓,下首拜也。曰:「王上者孰與周文王?」王曰:「吾不若也。」貂勃曰:「然,臣固知王不若也。下者孰與齊桓公?」王曰:「吾不若也。」

 

 초발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신은 왕께서 그만 못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주의 문왕은 여상을 얻어서 태공으로 여겼으며, 제의 환공은 관이오를 찾아서 중보로 여겼는데, 이제 왕께서는 안평군을 찾아냈으나, 다만 그를 '단'이라고만 말하니 어찌 이렇게 나라를 망칠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貂勃曰:「然,臣固知王不若也。然則周文王得呂尚以爲太公,呂尚釣於渭濱,周文王出獵,載與俱歸,曰:「吾太公望子久矣。」因號曰「太公望」。齊桓公得管夷吾以爲仲父,齊公子無知之亂,管夷吾奉公子糾與桓公爭國。子糾死,管仲囚,桓公釋其罪,任之以政,號曰「仲父」。《姓譜》︰管姓,周文王子管叔之後。今王得安平君而獨曰『單』,安得此亡國之言乎!

 

 또 천지가 열리고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신하 된 사람의 공로로 누가 안평군보다 두터운 사람이 있습니까? 왕께서는 왕의 사직을 지킬 수 없었고, 연인들이 군사를 일으켜서 제를 습격하였을 때, 왕은 도주하여 성양의 산속으로 갔고, 안평군은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 즉묵이라는 불과 3리 밖에 안 되는 성과 5리 밖에 안 되는 곽과 지쳐 있는 졸병 7천 명을 가지고 그의 사마를 잡고 천리나 되는 제의 땅을 회복하였는데, 이것이 안평군의 공로입니다.

 且自天地之闢,民人之始,爲人臣之功者,誰有厚於安平君者哉?王不能守王之社稷,燕人興師而襲齊,王走而之城陽之山中,襄王從湣王走莒。班《志》,莒縣屬城陽國,故云城陽之山中。湣,讀曰閔。莒,居許翻。安平君以惴惴卽墨三里之城,五里之郭,敝卒七千人,禽其司馬而反千里之齊,安平君之功也。惴,之睡翻,危恐之貌。司馬,蓋指騎劫。

 

 그때 성양을 내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어도 천하에서 이를 저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에서 계산하고 의로 돌아가니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러므로 잔도를 만들고 나무로 집을 만들어서 왕과 왕후를 성양 산 속에서 모셔오니, 왕은 마침내 돌아올 수가 있었고, 그대는 백성들에게 군림하였습니다.

 當是之時,舍城陽而自王,舍,讀曰捨。王,于況翻。天下莫之能止。然而計之於道,歸之於義,以爲不可,故棧道木閣而迎王與后於城陽山中,架木通路曰棧道。棧,士限翻;康士諫切,非。王乃得反,子臨百姓。

 

 이제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도 이미 편안해지자, 왕은 마침내 '단'이라고 부르니, 어린아이의 계략으로도 이렇게는 아니합니다. 왕께서는 이 9명을 빨리 죽여서 안평군에게 사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今國已定,民已安矣,王乃曰『單』,嬰兒之計不爲此也。王亟殺此九子者以謝安平君;不然,國其危矣!」

 

 마침내 9명을 죽이고 그 집안을 쫓아버렸으며, 안평군에게 야읍의 1만 호를 더 붙여서 책봉하였다.

 전단이 장차 적인들을 공격하려고 하여 노중련을 찾아 가서 보았다.

 노중련이 말하였다.

 乃殺九子而逐其家,益封安平君以夜邑萬戶。「夜邑」,《戰國策》作「掖邑」。班《志》,掖縣屬東萊郡。掖,羊益翻。

田單將攻狄,班《志》,狄縣屬千乘郡。後漢安帝改曰臨濟。徐廣曰:狄,今樂安臨濟縣也。《史記正義》曰:故狄城在淄州高苑縣西北。往見魯仲連。《姓譜》:魯,以國爲姓。魯仲連曰:

 

 "장군은 적을 공격하여도 이길 수 없을 것이오."

 전단이 말하였다.

 "신은 즉묵이 패망하고 남은 졸병들을 가지고 만승의 연을 격파하고, 제의 터전을 회복하였는데, 이제 적을 공격하여도 이기지 못한다니 왜 그러합니까?"

 수레에 올라서 인사도 하지 않고 가고, 드디어 적을 공격하였다. 3개월이 되어도 이기지 못하였다.

「將軍攻狄,不能下也。」田單曰:「臣以卽墨破亡餘卒破萬乘之燕,復齊之墟,今攻狄而不下,何也?」上車弗謝而去,乘,繩證翻。燕,因肩翻。上,時掌翻。遂攻狄。三月不克。

 

 제의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 말하였다.

 "커다란 모자는 키와 같고, 칼을 길게 하여 턱을 받치고 있지만, 적인을 공격하고도 이기지 못하고 쌓인 백골들은 언덕을 이루었구나!"

 전단이 마침내 두려워서 노중련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저 전단에게 적인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청컨데 그 이유를 설명해주십시오."

 小兒謠曰:「大冠若箕,謠,余昭翻。徒歌曰謠。大冠,武冠也。脩劍拄頤,脩,長也。拄,冢庾翻。攻狄不能下,壘枯骨成丘。」田單乃懼。問魯仲連曰:「先生謂單不能下狄,請聞其說。」

 

 노중련이 말하였다.

 "장군이 즉묵에 있을 때는 앉는다면 풀로 짠 삼태기였고, 서 있을 때는 가래에 의지하였고, 사졸들을 위하여 부르짖기를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종묘가 망하겠다. 오늘은 오히려 그렇지만 내일은 어느 무리 속에 있을꼬?'라고 하였습니다.

 仲連曰:「將軍之在卽墨,坐則織蕢,蕢,其位翻,草器也。立則仗鍤,顏師古曰:仗,直亮翻,憑荷也。鍤,則洽翻。爲士卒倡曰:『無可往矣!宗廟亡矣!今日尚矣!歸於何黨矣!』毛晃曰:尚,庶幾也。言單於其時蓋言曰:「今日之事,尚庶幾焉。」黨,類也,言戰有勝負,不死則降,將歸於何類也。

 

 그때 장군은 죽을 마음을 갖고 있었고, 사졸들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그대의 말을 들으면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부딪치며 달려가서 싸우고자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것이 연을 이긴 이유입니다.

 此之時,將軍有死之心,士卒無生之氣,聞君言莫不揮泣奮臂而欲戰,此所以破燕也。

 

 이제는 장군은 동쪽에는 야읍에서의 봉양함이 있고, 서쪽에는 치상에서의 오락을 갖고 있으며, 황금 허리띠를 차고 치수와 승수의 사이를 달리니, 사는 즐거움은 있지만 죽을 마음이 없으니, 못 이기는 까닭입니다."

 今將軍東有夜邑之奉,西有淄上之娛,此蓋言安平封邑,益之以夜邑。夜邑在安平東,淄水在安平西;夜邑有租賦之奉,淄上有遊觀之樂:故魯仲連云然。燕,因肩翻。夜,讀曰掖,音羊益翻。黃金橫帶而騁乎淄、澠之間,《水經註》:淄水自利縣東北流,逕安平城北,又東逕廣饒縣,與濁水會。濁水出廣饒縣冶嶺山,亦謂之澠水,又北與時、澠之水會。時水出齊城西北,北會澠水。澠水出營城東,世謂漢溱水,西逕樂安、博縣,與時水合。孔子謂「淄、澠之合,易牙嘗而知之」,卽斯水也。騁,丑郢翻,馳騖也。澠,時陵翻。溱,仄詵翻,又音秦。有生之樂,無死之心,所以不勝也。」樂,音洛。

 

 전단이 말하였다.

 "저 전단이 이미 작정하였는데, 선생께서 이를 마음에 새겨 두십시오." 다음날 기세를 올려 성을 순시하는데 화살이나 돌이 날아올 곳에 서서 북채를 잡고 북을 울리자, 적인들이 마침내 격파되었다.

 單曰:「單之有心,先生志之矣。」志者,心之所主也。明日,乃厲氣循城,厲,嚴厲也,勉厲也,奮厲也,振厲也,是三者有修飭振起之意。立於矢石之所,援枹鼓之;狄人乃下。援,于元翻,引也;後以義推。枹,芳無翻,擊鼓杖。

 

 처음에, 제의 민왕이 이미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맹상군을 제거하려 하였다. 맹상군이 위로 도주하였고, 위의 소왕이 재상으로 삼고서 제후들과 함께 제를 격파하였다. 민왕이 죽고 양왕이 나라를 회복하였으나 맹상군은 중간에 서서 제후가 되어 속하는 바가 없었다.

  湣王旣滅宋,欲去孟嘗君。二十九年書齊滅宋,先書宋滅薛,時孟嘗君已封於薛,宋所滅者何薛邪?去,羌呂翻。孟嘗君奔魏,魏昭王以爲相,與諸侯共伐破齊。湣王死,襄王復國,而孟嘗君中立爲諸侯,無所屬。

 

 양왕이 새로 임금이 되니 맹상군을 두려워하여서 그와 더불어 화의를 맺었다. 맹상군이 죽자 그의 여러 아들이 서는 문제로 다투었고, 제와 위가 함께 설을 멸망시키자, 맹상군의 후사는 끊어졌다.

 襄王新立,畏孟嘗君,與之連和。孟嘗君卒,諸子爭立,而齊、魏共滅薛,孟嘗君絕嗣。嗣,祥吏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