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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년 2월 15일 유지원이 후한황제에 올랐다.

solpee 2019. 7. 15. 11:20

 

《後漢紀1 高祖 天福 12年》 (丁未, 947)

 

 

 17. 유지원은 하중건이 촉에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탄식하며 말하였다.

 "융적은 세력을 믿고 능욕하여 중원에는 주군을 없앴고, 번진들로 하여금 밖으로 붙게 하였으니 나는 방백이 된 것이 진실로 부끄럽다."

 17.二月, 劉知遠聞何重建降蜀,歎曰:「戎狄憑陵,中原無主,令籓鎮外附,吾為方伯,良可愧也!」

 

 이에 자좌들이 유지원에게 존호를 칭하고서 사방을 호령하고 제후의 거취를 관찰할 것을 권고하였다. 유지원은 허락하지 않았다. 진주가 북쪽으로 옮겨 갔다는 소식을 듣고 소리쳐 말하기를, '군사를 내어 정형으로 가서 영접하여 진양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於是將佐勸知遠稱尊號,以號令四方,觀諸侯去就。知遠不許。聞晉主北還,聲言欲出兵井陘,迎歸晉陽。

 

 정묘일(11)에 부절절도지휘사인 형택 사람 사홍조에게 명령하여 여로 부대를 구장에 집합시키고 출군의 시기를 알렸다.

 군사들이 모두 말하였다.

 "지금 요가 경성을 함락시키고 천자를 붙잡았으니 주인이 없습니다. 천하에서 주인 노릇할 사람이 우리 왕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의당 지위와 호칭을 먼저 정한 다음에 출사해야 합니다."

 丁卯,命武節都指揮使滎澤史弘肇集諸軍於球場,告以出師之期。軍士皆曰:「今契丹陷京城,執天子,天下無主。主天下者,非我王而誰!宜先正位號,然後出師。」

 

 다투어 만세를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다.

 유지원이 말하였다.

 "오랑캐의 기세가 오히려 강하고 우리 군대의 위엄은 아직 떨치지 못하니 마땅히 또 공업을 세워야 하오. 사졸들이 무엇을 알겠소?"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그것을 저지하게 하였다. 

 爭呼萬歲不已。知遠曰:「虜勢尚強,吾軍威未振,當且建功業。士卒何知!」命左右遏止之。

 

 기사일(13)에 행군사마인 노성 사람 장언위 등이 세 번 편지를 올려 등극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유지원은 의심하여 아직은 결정하지 아니하였다. 곽위는 도압아인 관지 사람 양빈과 더불어 들어가서 유지원에게 유세하였다.

 己巳,行軍司馬潞城張彥威等三上箋勸進,知遠疑未決。郭威與都押牙冠氏楊邠入說知遠曰:

 

 "지금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잇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의를 하지 않아도 같으니 이는 하늘의 뜻입니다. 왕께서 이 기회를 틈타서 이를 빼앗지 못하고 겸손하고 양보하여 자리 잡지 아니하게 되면 인심도 또 옮겨질까 두려우며 옮겨지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유지원이 이를 좇았다.

「今遠近之心,不謀而同,此天意也。王不乘此際取之,謙讓不居,恐人心且移,移則反受其咎矣。」知遠從之。

 

 

 

 19.신미일(15)에 유지원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스스로 말하기를, '차마 진을 고치지 못하겠다고 하고 또 개운이라는 이름을 싫어하여서 마침내 고쳐서 천복 12년이라 칭한다'고 하였다.

 19.辛未,劉知遠即皇帝位。自言未忍改晉國,又惡開運之名,乃更稱天福十二年。

 

 임신일(16)에 조서를 내렸다.

 "여러 도에서는 요를 위하여 전백을 긁어모으는 것을 모두 철페하라. 그러나 진의 신하들 가운데 압박과 위협을 받아서 사자가 된 사람들은 묻지 않을 것이며, 행재로 오도록 하라. 그 나머지는 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들을 죽이라."

 壬申,詔:「諸道為契丹括錢率帛者,皆罷之。其晉臣被迫脅為使者勿問,令詣行在。自餘契丹,所在誅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