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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漢和蕃,未聞蕃和漢/한족이 번족과 화친하였다고 들었지 번족이 환족과 화친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solpee 2019. 7. 14. 17:38

 

《後晉紀4 제왕 開運 2年》 (乙巳, 945)

 

 

 21. 거란이 연속해서 해마다 침입하니 중국은 분명하는 데에 지쳤고 변경 사람들은 따에 피를 발랐지만 거란의 사람들과 가축들도 역시 많이 죽자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싫어하고 고통스럽게 여겼다.

 21.六月,癸酉,以杜威為天雄節度使。
契丹連歲入寇,中國疲於奔命,邊民塗地;契丹人畜亦多死,國人厭苦之。

 

 술률태후가 거란황제에게 말하였다.

 "한인으로 하여금 호주가 되게 하는 것이 가능하겠소?"

 말하였다.

 "불가능합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너는 무슨 까닭으로 한주가 되려고 하는 것이오?"

 述律太后謂契丹主曰:「使漢人為胡主,可乎?」曰:「不可。」太后曰:「然則汝何故欲為漢主?」

 

 말하였다.

 "석씨가 은혜를 저버렸으니 용납할 수 없습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너는 지금 비록 한의 땅을 얻을 수 있으나 살 수는 없다. 만의 하나라도 차질이 생긴다면 후회해도 어찌 회복할 수 있겠는가?"

 曰:「石氏負恩,不可容。」太后曰:「汝今雖得漢地,不能居也;萬一蹉跌,悔何所及!」

 

 또 그의 아랫사람들에게 말하였다.

 "한족의 아이들이 어찌 한 방향으로 잠을 잘 수 있겠소? 옛날부터 다만 한족이 번족과 화친하였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아직은 번족이 한족과 화친하였다는 소식은 듣지 못하였소. 한족의 아이가 과연 생각을 돌릴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어찌 더불어 화목해 하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겠소!"

 又謂其群下曰:「漢兒何得一向眠!自古但聞漢和蕃,未聞蕃和漢。漢兒果能回意,我亦何惜與和!」

 

 상유한이 누차 제왕에게 다시 거란에게 강화를 요청하여 나라의 걱정거리를 덜 것을 권고하니 제왕이 임시로 개봉군장인 장휘를 공봉관으로 삼아서 표문을 반들고 칭신하고 거란에 가서 겸손한 말로 잘못을 사죄하게 하였다.

 桑維翰屢勸帝復請和於契丹以紓國患,帝假開封軍將張暉供奉官,使奉表稱臣詣契丹,卑辭謝過。

 

거란황제가 말하였다.

 "경연광과 상유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오게 하고 이어서 진과 정 두 도를 떼어서 나에게 예속시킨다면 화친을 하겠다."

 조정에서는 거란의 말을 가지고 화를 내서 그들이 화친할 의사가 없음을 생각하고 마침내 중지하였다.

 契丹主曰:「使景延廣、桑維翰自來,仍割鎮、定兩道隸我,則可和。」朝廷以契丹語忿,謂其無和意,乃止。

 

 거란황제가 대량에 들어오자 이송 등에게 말하였다.

 "저번에 진의 사자를 다시 오게 하였다면 남과 북이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及契丹主入大梁,謂李崧等曰:「曏使晉使再來,則南北不戰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