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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영관성수주 재동태수가 병들자 부인 劉씨가 지휘하여 성을 지켰다.

solpee 2019. 8. 30. 08:36

 

《梁紀4 武帝 天監 15 (丙申, 516

 

 

 9. 위의 원법승이 그 아들인 원경륭을 파견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장제(사천 면양태수)를 막으니, 장제가 가맹에서 더불어 싸워서 그들을 대파하고, 10여개 성을 도륙하고 마침내 무흥을 포위하였다.

 9.魏元法僧遣其子景隆將兵拒張齊,齊與戰於葭萌,大破之,屠十餘者,遂圍武興。

 

 원법승은 농성하며 스스로 지키고 있었으나, 경내에서 모두 반란을 일으키자 원법승은 샛길로 사자를 보내어 위에 위급한 상황을 보고하였다. 위는 역마로 회남에 있는 진남장군부의 군사인 부수안을 불러서 익주자사·정서도독으로 삼고, 보병과 기병 3천 명을 거느리고 그곳으로 가도록 하였다.

 法僧嬰城自守,境內皆叛,法僧遣使間道告急於魏。魏驛召鎮南軍司傅豎眼於淮南,以為益州刺史、西征都督,將步騎三千以赴之。

 

 부수안은 경내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돌면서 싸우며 3일 만에 200여리를 행군하였고, 9번 조우하여 모두 승리하였다. 5월에 부수안은 양주자사 임태홍을 격파하였다.

 豎眼入境,轉戰三日,行二百餘里,九遇皆捷。五月,豎眼擊殺梁州刺史任太洪。

 

 민·요들은 부수안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는데, 길에서 환영하여 절하는 자들이 줄을 이었다. 장제는 후퇴하여 백수를 지켰고, 부수안이 주(무흥)로 들어간 후, 백수의 동쪽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였다.

 民、獠聞豎眼至,皆喜,迎拜於路者相繼。張齊退保白水,豎眼入州,白水以東民皆安業。

 

 위는 재동태수 구금룡을 영관성수주로 하였는데, 양의 군대가 도착하였을 때에는 구금룡이 병이 들어서 지휘를 감당하지 못하자 그 처인 유씨가 성 안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독려하면서 성에 올라가서 막아 싸운지 100여 일에 사졸 중에서 죽거나 부상당한 자가 반 이상 되었다.

 魏梓潼太守苟金龍領關城戍主,梁兵至,金龍疾病,不堪部分,其妻劉氏帥厲城民,乘城拒戰,百有餘日,士卒死傷過半。

 

 수부인 고경이 반란을 도모하였지만, 유씨가 고경과 그 일당 수천 명의 목을 베었고, 나머지 부장들과 사졸들은 옷을 나누어 입고 음식을 줄여 먹으면서,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반드시 함께 하였기 때문에, 그녀를 두려워하며 가슴에 품지 않은 자가 없었다.

 戍副高景謀叛,劉氏斬景及其黨與數千人,自餘將士,分衣減食,勞逸必同,莫不畏而懷之。

 

 우물이 성 박에 있어서 양의 군대가 점거하였는데, 마침 하늘에서 큰비가 내리자, 유씨는 관리와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베, 비단 그리고 의복을 꺼내어 성에 걸어놓았다가 짜서 물을 얻도록 명령하고, 성 안에 있는 잡다한 물품이라도 있으면 모두 물을 채워 놓았다.

 井在城外,為梁兵所據。會天大雨,劉氏命出公私布絹及衣服懸之,絞而取水,城中所有雜物悉儲之。

 

 부수안이 도착하자, 양의 군대는 마침내 후퇴하였고, 위인들은 그녀의 아들을 평창군자(자작)로 책봉하였다.

 豎眼至,梁兵乃退,魏人封其子為平昌縣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