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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臣不事二君,烈女不更二夫/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solpee 2019. 9. 17. 05:02

 

《周紀4 赧 31 (丁丑, 前284

 

 

 2. 낙의가 화읍 사람 왕촉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군중에 명령하여 화읍에서 포위하고 30리 내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다. 사람을 시켜서 왕촉을 청하였으나 왕촉이 감사하고 가지 않았다. 연인들이 말하였다.

 2. 樂毅聞晝【章:乙十一行本作「畫」;孔本同;下均同。】邑人王蠋賢,劉熙曰:畫,齊西南近邑,音獲。《索隱》曰:音胡卦翻。《括地志》:戟里城在臨淄城西北三十里,春秋時棘邑。又云:澅邑,蠋所居,卽此邑,因澅水爲名也。京相璠曰:今臨淄有澅水,西北入沛,卽班《志》所謂如水;如、時聲相似,然則澅水卽時水也。余按後漢耿弇攻張步,進軍畫中,在臨淄、西安二邑之間。「蠋」,班固《古今人表》作「歜」,音觸。據「蠋」字則當音蜀,或音之欲翻;康珠玉切。《通鑑》以畫邑爲晝邑,以孟子去齊宿於晝爲據也。若以《孟子》爲據,則晝讀如字。令軍中環晝邑三十里無入。環,據《漢書音義》音宦。使人請蠋,蠋謝不往。燕人曰:

 

 "오지 않으면 우리가 또 화읍을 도륙할 것이오?"

 왕촉이 말하였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며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습니다. 나라는 깨지고 임금은 죽었으니, 나는 살아 있을 수 없는데 또 군사로 이를 겁탈하려고 하니, 내가 그 옳지 못함과 더불어 사는 것은 죽는 것만도 못합니다."

 드디어 나뭇가지에 목매고 스스로 분연히 나무에 부딪쳐서 목을 부러뜨려 죽었다.

「不來,吾且屠晝邑!」蠋曰:「忠臣不事二君,烈女不更二夫。【章:十二行本「夫」下有「齊王不用吾諫故退而耕於野」十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燕,因肩翻。蠋,音蜀。更,工衡翻。國破君亡,吾不能存,而又欲劫之以兵;吾與其不義而生,不若死!」遂經其頸於樹枝,自奮絕脰而死。經,絞也,縊也。頸,居郢翻,頭莖也。自奮,自奮起而還擲也。脰,大透翻,頸也。

 

 연의 군사가 이긴 기세를 타고 멀리까지 달려가니 제의 성은 모두 풍문만 듣고도 달아나고 궤멸되었다.

 燕師乘勝長驅,齊城皆望風奔潰。

 

 낙의는 연의 군사를 잘 가다듬고 침탈하는 것을 금지시키며, 제의 일민을 구하여 들어내서 이들을 예로 대하였다. 그 부렴을 너그러이 하고, 그 포악한 정령을 없애고 그들의 옛 정치제도를 닦자 제의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樂毅修整燕軍,禁止侵掠,求齊之逸民,顯而禮之,寬其賦斂,斂,力驗翻;後以義推。除其暴令,修其舊政,【章:孔本「政」作「制」。】齊民喜悅。

 

 이에 좌군을 파견하여 교동과 동래로 건너갔고, 전군은 태산을 돌아서 동쪽으로 가서 바다에 이르고 낭야를 노략질하였고, 우군은 황하·제수를 돌아서 아·견에 주둔하고 위의 군사와 연접하였고, 후군은 북해를 옆으로 끼고서 천승을 위무하였고, 중군은 임치를 점거하고 제의 도읍을 진압하였다.

 乃遣左軍渡膠東、東萊;膠東,漢爲王國。《水經》︰膠水出琅邪黔陬縣膠山,北過膠東、下密,又北過東萊當利縣入海。膠水之東爲膠東國,膠水之西爲膠西國。東萊,春秋萊子之國,漢置東萊郡。邪,音耶。前軍循泰山以東至海,略琅邪;琅邪,秦置爲郡,其地東至海,南距淮。右軍循河、濟,屯阿、鄄以連魏師;河濟註已見一卷安王十五年,然僅及濟水入河而溢爲滎一節。今據《水經》︰濟水自滎澤東流至濟陰乘氏縣西,分爲二瀆:其南瀆爲菏水,東南流至山陽湖陸縣,與泗水合。其北瀆東北流入于鉅野澤,東北過東郡壽良縣西界,北逕須昌、穀城至臨邑縣四瀆津口,與河水合。此蓋言齊地在河、濟之間者也。參考上濟西註可見。濟,子禮翻。阿,東阿;鄄,鄄城。鄄,音絹。乘,繩證翻。菏,音柯。後軍旁北海以撫千乘:旁,步浪翻。自臨淄東北至海,北海地也。漢置郡。乘,繩證翻。中軍據臨淄而鎭齊都。

 

 교외에서 환공·관중에게 제사를 지내고 현자의 마을을 표양하며, 왕촉의 묘에 봉토하여주었다. 제인으로 연의 식읍을 받은 20여 명의 군이 있었으며, 계에서 작위를 받은 사람이 100여 명이었다. 6개월 동안 제의 70여 개의 성을 점령하여서 모두 군현으로 삼았다.

 祀桓公、管仲於郊,表賢者之閭,封王蠋之墓。王蠋墓蓋在晝。齊人食邑於燕者二十餘君,封爲君也。有爵位於薊者百有餘人。薊,燕都也。班《志》,薊縣屬廣陽國。唐爲幽州治所;今爲燕京。《水經註》:薊城西北隅有薊丘,故名。燕,因肩翻。薊,音計。六月之間,下齊七十餘城,皆爲郡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