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願後身世世勿復生天王家!/세세토록 다시는 천왕가에서 태어나지 말게하라.

solpee 2019. 8. 5. 04:57

 

《齊紀1 高帝 建元 元年 (己未, 479)

 

 12. 갑인일에 제공 소도성이 책명을 받고 그 경내에 사면령을 내리고 석두를 세자궁으로 삼았는데, 하나하나가 다 동궁과 같게 하였다. 저연은 하증이 위의 사도에서 진의 승상이 되었던 고사를 인용해서 제의 관원이 되기를 요구하니 제공이 허락하지 않았다.

 12.3月, 甲寅,齊公受策命,赦其境內,以石頭爲世子宮,一如東宮。褚淵引何曾自魏司徒爲晉丞相故事,求爲齊官,齊公不許。

 

 왕검을 제의 상서우복야로 삼아서 이부의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는데, 왕검은 이때 나이 28세였다.

 以王儉爲齊尚書右僕射,領吏部;儉時年二十八。

 

 여름, 4월 초하루 임신일에 제공의 작위를 올려서 왕으로 삼고 열 개의 군을 더 책봉하였다.

 夏,四月,壬申朔,進齊公爵爲王,增封十郡。時又增徐州之南梁、陳、潁川、陳留、南兗州之盱眙、山陽、秦、廣陵、海陵、南沛等十郡。

 

 갑술일에 무릉왕 유찬이 죽었는데 질병은 아니었다.

 甲戌,武陵王贊卒,非疾也。史言齊殺之。

 

 병술일(15)에 제왕에게 특별한 예우를 덧붙혀주고, 세자를 올려서 태자라고 하였다.

 丙戌,加齊王殊禮,進世子爲太子。

 

 신묘일(20)에 송의 순제가 조서를 내려서 제에게 황제의 자리를 선양한다 하였다. 임진일(21)에 황제가 마땅히 헌에 임석해야 하지만 나오려고 하지 않고 불개의 밑으로 도망가니 왕경칙이 군사들을 전정에서 챙겨서 판여를 가지고 들어가서 황제를 맞이하였다. 태후는 두려워서 스스로 환관들을 인솔하여 그를 찾아냈는데, 왕경칙이 비유를 해가면서 나오도록 하여 이끌어서 수레에 오르게 하였던 것이다.

 辛卯,宋順帝下詔禪位于齊。壬辰,帝當臨軒,不肯出,逃于佛蓋之下,自晉以來,宮中有佛屋,以嚴事佛像,上爲寶蓋以覆之,宋帝逃於其下。王敬則勒兵殿庭,以板輿入迎帝。太后懼,自帥閹人索得之,帥,讀曰率。閹,衣廉翻。索,止客翻。敬則啓譬令出,引令升車。

 

 황제가 눈물을 닦고 왕경칙에게 말하였다.

 "죽이려고 하시오?"

 왕경칙이 말하였다.

 "나아가서 별궁에 계시게 될 뿐입니다. 관의 선조께서 사마씨 집안을 빼앗을 때에 또한 이와 같이 하였습니다."

 황제가 눈물을 흘리고 손가락을 털면서 말하였다.

 "바라건데 뒤에 태어날 몸은 세세토록 다시는 천왕의 집안에서 태어나지 말지어다."

 궁중에서 모두 통곡을 하였다.

 帝收淚謂敬則曰︰「欲見殺乎?」敬則曰︰「出居別宮耳。官先取司馬家亦如此。」帝泣而彈指曰︰「願後身世世勿復生天王家!」復,扶又翻。宮中皆哭。

 

 황제가 왕경칙의 손을 치면서 말하였다.

 "반드시 지나치게 염려할 것이 없다면 마땅히 보국장군의 돈 10만 전으로 먹고 살게 해주시오."

 帝拍敬則手曰︰「必無過慮,當餉輔國十萬錢。」敬則時爲輔國將軍。史言帝庸闇。

 

 이날 백관들자리에 배석하였다. 시중 사비가 당직이었으므로 마땅히 새수를 풀어야 하였지만 겉으로 모르는 척 하면서 말하였다.

 "무슨 공적인 일이 있소?"

 조서를 전하는 사람이 말하였다.

 "새수를 풀어서 제왕에게 주십시오."

 사비가 말하였다.

 "제에도 자체적으로 시중이 있을 것이오."

 마침내 베개를 끄집어 당겨서 누워버렸다.

 是日,百僚陪位。侍中謝朏在直,當解璽綬,陽爲不知,曰︰「有何公事?」傳詔云︰「解璽綬授齊王。」傳詔,屬中書舍中,出入宣傳詔旨。又考《南史》,郡府謂之傳敎,天臺謂之傳詔。璽,斯氏翻。綬,音受。朏曰︰「齊自應有侍中。」乃引枕臥。

 

 조서를 전하는 사람이 두려워서 사비로 하여금 병이 들었다고 말하게 하고 겸직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려 하였더니 사비가 말하였다.

 "나는 아프지 않은데 어떻게 그리 말하겠소."

 드디에 조복을 입고 걸어서 동액문을 나가서 수레에 올라 집으로 돌아갔다.

 傳詔懼,使朏稱疾,欲取兼人,欲取兼侍中者。朏曰︰「我無疾,何所道!」遂朝服步出東掖門,仍登車還宅。朝,直遙翻。

 

 마침내 왕검을 시중으로 삼아서 새수를 풀었다. 예를 마치고 황제가 화륜거를 타고 동액문을 지나 동저로 갔다. 그리고 물었다.

 "오늘은 어찌하여 북을 치고 나팔을 불지 않는가?"

 좌우의 사람들 가운데는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乃以王儉爲侍中,解璽綬。禮畢,帝乘畫輪車,畫輪車者,車輪施文畫也。《晉志》云︰畫輪車,上開四望,綠油幢,朱絲絡,兩箱裏飾以金錦黃金塗,五采。蕭子顯曰︰漆畫輪車,金塗校飾,如輦,微有減降。杜佑曰︰晉制︰駕車以采漆畫輪轂,上起四夾杖,左右開四望,綠油纁朱絲青交絡其上,形如輦,其下猶犢車。出東掖門就東邸。掖,音亦。問︰「今日何不奏鼓吹?」左右莫有應者。

 

 우괄록대부 왕곤은 왕화의 숙부였는데, 진 시절에 이미 낭중이 되었다가, 이에 이르자 걸어 둔 수레에 올라서 먼지를 털면서 통곡하며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이 늙은 신하는 오래 사는 것을 슬프게 생각한다. 이미 누의(땅강아지와 개미)보다 몸을 먼저 보낼 수 없었다가 마침내 다시 이러한 일을 자주 보게 되었구나!"

 오열하여 스스로 이기지 못하니 백관들이 비처럼 눈물을 흘렸다.

 右光祿大夫王琨,華之從父弟也,王華早入宋公霸府,元嘉初輔政。吹,尺睡翻。從,才用翻;下同。在晉世已爲郎中,至是,攀車獺尾慟哭獺毛可以辟塵,故懸之於車。曰︰「人以壽爲歡,老臣以壽爲戚,旣不能先驅螻蟻,謂不能早死也。乃復頻見此事!」鳴咽不自勝,復,扶又翻。勝,音升。百官雨泣。言涕泣如雨也。宋永初元年受晉禪,歲在庚申;八主,六十年而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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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연을 사도로 삼았다. 빈객들 가운데 축하하는 사람들이 자리에 가득하였다. 저소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언회(저연의 병명)는 젊어서 명망과 행실을 잘 세웠는데 어찌 창궐하기가 이 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였겠는가? 집안이 불행하게 되어 마침내 다시 오늘 같이 벼슬을 받았구나. 언호로 하여금 중서랑을 하면서 죽게 하였더라면 마땅히 한 명의 명사가 되지 않았겠는가? 이름과 덕이 번창하지 못하니 마침내 다시 오래 살라고 기원할 것이 있겠는가!"

 저연은 굳게 사양하고 배수하지 않았다.

 以褚淵爲司徒。賓客賀者滿座。褚炤歎曰︰「彥回少立名行,何意披猖至此!披猖,言披靡而猖獗也。披,普皮翻。少,詩照翻。行,下孟翻。門戶不幸,乃復有今日之拜。使彥回作中書郎而死,不當爲一名士邪!名德不昌,乃復有期頤之壽!」《曲禮》曰︰人生百年曰期頤。鄭註云︰期,要也;頤,養也;不知衣服食味,孝子要盡養道而已。淵固辭不拜。

 

 봉조청인 하동 사람 배외가 표문을 올려서 황제의 허물과 악함을 책망하고 관을 걸어놓고 지름길로 떠났다. 황제가 화가 나서 그를 죽였다.

 奉朝請河東裴顗上表,數帝過惡,掛冠徑去;帝怒,殺之。奉朝請者,奉朝會請召而已,非有職任也。裴顗在宋朝旣無職任,又無卓犖奇節,惟不食齊粟,遂得垂名青史。君子惡沒世而名不稱,正爲此也。朝,直遙翻。顗,魚豈翻。數,所具翻。

 

 태자 소색이 사비를 죽이라고 청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그를 죽이면 끝내 그는 명성을 이루게 되니 바로 응당 그를 예외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오래 지나고 나서 어떤 사건을  가지고 집으로 폐출시켰다.

 太子賾請殺謝朏,帝曰︰「殺之遂成其名,正應容之度外耳。」久之,因事廢于家。

 

 황제가 전에 무군장군부의 행참군이었던 패국 사람 유한에게 정치하는 것을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정치는 《효경》에 있습니다. 무릇 송씨가 망한 까닭과 폐하께서 얻게 된 까닭은 모두 이것입니다. 폐하께서 만약에 앞에 간 수레가 실수한 것을 경계로 삼고 그 위에 너그럽고 후덕함을 덧붙이신다면 비록 위태로어도 편안하게 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갓던 바퀴자국을 좇는다면 비록 편안하더라도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황제가 감탄하며 말하였다.

 "유자의 말은 만세에 걸쳐서 보배로울 수 있는 것이로구나!"

 帝問爲政於前撫軍行參軍沛國劉瓛,瓛,胡官翻。對曰︰「政在《孝經》。凡宋氏所以亡,陛下所以得者,皆是也。陛下若戒前車之失,加以寬厚,雖危可安;若循其覆轍,雖安必危矣。」帝歎曰︰「儒者之言,可寶萬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