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貧賤者驕人耳/빈천한 사람은 교만하다.

solpee 2019. 9. 8. 04:02

 

《周紀1 威烈王 23 (戊寅, 前403

 

 

 3.세 집에서 지씨의 전지를 나누었다. 조양자는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여 술잔으로 삼았다.

 3.三家分智氏之田。趙襄子漆智伯之頭,以爲飲器。《說文》︰桼,木汁可以䰍物;下從水,象桼如水滴而下也。《漢書‧張騫傳》︰匈奴破月氏王,以其頭爲飲器。韋昭《註》曰︰飲器,椑榼也。晉灼曰︰飲器,虎子屬也。或曰,飲酒之器也。師古曰︰匈奴嘗以月氏王頭與漢使歃血盟,然則飲酒之器是也。韋云椑榼,晉云虎子,皆非也。椑榼,卽今之偏榼,所以盛酒耳,非用飲者也。虎子,褻器,所以溲便者。椑,音鼙。榼,克合翻。氏,音支。使,疏吏翻。歃,色甲翻。盛,時征翻。褻,息列翻。溲,疏鳩翻。便,毘連翻。

 

 지백의 가신 예양이 이 때문에 원수를 갚고자 하여 마침내 거짓으로 형인(형벌을 받은 사람)이 되어 비수를 품고 조양자의 궁에 있는 변소로 들어갔다. 조양자가 변소에 가려 하다가 예감이 있어 이를 수색케 하여 예양을 붙잡았다.

 智伯之臣豫讓欲爲之報仇,豫,姓也。讓,名也。戰國之時又有豫且,不知其同時否也。爲,音于僞翻;下同。乃詐爲刑人,挾匕首,入襄子宮中塗廁。挾,持也。劉向曰︰匕首,短劍。《鹽鐵論》曰︰匕首長尺八寸;頭類匕,故云匕首。匕,音比。廁,初吏翻,圊也。長,直亮翻。襄子如廁心動,索之,獲豫讓。索,山客翻。

 

 주위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조양자가 말하였다.

 "지백은 죽었고 후사도 없지만, 이 사람이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니 정말로 의로운 선비인데 내가 삼가면서 그를 피할 뿐이다."

 마침내 그를 놓아주었다.

 左右欲殺之,襄子曰︰「智伯死無後,而此人欲爲報仇,眞義士也,吾謹避之耳。」乃舍之。舍,讀曰捨。

 

 예양은 또다시 몸에 칠을 하여 부스럼 덩어리가 되고, 숯불을 삼켜서 스스로 벙어리가 되었다. 시장에서 걸식을 하며 다녔는데, 그의 처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지나다가 그의 친구를 보았는데, 그의 친구는 그를 알아보고 그를 위하여 울면서 말하였다.

 豫讓又漆身爲癩,吞炭爲啞。癩,落蓋翻,惡疾也。啞,倚下翻,瘖也。行乞於市,神農日中爲市,致天下之民,聚天下之貨,交易而退,此立市之始也。鄭氏《周禮註》曰︰市,雜聚之處。其妻不識也。行見其友,其友識之,爲之泣曰︰

 

 "그대의 재주를 가지고 만약에 조맹(조양자를 낮추어 한 말)의 신하가 되어 섬긴다면 반드시 가까이함을 받을 것이다. 그대는 마침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돌아보면 쉽지 읺겠는가? 어찌하여 이에 스스로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원수를 갚겠다고 하지만, 그 역시 어렵지 아니하겠는가?"

「以子之才,臣事趙孟,必得近幸,自春秋之時,趙宣子謂之宣孟,趙文子謂之趙孟,其後遂襲而呼爲趙孟。孟,長也。子乃爲所欲爲,顧不易邪?易,以豉翻。何乃自苦如此?求以報仇,不亦難乎!」

 

 예양이 말하였다.

 "이미 내몸을 바쳐서 신하가 되고, 다시 이를 죽이려 함을 찾는다면, 이는 두 마음인 것이다. 무릇 내가 하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하려고 하는 까닭은 장차 천하의 후세에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을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다."

 豫讓曰︰【章︰十二行本「曰」下有「不可」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旣已委質爲臣,《經典釋文》曰︰質,職日翻。委質,委其體以事君也。《後漢書註》︰委質,屈膝。而又求殺之,是二心也。凡吾所爲者,極難耳。然所以爲此者,將以愧天下後世之爲人臣懷二心者也。」

 

 조양자가 나가는데, 예양이 다리 아래에 엎드려 숨었다. 조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말이 놀라 뚜니 수색하여 예양을 잡아냈고, 마침내 그를 죽였다.

 襄子出,豫讓伏於橋下。襄子至橋,馬驚;索之,得豫讓,遂殺之。自智宣子立瑤,至豫讓報仇,其事皆在威烈王二十三年之前,故先以「初」字發之。溫公之意,蓋以天下莫大於名分,觀命三大夫爲諸侯之事,則知周之所以益微,七雄之所以益盛;莫重於宗社,觀智、趙立後之事,則知智宣子之所以失,趙簡子之所以得;君臣之義當守節伏死而已,觀豫讓之事,則知策名委質者必有霣而無貳。其爲後世之鑑,豈不昭昭也哉!

 …중략…

  襄子爲伯魯之不立也,有子五人,不肯置後。封伯魯之子於代,代國在夏屋句注之北,趙襄子滅之。班《志》有代郡代縣。爲,于僞翻。夏,戶雅翻。曰代成君,早卒;成,諡也。《諡法》︰安民立政曰成。立其子浣爲趙氏後。浣,戶管翻。襄子卒,弟桓子逐浣而自立;《史記‧六國表》,威烈王元年,襄子卒;二年,趙桓子元年,卒;明年,國人立獻侯浣。「浣」,《索隱》作「晚」。卒,子恤翻;下同。一年卒。趙氏之人曰︰「桓子立非襄主意。」乃共殺其子,復迎浣而立之,是爲獻子。復,扶又翻;又音如字。獻子,卽獻侯。《六國表》︰威烈王三年,獻侯之元年。蓋分晉之後,三晉僭侯久矣。《諡法》︰知質有聖曰獻。獻子生籍,是爲烈侯。《諡法》︰有功安民曰烈;秉德尊業曰烈。

 

 위사라는 사람은 위환자의 손자인데, 이 사람이 지백을 쳐부순 위문후이다. 한강자는 아들 한무자를 낳았고, 한무자는 다시 한건을 낳았으니, 이 사람이 한경후이다.

 위문후는 복자하와 전자방을 스승으로 삼았다. 단간목의 여막을 지날 때면 반드시 의식을 차렸다. 사방의 현명한 인사들이 많이 그에게 귀부하였다.

 魏斯者,魏桓子之孫也,是爲文侯。《諡法》︰學勤好問曰文;慈惠安民曰文。韓康子生武子;武子生虔,是爲景侯。《諡法》:克定禍亂曰武;布義行剛曰景。《六國表》︰威烈王二年,魏文侯斯元年;十八年,韓景侯虔元年。蓋其在國僭爵已久,不敢以通王室;威烈王遂因而命之,識者重爲周惜。《通鑑》於此序三家之世也。

 魏文侯以卜子夏、田子方爲師。卜,以官爲氏。田本出於陳,陳敬仲以陳爲田氏。徐廣曰︰始食采地,由是改姓田氏。《索隱》曰︰陳、田二聲相近,遂爲田氏。夏,戶雅翻。每過段干木之廬必式。過,工禾翻。唐人志氏族曰︰李耳,字伯陽,一字耼;其後有李宗,魏封於段,爲干木大夫,是以段爲氏也。余按︰《通鑑》赧王四十二年,魏有段干子,則段干,複姓也。《書》︰武王式商容閭。《註》云︰式其閭巷,以禮賢。《記‧曲禮》︰國君撫式,士下之。《註》云︰升車必正立,據式小俛,崇敬也。師古曰︰式,車前橫木。古者立乘;凡言式車者,謂俛首撫式,以禮敬人。孔穎達曰︰式,謂俯下頭也。古者車箱長四尺四寸而三分,前一後二,橫一木,下去車牀三尺三寸,謂之爲式;又於式上二尺二寸橫一木,謂之較,較去車牀凡五尺五寸。於時立乘,若平常則憑較,故《詩》云「倚重較兮」是也。若應爲敬,則落隱下式,而頭得俯俛,故《記》云「式視馬尾」是也。較,訖岳翻。四方賢士多歸之。

 

위문후가 여러 신하들과 술을 마시며 즐기는데, 하늘에서 비가 내리자 말을 타고 장차 들에 나가도록 명령하였다. 좌우 사람들이 말하였다.

 "오늘은 술을 마시고 즐기고 있으며 하늘에서는 또 비도 내리는데 주군께서는 장차 어디로 가시렵니까?"

 위문후가 말하였다.

 "내가 虞人(산직이)과 사냥을 하기로 약속하였으니, 비록 즐기고는 있지만 어찌 한 번 만나기로 한 약속을 없이할 수 있겠소."

 마침내 가서 몸소 스스로 이를 파기하였다.

 文侯與羣臣飲酒,樂,而天雨,命駕將適野。左右曰︰「今日飲酒樂,天又雨,君將安之?」文侯曰︰「吾與虞人期獵,雖樂,豈可無一會期哉?」乃往,身自罷之。《周禮》有山虞、澤虞,以掌山澤。《註》云︰虞,度也,度知山林之大小及其所生。身自罷之者,身往告之,以雨而罷獵也。樂,音洛。

 …중략…

 韓借師於魏以伐趙,文侯曰︰「寡人與趙,兄弟也,不敢聞命。」趙借師於魏以伐韓,文侯應之亦然。二國皆怒而去。已而知文侯以講於己也,講,和也。皆朝于魏。朝,直遙翻。魏於是始大於三晉,諸侯莫能與之爭。

 使樂羊伐中山,克之;樂,姓也。本自有殷微子之後。宋戴公四世孫樂呂爲大司寇。中山,春秋之鮮虞也,漢爲中山郡。宋白曰︰唐定州,春秋白狄鮮虞之地。《隋圖經》曰︰中山城在今唐昌縣東北三十一里,中山故城是也。杜佑曰︰城中有山,故曰中山。以封其子擊。文侯問於羣臣曰︰「我何如主?」皆曰︰「仁君。」任座曰︰「君得中山,不以封君之弟而以封君之子,何謂仁君!」文侯怒,任座趨出。任座亦習見當時鄰國之事而爲是言耳。任,音壬。「座」一作「痤」,音才戈翻。次問翟璜,翟,姓也,音直格翻,又音狄。《姓譜》︰翟爲晉所滅,子孫以國爲氏。今人多讀從上音。璜,戶光翻。對曰︰「仁君。」文侯曰︰「何以知之?」對曰︰「臣聞君仁則臣直。嚮者任座之言直,臣是以知之。」文侯悅,使翟璜召任座而反之,親下堂迎之,以爲上客。

 

 위문후가 전자방과 술을 마시다가 위문후가 말하였다.

 "종소리가 고르지가 않은가? 왼쪽이 높군."

 전자방이 웃었다. 위문후가 말하였다.

 "왜 웃소?"

 전자방이 말하였다.

 "신이 듣기로는, 주군이란 악관을 뽑는데는 밝고, 음악 소리에는 밝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주군께서 음을 살피는 일을 하시니 신은 그것을 관장하는 악관을 뽑는 일에는 귀머거리가 될까 걱정이 됩니다."

 위문후가 말하였다.

 "훌륭하오."

 文侯與田子方飲,文侯曰︰「鍾聲不比乎?比,音毗。不比,言不和也。左高。」此蓋編鍾之懸,左高,故其聲不和。田子方笑。文侯曰︰「何笑?」子方曰︰「臣聞之,君明樂官,不明樂音。今君審於音,臣恐其聾於官也。」明樂官,知其才不才;明樂音,知其和不和。五聲合和,然後成音。《詩‧大序》曰︰聲成文,謂之音。文侯曰︰「善。」

 

 자격(위문후의 아들 위격을 자를 붙여 존칭으로 사용)이 길을 가다가 전자방을 만나자 수레에서 내려 엎드려서 배알하였다. 전자방은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자격이 노하여 전자방에게 말하였다.

 "부귀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교만합니까? 빈천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교만합니까?"

 子擊出,遭田子方於道,下車伏謁。《古文[史]考》曰︰黃帝作車,引重致遠;少昊氏加牛;禹時奚仲加馬。《釋名》曰︰車,居也。韋昭曰︰古唯尺遮翻,自漢以來,始有「居」音。蕭子顯曰︰三皇氏乘祇車出谷口,車之始也。祇,翹移翻。子方不爲禮。子擊怒,謂子方曰︰「富貴者驕人乎?貧賤者驕人乎?」

 

 전자방이 말하였다.

 "역시 빈천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교만합니다. 부귀한 사람이 어찌 감히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겠습니까? 나라의 주군이 교만하면 그 나라를 잃을 것이고, 대부가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면 그 집안을 잃을 것입니다. 나라를 잃은 사람에게 나라를 가지고 기다려 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하였고, 그 집안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집안을 가지고 기다려 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다. 대체로 선비란 빈천한 사람이니 말을 하여 채용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고 떠나버릴 뿐이니 선비가 어디엘 간들 빈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격이 마침내 사과하였다.

 子方曰︰「亦貧賤者驕人耳,富貴者安敢驕人!國君而驕人則失其國,大夫而驕人則失其家。失其國者未聞有以國待之者也,失其家者未聞有以家待之者也。夫士貧賤者,言不用,行不合,則納履而去耳,安往而不得貧賤哉!」子擊乃謝之。夫,音扶。行,下孟翻。

 

 위문후가 이극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서 일찍이 '집안이 가난하면 양처를 생각하게 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양상을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지금 내가 둘 바는 위성이 아니면 적황일 것이니, 이 두 사람은 어떠하오?"

 文侯謂李克曰︰「先生嘗有言曰︰『家貧思良妻,國亂思良相。』今所置非成則璜,二子何如?」李氏出自顓頊曾孫皋陶,爲堯大理,以官命族爲理氏。商紂時,裔孫利貞逃難,食木子得全,改爲李氏。置,言置相也。相,息亮翻。難,乃旦翻。

 

 대답하였다.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의 일에 꾀를 내지 않고, 먼 사람은 가까운 사람의 일에 꾀를 내지 않습니다. 신은 대궐 밖에 있으니 감히 명령하신 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위문후가 말하였다.

 "선생은 일을 만났으니 사양하지 마시오."

 對曰︰「卑不謀尊,疏不謀戚。臣在闕門之外,不敢當命。」在闕門之外,謂疏遠也。文侯曰︰「先生臨事勿讓!」

 

 이극이 말하였다.

 "주군께서 살펴보지 않은 연고입니다. 살면서 그가 잘했던 것을 보고, 부유하였을 때 그가 주었던 것을 보시고, 현달하였을 때 그가 천거하였던 것을 보고, 어려울 때 그가 하지 않았던 것을 보고, 가난했을 때 취하지 않았던 것을 보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면 그것을 충분히 확정할 수 있을 것인데, 왜 저 이극의 말을 기다리십니까?"

 위문후가 말하였다.

 "선생이 숙소로 돌아가면 나의 재상감은 확정될 것이오."

 克曰︰「君弗察故也。居視其所親,富視其所與,達視其所舉,窮視其所不爲,貧視其所不取,五者足以定之矣,何待克哉!」文侯曰︰「先生就舍,吾之相定矣。」相,息亮翻。

 

 이극이 밖으로 나가서 적황을 만났다. 적황이 말하였다.

 "이제 듣건데 주군이 선생을 불러서 재상감을 점쳤다 하니 과연 누가 되겠소?"

 이극이 말하였다.

 "위성입니다."

 적황이 분하여 낯을 붉히면서 말하였다.

 李克出,見翟璜。翟璜曰︰「今者聞君召先生而卜相,果誰爲之?」克曰︰「魏成。」翟璜忿然作色曰︰

 

 "서하를 지키는 오기는 내가 올려주었고, 주군이 업으로 인하여 걱정하자 내가 서문표를 올려주었소. 주군이 중산을 정벌하려 하자 내가 낙양을 올렸습니다. 중산이 뽑혀 졌으나 이를 지킬 수 없게 되자 나는 선생을 올렷소. 주군의 아들에게 선생이 없자 나는 굴후부를 올렸소. 귀와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것을 가지고 말한다 하더라도 신이 어찌하여 위성에게 지겠소?"

「西河守吳起,臣所進也。班《志》:魏地,其界自高陵以東,盡河東、河內。高陵縣,漢屬馮翊,其地在河西,所謂「西河之外」者也。魏初使吳起守之,秦兵不敢東向。至惠王時,秦使衞鞅擊虜其將公子卬,遂獻西河之外於秦。吳,以國爲姓。相,息亮翻。守,式又翻。君內以鄴爲憂,臣進西門豹。班《志》,鄴縣屬魏郡。西門豹爲鄴令,鑿渠以利民。王符《潛夫論‧姓氏篇》曰︰如有東門、西郭、南宮、北郭,皆因居以爲姓。西門蓋亦此類。鄴,魚怯翻。君欲伐中山,臣進樂羊。中山已拔,無使守之,臣進先生。君之子無傅,臣進屈侯鮒。傅者,傅之以德義,因以爲官名。傅,芳遇翻。屈,九勿翻,姓也。余按屈,晉地,時屬魏;鮒蓋魏封屈侯也。鮒,音符遇翻。以耳目之所睹記,臣何負於魏成!」不勝爲負。

 

 이극이 말하였다.

 "그대가 나 이극을 그대의 주군에게 말한 것이 어찌 장차 같은 패거리로서 높은 관직을 구한 것이었겠소? 주군께서 난 이극에게 재상감을 물으니 나의 대답은 이러이러하였소. 임금이 반드시 위성을 재상으로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앗던 까닭은 위성은 그의 녹봉 천종을 먹고 살지만 열에 아홉은 바깥의 일에, 열에 하나는 집안에 들여놓고 잇으니, 그리하여 동쪽으로는 복자하·전자방·단간목을 찾아냈소. 이 세 사람은 주군이 모두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대가 올린 다섯 명은 주군이 모두 신하로 여기고 있소. 그대가 어찌 위성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이오."

 적황은 뒷걸름질치고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나 적황은 비루한 사람이어서 실수하여 대답하엿으니 바라건데 끝까지 제자로 삼아주시오."

 李克曰︰「子【章︰十二行本「子」下有「之」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言克於子之君者,豈將比周以求大官哉?比,毗至翻。阿黨爲比。君問相於克,克之對如是。李克自叙其答魏文侯之言也。所以知君之必相魏成者,魏成食祿千鍾,孔穎達曰︰祿者,穀也。故鄭註《司祿》云︰祿也言榖,年榖豐然後制祿。《授神契》云︰祿者,錄也。《白虎通》曰︰上以收錄接下,下以名錄謹以事上是也。六斛四斗爲一鍾。什九在外,什一在內;是以東得卜子夏、田子方、段干木。夏,戶雅翻。此三人者,君皆師之;子所進五人者,君皆臣之。子惡得與魏成比也!」惡,讀曰烏,何也。翟璜逡巡再拜曰︰「璜,鄙人也,失對,願卒爲子弟!」逡,七倫翻。逡巡,却退貌。卒,子恤翻,終也。孔穎達曰︰先生,師也。謂師爲先生者,言彼先己而生,其德多厚也。自稱爲弟子者,言己自處如弟子,則尊其師如父兄也。

 

 오기는 위나라 사람인데 노에서 벼슬을 하였다. 재인들이 노를 치자 노인들이 장수로 삼고자 하였으나, 오기가 제 출신 여자를 처로 삼았으므로 노 사람들이 그를 의심하였고, 오기는 그의 처를 죽이고 장수가 도기를 요구하여 재의 군사를 대파하였다. 어떤 사람이 노후에게 그를 참소하였다.

 "오기는 처음에 증삼을 섬겼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분상을 아니하자 증삼이 그를 끊어버렸고, 이번에 또 처를 죽이고 주군에게 장수가 되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오기는 잔인하고 야박하게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또 우리 노같이 작은 나라로서 적을 이겼다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니 제후들이 노를 치려고 도모할 것입니다."

 吳起者,衞人,仕於魯。齊人伐魯,魯人欲以爲將,起取齊女爲妻,將,卽亮翻;下同。取,讀曰娶。孔穎達曰︰妻之爲言齊也;以禮見問,得與夫敵體也。魯人疑之,起殺妻以求將,大破齊師。或譖之魯侯曰︰「起始事曾參,《世本》曰︰曾姓出自鄫國。陸德明曰︰參,所金翻,一音七南翻。母死不奔喪,曾參絕之;今又殺妻以求爲君將。起,殘忍薄行人也!行,下孟翻。且以魯國區區而有勝敵之名,則諸侯圖魯矣。」

 

 오기는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였고, 위문후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가서 그에게 귀부하였다. 위문후가 이극에게 물엇더니, 이극이 말하였다.

 "오기는 탐욕스럽고 색을 좋아하나, 그러나 용병에서는 사마양저도 그를 못 당할 것입니다."

 이에 위문후는 오기를 장수로 삼아서 진을 공격하여 다섯 개의 성을 탈취하엿다.

 起恐得罪,聞魏文侯賢,乃往歸之。文侯問諸李克,李克曰︰「起貪而好色;好,呼到翻。然用兵,司馬穰苴弗能過也。」司馬,官名。穰苴本齊田姓,仕齊爲是官,故以稱之;齊景公之賢將也。穰,如羊翻。苴,子余翻。於是文侯以爲將,擊秦,拔五城。

 

 오기가 장수가 되어 사졸 가운데 가장 아랫사람과 같이 입고 먹으며 잠자면서 잠자리를 펴지 아니하고 다닐 때도 말을 타지 아니하고 또 친히 양식도 싸가지고 다니면서 사졸과 노고를 같이 하였다. 졸병 가운데 종기가 난 사람이 있었는데 오기가 그것을 빨았다. 졸병의 어머니가 이를 듣고 통곡하였다.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起之爲將,與士卒最下者同衣食,臥不設席,行不騎乘,騎馬爲騎,乘車爲乘,言起與士卒同其勞苦,行不用車馬也。親裹贏糧,師古曰︰贏,擔也。此言起親裹士卒所齎擔之糧。贏,怡成翻。與士卒分勞苦。卒有病疽者,起爲吮之。疽,七余翻,癰也。吮,徐兗翻;《說文》︰嗽也,康所角切。卒母聞而哭之。人曰︰

 

 "아들이 졸병이지만 장군이 스스로 그의 종기를 빨아주었는데 어찌하여 곡을 하시오?"

 어머니는 말하였다.

 "그렇지 않소. 옛날에 오공이 그의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주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뒤돌아서지 않다가 마침내 적에게 죽었습니다. 오공이 이제 그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어 첩은 그가 죽는 곳을 모르게 되었으니, 내가 이를 통곡하는 것이오."

「子,卒也,而將軍自吮其疽,何哭爲?」母曰︰「非然也。往年吳公吮其父疽,【章︰十二行本無「疽」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其父戰不旋踵,遂死於敵。吳公今又吮其子,妾不知其死所矣,是以哭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