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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勇有盛衰,攻有緩急,時有可否,事有後先/용기도 성쇠가 있다.

solpee 2019. 7. 15. 17:26

 

《後漢紀1 高祖 乾祐 年》 戊申, 948)

 

 

 34.곽위는 제장들과 공격하여 토벌하는 것을 논하였는데, 제장들은 먼저 장안과 봉상을 빼앗고자 하였다. 진국절도사 호종가가 말하였다.

 34.8月, 郭威與諸將議攻討,諸將欲先取長安、鳳翔。鎮國節度使扈彥珂曰:

 

 "지금 세 반란 세력이 연형하여 이수정을 추대하여 주군으로 삼고 있으니 이수정이 망한다면 두 진은 자연히 파괴됩니다. 만약에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을 공격하다가 우리의 뒤를 끌어당긴다면 이는 위태로운 길입니다."

 곽위는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今三叛連衡,推守貞為主,守貞亡,則兩鎮自破矣。若捨近而攻遠,萬一王、趙拒吾前,守貞掎吾後,此危道也。」威善之。

 

 이에 곽위는 섬주로부터, 백문가와 녕강절도사 유사는 동주에서, 상사는 동관에서 세 길로 하중을 공격하였다.

 곽위는 사졸들을 어루만지고 길러주면서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며 조금이라도 공로를 세우면 번번이 그에게 상을 주고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으면 항상 친히 그들을 둘러보았다.

 於是威自陝州,白文珂及寧江節度使、侍衛步軍都指揮使劉詞自同州,常思自潼關,三道攻河中。威撫養士卒,與同苦樂,小有功輒厚賞之,微有傷常親視之。

 

 사병들은 똑똑하거나 못나거나 상관없이 진술하는 것이 잇으면 모두 따뜻한 말씨로 이를 받아들였으며, 어기는 사람에게도 화를 내지 않고, 적은 허물은 책망하지 아니하였다. 이로 말미암아서 장졸들은 모두 곽위에게 마음으로 귀부하였다.

 士無賢不肖,有所陳啟,皆溫辭色而受之。違忤不怒,小過不責。由是將卒鹹歸心於威。

 

 애초에, 이수정은 '금군은 모두 일찍이 자기 휘하에 있었고 그의 은헤와 베풂을 받았으며, 또 사졸들은 평소에 교만하였고 한의 법률이 엄격한 것으로 고생스러워하였으니, 그가 도착하면 성문을 두드리며 받들고 영접할 것'으로 여기고 앉아서 그들을 기다릴 수 있었다.

 始,李守貞以禁軍皆嘗在麾下,受其恩施,又士卒素驕,苦漢法之嚴,謂其至則叩城奉迎,可坐而待之。

 

 이미 그렇게 생각하였는데, 사졸들은 새로이 곽위에게 은사를 받았으므로 모두가 이수정이 베푼 옛날 은혜를 잊었다.

 기해일(23)에 성 아래에 도착하자 깃발을 펄럭이고 북을 울리며 펄펄 뛰면서 욕을 하고 시끄럽게 하였더니, 이수정은 이를 보고 얼굴색이 변하였다.

 既而士卒新受賜於郭威,皆忘守貞舊恩。己亥,至城下,揚旗伐鼓,踴躍詬譟,守貞視之失色。

 

 제장들은 급히 성을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곽위가 말하였다.

 "이수정은 전 왕조부터 있었던 오래 된 장수이어서 힘 있게 싸우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누차 전공을 세웠다. 하물며 성이 대하에 인접해 있으며, 성루와 성첩이 완전하고 단단하여 아직은 가볍고 쉽지 않다.

 諸將欲急攻城,威曰:「守貞前朝宿將,健斗好施,屢立戰功。況城臨大河,樓堞完固,未易輕也。

 

 또 저들은 성에 의지하여 싸우고, 우리는 올려다보면서 공격하니, 어찌 사졸들을 인솔하여서 끓는 물이나 불 속에 던져 넣는 것과 다르겠는가?

 且彼憑城而鬥,吾仰而攻之,何異帥士卒投湯火乎!

 

 무릇 용기에도 성쇠가 잇고, 공격하는 데도 완급이 있으며, 시기에도 될 때와 아닐 때가 있고, 일에서도 뒤에 할 것과 앞에 할 것이 있는데, 길게 포위망을 만들어서 그를 지키며, 나는 것과 기어 다니는 것들의 길을 끊어 놓는 것만 같지 못하다.

 夫勇有盛衰,攻有緩急,時有可否,事有後先。不若且設長圍而守之,使飛走路絕。

 

 우리는 무기를 깨끗하게 씻고 말을 먹이면서 앉아서 먹는데 먹을 것을 날라다가 때뜻하고 배부르고도 남은 것이 있다. 성 안에 먹을 것이 없게 되어 관청의 금고와 개인의 재물이 모두 없어지기를 기다리고, 그런 다음에 사다리와 충차를 내어 보내어 그들을 압박하고, 깃 달린 화살에 격문을 메달아 날려 보내어서 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吾洗兵牧馬,坐食轉輸,溫飽有餘。俟城中無食,公帑家財皆竭,然後進梯沖以逼之,飛書檄以招之。

 

 저들의 장사들은 몸을 빼어 죽움에서 도망할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조차 또 서로 보호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까마귀 모아 놓은 것같은 무리들이야! 조사관과 왕경승은 다만 군사를 나누어서 그들을 붙들어 매어 놓으면 걱정거리가 못될 것이다."

 彼之將士,脫身逃死,父子且不相保,況烏合之眾乎!思綰、景崇,但分兵縻之,不足慮也。」

 

 마침내 여러 주의 민부 2만여 명을 징발하여 백문가 등으로 하여금 이를 인솔하게 하여 긴 참호를 파고 이어진 성을 쌓아서 대오를 늘어놓아 그곳을 포위하게 하였다.

 곽위는 또 제장들에게 말하였다.

 乃發諸州民夫二萬餘人,使白文珂等帥之,刳長壕,築連城,列隊伍而圍之。威又謂諸將曰:

 

 "이수정은 과거에 고조를 두려워하여 감히 솔개처럼 날개를 펴지 못하였었는데, 우리들은 태원에서 일어나서 일과 공로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를 가벼이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잇으니 그러므로 감히 반란을 일으켰을 뿐이다. 바로 마땅히 조용히 이들을 통제해야 할 것이다."

「守貞曏畏高祖,不敢鴟張;以我輩崛起太原,事功未著,有輕我心,故敢反耳。正宜靜以制之。」

 

 마침내 깃발과 전고르 뉘어 놓고 다만 하를 좇아서 화포를 설치하니, 연결된어 이어진 것이 수십 리였는데 보졸들을 번을 세워서 이를 지키게 하였다.

 乃偃旗臥鼓,但循河設火舖,連延數十里,番步卒以守之。

 

 수군의 기주(무기를 갖춘 배)를 하안으로 파견하여 몰래 왕래하는 사람을 노략질하게 하니 이들을 잡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이에 이수정은 마치 그물 가운데 앉아 있는 꼴이 되었다.

 遣水軍檥舟於岸,寇有潛往來者,無不擒之。於是守貞如坐網中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