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漢紀1 高祖 乾祐 元年》 (戊申, 948)
8.정축일(27)에 한제는 병이 점점 깊어졌다. 양빈은 시위마군도지휘사인 유신을 꺼려서 즉각적으로 그를 진으로 가게 하였다. 유신은 받들어 인사를 할 수도 없어서 비 오듯 눈물을 흘리며 갔다.
8.丁丑,帝大漸,楊邠忌侍衛馬軍都指揮使、忠武節度使劉信,立遣之鎮。信不得奉辭,雨泣而去。
한제는 소봉길·양빈·사홍조·곽위를 불러서 들어와서 고명을 받게 하고 말하였다.
"나의 숨쉬는 것이 미약해졌으니 많은 말을 할 수 없다. 유승우는 어리고 약하니 뒷일을 경들에게 의탁하오."
帝召蘇逢吉、楊邠、史弘肇、郭威入受顧命,曰:「餘氣息微,不能多言。承祐幼弱,後事托在卿輩。」
또 말하였다.
"두중위를 잘 막으시오."
이날로 만세전에서 죽었다. 소봉길 등은 비밀에 붙이고 발상하지 않았다.
경진일(30)에 조서를 내려서 말하였다.
又曰:「善防重威。」是日,殂於萬歲殿,逢吉等秘不發喪。庚辰,下詔,稱:
"두중위 부자는 짐이 조금 병이 난 것을 이용하여 비방하는 논의를 하여 여러 사람을 흔드니 그의 아들인 두홍장·두홍련·두홍찬과 나란히 모두 목을 베라. 진 공주와 안팎의 친족은 모두 묻지 않는다."
「重威父子,因朕小疾,謗議搖眾,並其子弘璋、弘璉、弘璨皆斬之。晉公主及內外親族,一切不問。」
두중위의 시체를 저자에서 찢어 버리자 저자에 다니는 사람이 다투어 그 고기를 먹으니 관리들은 금할 수가 없었고 이리하여 다 없어졌다.
磔重威屍於市,市人爭啖其肉,吏不能禁,斯須而盡。
2월 초하루 신사일에 황제의 아들인 좌위대장군 유승우를 주왕으로 삼았다. 잠시 후에 발상하고 유제를 선포하였으며, 주왕으로 하여금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였는데, 이때에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二月,辛巳朔,立皇子左衛大將軍、大內都點檢承祐為周王,同平章事。有頃,發喪,宣遺制,令周王即皇帝位。時年十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