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堅白同異之辯/ 견백 동이의 변론

solpee 2019. 9. 16. 04:51

 

《周紀3 赧 17 (癸亥, 前298

 

 

 3. 조왕이 그의 동생을 책봉하여 평원군 이라 불렀다. 평원군은 선비를 좋아하여 식객이 일찍이 수천 명이었다. 공손룡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견백과 동이의 변론①을 잘하여서 평원군이 그를 객으로 하였다.

 3. 趙王封其弟【章:十二行本「弟」下有「勝」字;乙十一行本同。】爲平原君。班《志》,平原縣屬平原郡。勝封於東武城,號平原君,非封於平原也。東武城屬清河郡,杜佑曰:今貝州武城縣是也。蓋定襄有武城,時同屬趙,故此加「東」也。平原君好士,好,呼到翻。食客嘗【章:十二行本「嘗」作「常」;乙十一行本同。】數千人。有公孫龍者,善爲堅白同異之辯,《漢書‧藝文志》:《公孫龍子》十四篇。《註》云:卽爲堅白同異之辯者。成玄英《莊子疏》云:公孫龍著《守白論》,行於世。堅白,卽守白也,言堅執其說,如墨子墨守之義。自堅白之論起,辯者互執是非,不勝異說。公孫龍能合衆異而爲同,故謂之同異。《史記註》曰:《晉太康地記》云:汝南西平縣有龍淵,水可用淬刀劍,極堅利,故有堅白之論云:黃,所以爲堅也;白,所以爲利也。或曰:黃所以爲不堅,白所以爲不利。二說未知孰是。勝,音升。淬,取內翻。平原君客之。

 

 공천이 노에서부터 조에 와서 공손룡과 '노비는 세 개의 귀를 가졌다.(藏三耳)'를 가지고 논란을 하였는데, 공손룡은 아주 분석적이었다.

 孔穿自魯適趙,按《孔叢子》,孔穿,孔子之後。孫愐曰:孔姓,殷湯之後,本自帝嚳元?簡狄,吞乙卵生契,賜姓子氏;至湯,以其祖感乙而生,故名履,字天乙;後代以「子」加「乙」,始爲孔氏。至宋孔父遭華督之難,其子奔魯,故孔子生於魯。愐,彌兗翻。嚳,苦沃翻。華,戶化翻。難,乃旦翻。與公孫龍論臧三耳,三耳,如《莊子》所載雞三足之說。《莊子疏》謂數起於一,一與一爲二,二與一爲三,三名雖立,實無定體,故雞可以爲三足,則兩耳、三耳,其說亦猶是耳。一說︰耳主聽,兩耳,形也,兼聽而言,可得爲三。臧,臧獲之臧。臧獲,奴婢也。龍甚辯析。辯,別也;析,分也;言分別甚精微也。

 

 자고(공천) 응대도 하지 않고 조금 있다가 인사하고 나갔다가 다음날 다시 평원군을 알현하였다. 평원군이 말하였다.

 "어제 저녁에 공손룡의 말은 변론을 믿을 만하던데, 선생의 생각은 어떠하오?"

 子高弗應,俄而辭出,明日復見平原君。子高,孔穿字也。復,扶又翻。平原君曰:「疇昔公孫之言信辯也,毛晃曰:疇,曩也;昔,夕也;疇昔,曩夕也。先生以爲何如?」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거의 노예의 귀가 세 개로 하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렇기는 곤란합니다. 제가 바라건데 또 군께 묻게 해주신다면, 이제 노비의 귀가 세 개이기는 대단히 곤란하고 실제로도 아니며 두 개의 귀라고 말한다면 아주 쉽고도 실제로도 맞는데 평원군께서는 쉽고 옳은 쪽을 좇으실 것인지, 어렵고 틀린 것을 좇으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對曰:「然。幾能令臧三耳矣。毛晃曰:然,如也,是也,語決辭。幾,居依翻。令,使也,音力丁翻。雖然,實難!僕願得又問於君:今謂三耳甚難而實非也,謂兩耳甚易而實是也,不知君將從易而是者乎,其亦從難而非者乎?」

 

 평원군은 대응할 수 없었다. 다음날 공손룡에게 말하였다.

 "공은 다시 공자고와 어떤 일을 가지고 변론하지 마시오. 그 사람의 이치가 말쏨씨를 앞섰고, 공의 말쏨씨가 이치를 앞섰으니 끝내는 반드시 굴복하게 될 것이오."

 平原君無以應。明日,謂公孫龍曰:「公無復與孔子高辯事也!易,弋豉翻。其人理勝於辭;公辭勝於理,終必受詘。」

 

 추연이 조를 지나가게 되어서 평원군이 공손룡과 더불어 '흰 말은 말이 아니다는 설'을 토론하게 하였다. 추자가 말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무릇 변론이라는 것은 종류를 구별하여 서로 다치지 않게 하여야 하고, 다른 단서를 늘어놓으면서도 서로 문란하지 않아야 합니다. 뜻을 펴도록 하게하고 지적하는 것을 잘 통하게 하여 그 말하는 바를 밝히고, 사람들로 하여금 더불어 알 수 있게 하여 서로 미혹되는 것에 힘쓰지 않는 것입니다."

 鄒衍過趙,過,古禾翻。平原君使與公孫龍論白馬非馬之說。此亦《莊子》所謂狗非犬之說。《疏》云:狗之與犬,一實兩名:名實合,則此爲狗,彼爲犬;名實離,則狗異於犬。又《墨子》曰:狗,犬也。然[殺]狗非狗[殺]犬也。大指與白馬非馬之說同。鄒子曰:「不可。夫辯者,別殊類使不相害,序異端使不相亂。抒意通指,夫,音扶。別,彼列翻。《索隱》曰:抒,音墅,抒者舒也;又常恕翻。康曰:亦音舒。明其所謂,使人與知焉,不務相迷也。與,音如字;又讀曰預。

 

 그러므로 이긴 사람은 그가 지키려는 바를 잃지 않고, 이기지 못한 사람도 그가 구하려는 이치를 얻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니 그러므로 변론은 할 수 있습니다. 번잡한 글자로서 서로 빌어다 쓰게 하고, 말을 수식하여 서로 몰아치며 교묘한 비유를 해가지고 서로 옮겨서 사람을 끌어서 그 뜻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경우에 이른다면 이왁 ㅏㅌ은 것은 커다란 도리를 해치게 됩니다.

 故勝者不失其所守,不勝者得其所求。辯以求是,辯雖不勝而得審其是,所謂得其所求也。若是,故辯可爲也。及至煩文以相假,飾辭以相惇,惇,都昆翻,迫也,詆也,誰何也。巧譬以相移,引人使不得及其意,如此害大道。

 

 무릇 이리저리 말꼬리를 돌리면서 말을 다투면서 달려간 다음에야 겨우 말을 그치게 되니, 군자를 해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 추연은 하지 않습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공손룡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꿀렸다.

 夫繳紉【章:十二行本「紉」作「紛」;乙十一行本同;孔本同;熊校同。】爭言而競後息,《索隱》:繳,音糾;康吉弔切,非。言其言戾,紛然而爭,欲人先屈,務在人後方止也。不能無害君子,衍不爲也。」座皆稱善。言一座之人皆稱衍言爲善。公孫龍由是遂詘。《通鑑》書此,言小辯終不足破大道。絀,音敕律翻。《說文》曰:絀,貶下也。又讀與屈同。

 

①.堅白同異之辯: 공손룡은 名家로서 《守白論》을 지었다. 堅白이란 바로 白을 굳게 지킨다는 것이다. 견백의 논리가 일어나면서 부터 토론자들이 그 옳고 그른 한쪽을 선택하고 다른 설을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공손룡은 많은 다른 것을 합하여 같다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同異'라고 하였다.

 

 《晉太康地記》에 '여남 서평현에 용연이 있었는데, 그 물에 도검을 담그면 칼이 아주아주 날카로워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학파에는 惠施가 있었는데 그들은 '合同異(같고 다른 것을 합친다.)'라는 명제를 제기하였고, 이는 '하늘과 땅은 낮고, 산과 늪은 평평하다.'는 명제를 가지고 이를 논증하려 하였다.

 이에 대하여 공손룡학파는 '흰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논증을 진행하였다. 惠施學派는 사물 간의 동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 차별성을 강조하였으며, 공손룡학파는 사물 간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동일성을 말살하는 논리를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