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封禪에 대하여

solpee 2019. 8. 26. 05:34

 

《梁紀3 武帝 天監 8年 (己, 509

 

 

 1.신사일(3)에 황상이 남교에서 제사 지내고 크게 사면 하였다.당시 회계산에서 봉하고, 국산에서는 선을 하여야 한다고 요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황상이 여러 유학자에게 봉선의식①에 관하여 기초하도록 하고, 그곳으로 가려고 하였다.

 1.春,正月,辛巳,上祀南郊,大赦。時有請封會稽、禪國山者,上命諸儒草封禪儀,欲行之。

 

 허무가 건의하고 생각하였다.

 "순 임금은 대종(岱宗:泰山)에서 나무를 때어 제사 지냈는데, 이것은 순수입니다. 그런데 정현은 《효경 구명결》을 인용하여 '태산에서 봉하여 섶을 불사르면서 업적을 알리고, 양보(梁甫 또는 梁父:태산아래 작은 산)에서 선하여 기호를 돌에 새겨놓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魏書》의 왜곡된 논설이고 바른 경서의 대의가 아닙니다.

 許懋建議,以為:「舜柴岱宗,是為巡狩。而鄭引《孝經鉤命決》云:『封於太山,考績柴燎;禪乎梁甫,刻石紀號。』此緯書之曲說,非正經之通義也。

 

 순임금은 5년마다 한 번씩 순수하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에 4악(岱·衡·華·恒)을 두루 돌아다니셨는데 만약 봉선을 거행하셨다면 어찌 그리 자주 하였겠습니까? 또 관이오 같은 사람이 말한 바는 72명의 임금이라는 것은 수인(한단고기에 마고,수인,한인,한웅,단군으로 이어진다.) 이전이었고 세상은 질박하고 백성들도 순박한데, 어찌 니금으로 장식하고 옥판에 글을 새길 수 있었겠습니까?

 舜五載一巡狩,春夏秋冬周遍四岳,若為封禪,何其數也!又如管夷吾所說七十二君,燧人之前,世質民淳,安得泥金檢玉!

 

 노끈으로 매듭을 만들어서 다스렸는데 어찌 글자를 새겨서 하늘에 성공을 보고할 수 있었겠습니까? 관이오는 또 말합니다. '오직 천명을 받은 임금이고 난 뒤에 봉선을 거행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의 성왕은 천명을 받은 임금이 아닌데, 어찌하여 태산에서 봉하는 제사를 지냈고, 사수산에서 선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말하였습니까!

 結繩而治,安得鐫文告成!夷吾又云:『惟受命之君然後得封禪。』周成王非受命之君,雲何得封太山、禪社首!

 

 신농이 바로 염제인데도 관이오는 나누어서 두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잘못됨이 역시 심합니다. 만약 성스러운 군주라면 반드시 봉선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만약에 평범한 군주라면 봉선을 한다 하여도 감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神農即炎帝也,而夷吾分為二人,妄亦甚矣!若聖主,不須封禪;若凡主,不應封禪。

 

 대개 제 환공이 이러한 행사를 거행하려고 하자, 관이오는 그가 거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러므로 기괴한 동물을 예로 들어서 그의 뜻을 굽히게 하였습니다.

 蓋齊桓公欲行此事,夷吾知其不可,故舉怪物以屈之。

 

 진 시황은 일찍이 태산에서 봉사했고, 손호 또한 일찍이 겸사공인 동조를 파견하여 양선에 도착하여 국산에서 본선하도록 하였는데, 모두 덕을 융성하게 하는 행사가 아니기에 모범으로 삼기에 족하지 않습니다.

 秦始皇嘗封太山,孫皓嘗遣兼司空董朝至陽羨封禪國山,皆非盛德之事,不足為法。

 

 그러하니, 봉선의 의례는 모두 길거리에서 떠도는 말이고 그 원래의 글 뜻을 잃었으니, 주군이 위에서 명성을 좋아하게 되므로 아래에서 신하가 군주의 뜻에 아첨하는 것입니다.

 然則封禪之禮,皆道聽所說,失其本文,由主好名於上,而臣阿旨於下也。

 

 옛날에 하늘과 따에 제사 지낼 때에 예의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고 정성을 다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이러한 것들을 다하여 준비하였지 봉선에 건하여서는 감히 보고할 바가 아닙니다."

 古者祀天祭地,禮有常數,誠敬之道,盡此而備。至於封禪,非所敢聞。」

 

 황상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이를 계기로 허무의 의견을 더욱 확장하여 제지라고 하면서 요청한 자들에게 회답하니, 이로부터 마침내 그치게 되었다.

 上嘉納之,因推演懋議,稱制旨以答請者,由是遂止。

 

 

①.封禪儀式: 封은 태산 꼭대기에 올라가 흙을 북돋우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禪은 산기슭을 깎고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이며, 封禪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황제가 태산에 가서 하늘과 따에 제사 지내는 의식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