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射能中針孔/호태후는 활을 쏘면 바늘구멍을 맞출 수 있었다.

solpee 2019. 8. 29. 19:23

 

《梁紀4 武帝 天監 14 (乙未, 515

 

 

 17.위의 강양왕 원계는 탁발희(위 제1대호아제 도무제의 아들)의 증손자인데, 이전에 청주 자사가 되어서 양인을 노비로 삼는 사건에 연루되어 작위를 빼앗겼다. 원계의 아들 원차가 호태후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이자, 임지일(22)에 조서를 내려서 원계에게 본래의 봉작을 회복시켜주도록 하고, 원차는 통직산기시랑으로 삼고, 원차의 처는 신평군군으로 책봉하고 이어서 여시중을 제수하였다.

 17.魏江陽王繼,熙之曾孫也,先為青州刺史,坐以良人為婢奪爵。繼子叉娶胡太后妹,壬辰,詔復繼本封,以叉為通直散騎侍郎,叉妻為新平郡君,仍拜女侍中。

 

 여러 신하들이 주문을 올려서 태후가 임조칭제할 것을 요청하니, 9월 을미일(5)에 영태후가 처음으로 임조청정하였지만, 여전히 '칭령'이라 부르며 일을 시행하였고, 여러 신하들이 편지를 올릴 때에도 '전하'라고 불렀다.

 群臣奏請皇太后臨朝稱制,九月,乙未,靈太后始臨朝聽政,猶稱令以行事,群臣上書稱殿下。

 

 태후는 총명하였으며, 자못 책읽기와 글짓기를 좋아하고, 활을 쏘면 바늘의 구멍을 맞출 수 있었으며, 정사는 모두 직접 손으로 써서 스스로 결정하였다. 호국진에게 시중을 더해주고, 안정공에 책봉하였다.

 太后聰悟,頗好讀書屬文,射能中針孔,政事皆手筆自決。加胡國珍侍中,封安定公。

 

 곽조 등이 죽으면서부터 조령을 내려 살리거나 죽이는 것은 모두 우충에게서 나왔으니, 왕과 공들도 그를 두려워하여 발을 포개고 숨을 죽였다.

 태후가 이미 친히 친정을 하자, 마침내 우충을 시중·영군장군·승훈위위에서 해임하고, 의동삼사·상서령에 그치도록 하였다.

 그 후 10여 일이 지나서 태후는 승훈궁으로 문하성의 시관들을 오도록 하여 물었다.

 自郭祚等死,詔令生殺皆出於忠,王公畏之,重足脅息。

 太后既親政,乃解忠侍中、領軍、崇訓衛尉,止為儀同三司、尚書令。

 後旬餘,太后引門下侍官於崇訓宮,問曰:

 

 "우충이 단규(재상)오 있었는데 명성과 명망이 어떠한가?"

 모두 말하였다.

 "그 임무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침내 우충을 내보내어 도독기·정·영삼주제군사·정북대장군·기주자사로 삼고, 사공 원징을 영상서령으로 하였다.

「忠在端揆,聲望何如?」鹹曰:「不稱闕任。」乃出忠為都督冀、定、瀛三州諸軍事、征北大將軍、冀州刺史;以司空澄領尚書令。

 

 원징이 주문을 올렸다.

 "안정공을 의당 황궁에 출입하도록 하여 큰 업무에 참가시켜 자문하도록 하십시오."

 조서를 내려서 그것을 따랐다.

 澄奏:「安定公宜出入禁中,參咨大務。」詔從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