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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立誹謗木 欲知過/우가 비방목을 세운 뜻은 자기의 절못을 알기 위함

solpee 2017. 9. 20. 05:22

說苑 卷20 反質7

7-1.秦始皇既兼天下,大侈靡,即位三十五年猶不息,治大馳道,從九原抵雲陽,塹山堙谷直通之。厭先王宮室之小,乃於豐鎬之間,文武之處,營作朝宮,渭南山林苑中作前殿,阿房東西五百步,南北五十丈,上可坐萬人,下可建五丈旗,周為閣道;自殿直抵南山之嶺以為闕,為複道,自阿房渡渭水屬咸陽,以象天極,閣道絕漢,抵營室也。又興驪山之役,錮三泉之底,關中離宮三百所,關外四百所,皆有鐘磐帷帳,婦女倡優。立石闕東海上朐山界中,以為秦東門。

 진 시황이 이미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크게 사치하였다. 즉위 35년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사치를 그치지 않아 크게 치도를 닦아서 九原에서부터 雲陽에 이르기까지 산을 깍고 골을 메워 곧장 통ㅎ게 하였다. 先王의 협소한 궁실을 혐오하여 豐과 鎬京 사이 주 문왕과 무왕이 거처하던 곳인 渭水 가 남산의 임원에 왕궁을 지었다. 正殿인 아방궁을 지었는데, 동서의 길이는 5백보요, 남북의 넓이는 50장으로, 그 위에는 일만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오장 길이의 기치를 세울 수 있었다. 사방 둘레에 閣道를 만들어 궁전 아래에서 곧장 남산의 정상에 도달하여 門闕을 만들고, 複道를 만들어 아방궁에서 위수를 건너 함양에 닿게하여 天極星과 閣道星이 은하수를 가로질러 營室星에 닿아 있는 천체를 상징하였다. 또 연산에 능묘 공사를 일으켜 三泉의 밑바닥에 구리를 녹여 부어 막았다. 函谷關 서쪽(關中)에 있는 별궁(離宮) 300곳과 함곡관 동쪽(關外)에 있는 별궁 400곳에 모두 종경과 장막을 설치하고 미녀와 광대를 배치하였다. 동해 가의 胊山 경계에 石闕을 세워 진의 동문으로 삼았다.

  

7-2.於是有方士韓客侯生,齊客盧生,相與謀曰:「當今時不可以居,上樂以刑殺為威,天下畏罪;持祿莫敢盡忠,上不聞過而日驕,下懾伏以慢欺而取容,諫者不用而失道滋甚。吾黨久居,且為所害。」乃相與亡去。始皇聞之大怒,曰:「吾異日厚盧生,尊爵而事之,今乃誹謗我,吾聞諸生多為妖言以亂黔首。」乃使御史悉上諸生,諸生傳相告,犯法者四百六十餘人,皆坑之。盧生不得,而侯生後得,始皇聞之,召而見之,升阿東之臺,臨四通之街,將數而車裂之。始皇望見侯生,大怒曰:「老虜不良,誹謗而主,迺敢復見我!」侯生至,仰臺而言曰:「臣聞知死必勇,陛下肯聽臣一言乎?」始皇曰:「若欲何言?言之!」

 이때에 方士로 韓人 侯生과 齊人 盧生이 서로 상의하여 말했다.

 "현재 여기에 그대로 살 수가 없다. 황상은 사형에 처하는 형벌로 위엄을 보이기를 즐거워하고 신하들은 죄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녹봉만을 유지하면서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 황상은 잘못을 듣지 못하여 날마다 더욱 교만해지고, 신하들은 두려어 복종하면서 태만과 속임수로 아첨을 떨며 용납되기를 구한다. 간하는 사람을 중용하지 않아 도의를 위배하는 일이 더욱 심하다. 우리들이 이곳에 오래 머물면 장차 살해를 당할 것이다."

 그러고는 즉시 도망쳐버렸다. 진 시황이 이 사실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내가 지난날 노생을 후하게 대우하여 벼슬을 높혀주고 섬겼는데, 지금 나를 비방하는구나. 나는 들으니, 諸生들이 요상한 말을 많이 만들어 백성들을 혼란시킨다고 한다."

 그러고는 곧 어사를 파견하여 제생들을 모두 조사하여 심문하게 하였다. 제생들이 서로 告引하여 법을 범한 사람이 460여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노생은 잡지 못하였고, 후생은 뒤에 잡으니, 시황이 이를 듣고 후생을 불러 직접 만나고자 하였다. 阿東臺에 올라 사통팔달의 거리를 마주하여 후생의 죄를 열거한 뒤에 車裂刑에 처하려고 하였다. 시황이 후생을 바라보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늙은 도적놈이 불량하여 네 임금을 비방하고서 감히 나를 다시 볼 수 있단 말이냐!"

 후생이 누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신은 들으니, 죽을 줄을 알면 반드시 용감해진다고 합니다. 페하께서는 신의 한마디 말씀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시황이 말했다.

 "너는 무슨 말을 하려느냐? 말해 보거라."

 

7-3.侯生曰:「臣聞禹立誹謗之木,欲以知過也。今陛下奢侈失本,淫泆趨末,宮室臺閣,連屬增累,珠玉重寶,積襲成山,錦繡文采,滿府有餘,婦女倡優,數巨萬人,鍾鼓之樂,流漫無窮,酒食珍味,盤錯於前,衣服輕暖,輿馬文飾,所以自奉,麗靡爛熳,不可勝極。黔首匱竭,民力單盡,尚不自知,又急誹謗,嚴威克下,下喑上聾,臣等故去。臣等不惜臣之身,惜陛下國之亡耳。聞古之明王,食足以飽,衣足以暖,宮室足以處,輿馬足以行,故上不見棄於天,下不見棄於黔首。堯茅茨不剪,采椽不斲,土階三等,而樂終身者,俗以其文采之少,而質素之多也。丹朱傲虐好慢淫,不修理化,遂以不升。今陛下之淫,萬丹朱而十昆吾桀紂,臣恐陛下之十亡也,而曾不一存。」

 후생이 말했다.

 "신은 들으니, 하우가 비방목을 세운 것은 자기의 잘못을 알려고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사치하여 다스리는 근본을 잃고, 음란하고 방종하여 향락을 추구하며, 궁실과 대각이 중첩되어 서로 이어지고, 주옥과 진보가 쌓여 산을 이루며, 화려한 색채로 수놓은 비단이 창고에 가득 차 넘치고, 미녀와 광대의 수가 만명이나 되며, 종고의 연주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고, 맛잇는 술과 음식이 앞에 널려 있으며, 의복은 가볍고 따뜻하며, 수레와 말은 아름답게 장식하여, 자신을 봉양하는 물품이 화려하고 찬란한 것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하고 민력은 모두 고갈되었는데 아직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 비방하는 말에 조바심을 내어 엄혹한 형벌로 아랫사람들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민신들은 벙어리가 되고, 위의 황상은 귀머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신 등이 떠난 것입니다. 신 등은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폐하의 나라가 항하는 것을 애석하게 여길 뿐입니다.

 듣건데 고대의 현명한 임금은 음식은 배가 부르면 그만이고, 옷은 몸이 따뜻하면 그만이며, 궁실은 거처할 만하면 그만이고, 수레와 말은 길을 가기만 하면 그만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는 하늘에게 버림받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요는 띠로 이은 추녀의 끝을 가지런하게 자르지 않고, 떡갈나무 서까래를 깍아 다듬지 않으며, 세 층의 흙 계단을 쌓은 집에서 살았으나 일생 동안 즐겁게 지낸 것은 화려하게 꾸민 것이 적고 소박한 본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丹朱는 오만하고 포악하며 음란함을 좋아하여 정사와 교화를 수행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제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현재 폐하의 방종한 생활은 단주보다 만 배나 더하고, 곤오와 걸주보다 천 배나 더하니, 신은 폐하께서 멸망할 행위는 열 가지나 하면서 보존할 행위는 한 가지도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7-4.始皇默然久之,曰:「汝何不早言?」侯生曰:「陛下之意,方乘青雲飄搖於文章之觀,自賢自健,上侮五帝,下凌三王,棄素樸,就末技,陛下亡徵見久矣。臣等恐言之無益也,而自取死,故逃而不敢言。今臣必死,故為陛下陳之,雖不能使陛下不亡,欲使陛下自知也。」始皇曰:「吾可以變乎?」侯生曰:「形已成矣,陛下坐而待亡耳!若陛下欲更之,能若堯與禹乎?不然無冀也。陛下之佐又非也,臣恐變之不能存也。」始皇喟然而歎,遂釋不誅。後三年始皇崩;二世即位,三年而秦亡。

 시황이 한동안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너는 어찌 일찌감치 말하지 않아느냐?"

 후생이 말했다.

 "폐하의 의기가 한창 청운을 타고 하늘에 올라 화려하게 꾸민 궁관에 맴돌고, 스스로 현명하고 스스로 굳세다고 여기어, 위로는 오제를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삼왕을 능멸하며, 소박한 생활의 원칙을 버리고 말단의 방종한 생활을 추구하니 폐하의 멸망할 징조가 나타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신 등은 말씀드려 봤자 유익함은 없고, 스스로 죽음만을 얻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도망치고 감히 말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신은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폐하를 위해 말씀드리는 것이니, 폐하를 멸망하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 폐하께서 스스로 이를 아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시황이 말했다.

 "내가 바르게 변할 수 있겠느냐?"

 후생이 말했다.

 "망할 형세는 이미 정해 졌으니, 폐하께서는 그대로 앉아서 멸망하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바르게 고치려고 하신다면 능히 제요와 하우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폐하의 보필하는 신하들 또한 옳지 않으니, 신은 폐하가 변하여도 나라를 보존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시황이 한숨을 쉬며 탄식하고는 마침내 후생을 주살하지 않고 석방하였다. 그 뒤 3년 만에 시황이 죽고, 二世가 즉위하였으나 또 3년이 지나 진은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