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彥超性貪吝/모용언초는 성품이 탐욕스럽고 인색하였다.

solpee 2019. 7. 23. 05:13

 

後周紀1 太祖  廣順  2年》 (壬子, 952)

 

 

 14.5월, 경신일(5)에 주황제는 대량을 출발하였으며, 무진일(13)에 연주에 이르렀다.

 기사일(14)에 주제는 사람을 시켜서 모용언초를 불러 유시헥 하였는데, 성 위에 있는 사람들의 말씨가 공손하지 않으니, 경오일(15)에 여러 군데에 명령하여 나아가 공격하게 하였다.

 14.五月,庚申,帝發大梁。戊辰,至兗州。己巳,帝使人招諭慕容彥超,城上人語不遜。庚午,命諸軍進攻。

 

 이보다 먼저 술수를 하는 사람이 모용언초에게 말하였다.

 "진성이 움직여서 각과 강의 사이에 이르렀는데, 각과 강은 연주에 해당하니 그 밑에는 복이 있습니다."

 모용언초는 마침내 사당을 세우고 이에 기도하였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가 노란 깃발을 세우게 하였다.

 先是,術者紿彥超云:「鎮星行至角、亢,角、亢兗州之分,其下有福。」彥超乃立祠而禱之,令民家皆立黃幡。

 

 모용언초는 성품이 탐욕스럽고 인색한데 관군이 성을 급하게 공격하자 오히려 진기한 보배를 파묻어 숨기니 이로 말미암아서 사람들에게는 싸울 뜻을 없앴으며 장졸들은 서로 이어서 나와서 항복하는 사람이 있었다.

 彥超性貪吝,官軍攻城急,猶瘞藏珍寶,由是人無鬥志,將卒相繼有出降者。

 

 을해일(20)에 관군이 성에서 승리하였는데, 모용언초는 바야흐로 진성사에서 기도하고 무리를 인솔하고 힘껏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자 마침내 진성사를 불 지르고 처와 더불어 우물에 빠져서 죽었다. 아들 모용계훈은 나가서 도망하다가 쫓겨서 붙잡혀서 살해 되었다.

 乙亥,官軍克城,彥超方禱鎮星祠,帥眾力戰,不勝,乃焚鎮星祠,與妻赴井死。子繼勳出走,追獲,殺之。

 

 관군이 크게 약탈하니 성 안에서 죽은 사람은 근 1만 명이엇다. 애초에, 모용언초가 장차 반란하려고 하여 여러 도적들을 모아서 장하에 두자 도착한 사람이 2천여 명이었는데 모두가 산속에 살던 거칠고 사나운 사람들이었으니 끝내 써 먹지 못하였다.

 官軍大掠,城中死者近萬人。初,彥超將反,募群盜置帳下,至者二千餘人,皆山林獷悍,竟不為用。

 

 주제는 연주의 장리를 다 죽이려고 하였는데, 한림학사 두의가 풍도와 범질을 보고 더불어 같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저들은 모두 위협을 받아서 좇았을 뿐입니다."

 마침내 그들을 사면하였다.

 帝欲悉誅兗州將吏,翰林學士竇儀見馮道、范質,與之共白帝曰:「彼皆脅從耳。」乃赦之。

 

 정축일(22)에 단명전학사인 안간을 권지연주자사로 삼았다. 연주 관내에 있는 모용언초의 무리들을 사면하고, 도망하여 숨은 사람은 한 달의 기한을 주어 자수하도록 하고 전에 이미 복주된 사람은 그 친척을 사면하였다.

 계축일(28)에 태녕군을 방어주로 깍아내렸다.

 丁丑,以端明殿學士顏衎權知兗州事。壬午,赦兗州管內,彥超黨與逃匿者期一月聽自首,前已伏誅者赦其親戚。癸未,降泰寧軍為防禦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