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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황후가 환관과 사사롭게 통정하였다.

solpee 2019. 8. 19. 03:51

 

《齊紀7 明帝 永元 元年 (己卯, 499

 

 

 8. 위 황제가 연속해서 몇(4) 년을 외지에 있었는데, 풍후가 환관 고보살과 사사롭게 통정하였다. 황제가 현호에서 병이 위독하게 되자 풍후는 더욱 방자하여 거리낄 것이 없어졌고, 중상시 쌍몽 등은 그를 위하여 심복이 되었다.

 8.二月,魏主連年在外,魏主自明帝建武元年南伐,至是首尾四年。馮后私於宦者高菩薩。菩,蓬晡翻。薩,桑葛翻。及帝在懸瓠病篤,事見上卷上年。后益肆意無所憚,中常侍雙蒙等爲之心腹。雙,姓;蒙,名。《姓譜》︰顓帝後封於雙蒙城,其後以爲氏。

 

 팽성공주가 송왕 유창의 며느리가 되었는데, 과부로 지냈다. 풍후가 그의 동복의 동생인 북평공 풍숙을 위하여 혼인을 요구하니, 황제가 그것을 허락하였는데, 공주는 원하지 않자 풍후는 그것을 강제하였다.

 彭城公主爲宋王劉昶子婦,寡居。昶,丑兩翻。后爲其母弟北平馮夙求婚,帝許之;公主不願,后強之。后爲,于僞翻。強,其兩翻。

 

 공주가 은밀히 가동들과 더불어 비바람을 무릎쓰고 현호에 도착하여 황제에게 호소하고, 또한 풍후가 행한 모든 것을 모두 말하였다. 황제가 의심하였으나 그것을 숨겼다. 풍후가 그 소식을 듣고 비로소 두려워하였으며, 몰래 어머니 상씨와 더불어 여자 무당으로 하여금 액막이 기도를 하게하고 말하였다.

 公主密與家僮冒雨詣懸瓠,訴於帝,且具道后所爲。帝疑而祕之。后聞之,始懼,陰與母常氏使女巫厭禱,厭,於葉翻,又於琰翻。曰︰

 

 "황제가 병으로 만약 일어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문명태후처럼 어린 주군을 보좌하며 칭제할 것이므로, 마땅히 헤아릴 수 없는 상으로 보답할 것이다."

「帝疾若不起,一旦得如文明太后輔少主稱制者,文明太后,后之姑也;其包藏禍心若此,豈非姑之敎邪!少,詩照翻。當賞報不貲。」貲,卽移翻。貲之爲言量也。不貲,言無量之可比也。

 

 황제가 낙양으로 돌아와서 고보살·쌍몽을 체포하여 사건을 물으니 모두 자복하였다. 황제가 함온실에 있었는데, 밤중에 풍후를 데리고 들어와서 동쪽 기둥에 앉도록 하되 어탑과 2여 장 떨어져 앉도록 하고, 고보살 등에게 명령하여 상황을 진술하도록 하였다. 이미 그렇게 하고 나서 팽성왕 원협·북해왕 원상을 불러 들어와서 앉게 하고 말하였다.

 帝還洛,收高菩薩、雙蒙等,案問,具伏。帝在含溫室,夜引后入,賜坐東楹,去御榻二丈餘,命菩薩等陳狀。陳后淫泆之狀。旣而召彭城王勰、北海王詳入坐,勰,音協。曰︰

 

 "옛날에는 너희들의 형수였는데 지금은 길에 가는 사람이니, 다만 들오고 회피하지는 마시오."

 또 말하였다.

 "이 할멈이 손수 칼로 나를 위협하려고 했소. 나는 문명태후 집안의 딸을 폐출시킬 수가 없지만 다만 궁중에 그냥 허깨비로 두었다가 마음에 따라 스스로 죽을 수 있게 할 것인데, 너희들은 내가 오히려 정분이 잇다고 생각하지 마라."

「昔爲汝嫂,今是路人,但入勿避!」又曰︰「此嫗欲手刃吾脅!嫗,威遇翻。老婦曰嫗。吾以文明太后家女,不能廢,但虛置宮中,有心庶能自死;言若有人心,必當自取盡也。汝等勿謂吾猶有情也。」

 

 두 왕이 나가자, 황후에게 결별하도록 하니 황후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렸다. 들어와서 후궁에 살게 하니, 여러 빈어들이 그녀를 받들기를 여전히 황후의 예와 같이 하였으나, 오직 태자에게만 명령하여 다시는 조알하지 못하도록 할 뿐이었다.

 二王出,賜后辭訣;后再拜,稽首涕泣。稽,音啓。入居後宮,諸嬪御奉之猶如后禮,嬪,毗賓翻。唯命太子不復朝謁而已。太子,儲君也;命不復朝謁,絕之,不使以母禮事之。復,扶又翻。朝,直遙翻。

 

 애초에,  풍희는 문명태후의 오빠로서 일찍이 공종의 딸 박릉장공주를 아내로 모셔 들였다. 풍흐에게는 세 딸이 있었는데, 두 명은 황후가 되었고, 한 명은 좌소의가 되엇으며, 이 일로 말미암아 풍씨 사람들이 존귀해지고 은총을 받은 것이 여러 신하들 가운데 으뜸이었고, 상으로 받은 것도 쌓여서 거만이 되었다.

 初,馮熙以文明太后之兄尚恭宗女博陵長公主。景穆太子廟號恭宗。長,知兩翻。熙有三女,二爲皇后,一爲左昭儀,二后,廢后及幽后也。昭儀早卒。瑤光寺之練行尼,魏主忍爲之,廢后非得罪於宗廟也;幽后所爲彰灼如此,乃不能正其罪;廢后獨非文明家女邪!由是馮氏貴寵冠羣臣,賞賜累巨萬。《漢書音義》曰︰巨萬,萬萬也。冠,古玩翻。

 

 공주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풍탄과 풍수였다. 풍희가 태보가 되었고, 풍탄은 사도가 되었으며, 풍수는 시중·상서가 되었고, 서자 풍율은 황문랑이 되었다. 황문시랑 최광이 풍율과 같이 숙직하였는데, 풍율에게 말하였다.

 公主生二子,誕、脩。熙爲太保,誕爲司徒,脩爲侍中、尚書,庶子聿爲黃門郎。黃門侍郎崔光與聿同直,庶子,妾御所生。以此觀之,魏以黃門郎與黃門侍郎爲兩官。同直,同直禁中也。謂聿曰︰

 

 "그대가 가문은 부귀가 지나치게 융성하니, 끝내는 반드시 쇠퇴하고 실패할 것이오."

 풍율이 말하였다.

 "우리 가문이 무슨 죄를 진 것이 있다고 그대는 까닭없이 나를 저주하는 것이오."

「君家富貴太盛,終必衰敗。」聿曰︰「我家何所負,而君無故詛我!」詛,莊助翻,呪也。

 

 최광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소. 사물이 왕성해지면 반드시 쇠하여지는 법인데, 이것은 하늘과 땅에서의 보편적 이치요. 만약 옛날 일을 가지고 그것을 미루어 본다면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없소."

 이후 일 년여가 지나서 풍수가 실패하였다.

 光曰︰「不然。物盛必衰,此天地之常理。若以古事推之,不可不愼。」後歲餘而脩敗。

 

 풍수의 성격은 들뜨고 다투었는데 풍탄이 여러 차례 그에게 경계하였으나 고치지 않자, 마침내 태후와 황제에게 알려서 그에게 곤장을 치게하였다. 풍수는 이로 말미암아 풍탄에게 원한을 품고, 약을 구하여 풍탄의 좌우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독살하려고 하였다. 일이 발각되어 황제가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풍탄 스스로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그를 살려주기를 간절히 요구했다.

 脩性浮競,誕屢戒之,不悛,悛,丑緣翻。乃白於太后及帝而杖之。脩由是恨誕,求藥,使誕左右毒之。事覺,帝欲誅之,誕自引咎,懇乞其生。

 

 황제 또한 그들의 아버지가 늙었기 때문에 풍수에게 장 100여 대를 치고 내쫓아 평성의 평민이 되게 하였다. 풍탄·풍희가 이어서 죽게 되자, 유후도 곧 폐위되고, 풍율 역시 배척되어 버려지니, 풍씨는 드디어 몰락하였다.

 帝亦以其父老,杖脩百餘,黜爲平城民。及誕、熙繼卒,太和十九年,馮誕卒,是年二月也;四月,馮熙又卒。幽后尋廢,太和二十年,幽后廢。聿亦擯棄,馮氏遂衰。史言外戚罕有能全保其福祿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