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체본

solpee 2017. 7. 28. 16:49

체본

☞.盡人事待天命〔 jìn rén shì dài tiān mìng 〕


【뜻】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성사를 기다린다.

【出典】「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라.(盡人事而待天命.)」宋胡寅 《致堂讀書管見》)‘진인사대천명’은 ‘盡人事聽天命’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지금 仙姑께서는 참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할 일도 다 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었으니, 어떻게 천명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소?(盡人事以聽天命. 今仙姑旣不能忍, 又人事未盡, 以致如此, 何能言得天命.)」淸 李汝珍 《鏡花緣》)

‘仙姑’는 仙境에 산다는 신선 할미를 가리킨다. ‘진인사대천명’은 ‘謀事在人成事在天’과 기본적으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자료를 보면 ‘진인사대천명’이 다음과 같이 《三國演義》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赤壁大戰에서 劉備와 孫權의 연합군에게 대패한 曹操는 겨우 1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패주했다. 諸葛亮은 조조가 퇴각하는 요소요소에 군사들을 매복시켰는데, 그중 華容道에 매복했던 關羽는 과거에 조조에게 입은 은혜가 있어 차마 조조를 죽이지 못하고 길을 내주어 달아나게 했다. 제갈량이 관우를 참수하려고 하였으나 유비의 간청에 못 이겨 관우를 살려 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에게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던 것입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쓰고 하늘의 명을 기다렸던 것입니다.(修人事待天命.)”」이 이야기가 바로 ‘진인사대천명’의 출전이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修人事待天命’이 바로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설명을 달고 있다. 그런데 《삼국연의》의 이 부분을 보면 제갈량이 유비의 간청에 못 이기는 척 관운장을 용서하면서 유비에게 한 말이나, ‘수인사대천명’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각설하고, 關雲長)은 조조를 보내 주고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 운장만은 홀로 사람 하나, 말 한 필 획득하지 못하고 빈 몸으로 돌아와 玄德을 만났다. 孔明이 마침 현덕과 함께 축하를 하다가 운장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자리를 떠나 술잔을 들고 맞이하며 말했다. “장군이 세상을 덮을 만한 공을
세우고 하늘 아래 큰 해악을 제거했으니 기쁘오. 멀리까지 나와 경하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운장이 묵묵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공명이 말했다. “장군은 설마하니 우리가 더 일찍 멀리까지 나와 맞이하지 않았다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면서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무슨 까닭에 일찍 보고하지 않았소?” 운장이 말했다. “이 관 아무개가 특별히 죽음을 청하러 왔소이다.” 공명이 말했다.
“조조가 화용도 길로 오지 않은 건 아니겠지요?” 운장이 말했다. “그리로 왔소. 그런데 관 아무개가 무능해서 달아나게 놔두고 말았소.” 공명이 말했다. “그러면 어떤 장수나 병졸을 잡아왔소?” 운장이 대답했다. “아무도 잡지 못했소.” 공명이 말했다. “이는 운장이 조조가 베푼 옛 은혜를 생각하여 고의로 풀어 준 것이오. 하지만 군령장이 여기에 있으니 군법에 의하지 않을 수 없구려.” 그러고는 무사에게 운장을 참하라고 큰소리로 명했다. ··각설하고, 공명이 운장을 참형에 처하려고 하자 현덕이 말했다. “옛날 우리 세 사람이 결의를 할 때, 함께 살고 함께 죽자고 맹세했소. 지금 운장이 법을 어겼다고 하지만 차마 이전의 맹세를 어길 수가 없구려. 잠시 과오를 기록해 두었다가 공을 세워 속죄하게 해 주기를 바라오.” 공명은 비로소 (관운장을)용서했다.(却說關雲長放了曹操, 引軍自回. ······
獨雲長不獲一人一騎, 空身回見玄德. 孔明正與玄德作賀, 忽報雲長至. 孔明忙離坐席, 執杯相迎曰, 且喜將軍立此蓋世之功, 與普天下除大害. 合宜遠接慶賀.
雲長默然. 孔明曰, 將軍莫非因吾等不曾遠接, 故爾不樂樂. 回顧左右曰, 汝等緣何不先報. 雲長曰, 關某特來請死. 孔明曰, 莫非曹操不曾投華容道上來.
雲長曰, 是從那里來. 關某無能, 因此被他走脫. 孔明曰, 拿得甚將士來. 雲長曰, 皆不曾拿. 孔明曰, 此是雲長想曹操昔日之恩, 故意放了.
但旣有軍令狀在此, 不得不按軍法. 遂叱武士推出斬之. ······ 却說孔明欲斬雲長, 玄德曰, 昔吾三人結義時, 誓同生死. 今雲長雖犯法, 不忍違却前盟.
望權記過, 容將功贖罪. 孔明方才饒了.)」

이 이야기는 제갈량이 천문을 보고 조조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라며 관우에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했다는 말은 여기에서도 ‘수인사대천명’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공명은 현덕, 劉琦와 함께 군막을 세우고 좌정한 후, 조운(趙雲, 趙子龍)에게 말했다. “자룡은 삼천 군마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지름길로 烏林의 소로로 가 나무와 갈대가 무성한 곳을 골라 매복을 하시오. 오늘 밤 사경 이후에 조조가 반드시 그 길로 도망을 할 것이오. 그들의 군마가 지나가면 반쯤 지나갔을 때 불을 지르시오. 다 죽이지는 못해도 절반은 죽일 수 있을 거요.”

 조운이 물었다.

 “오림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南郡으로 통하는 길이고, 하나는 荊州로 가는 길입니다. 어느 길로 갈지를 모르겠습니다.”

 공명이 말했다.

 “남군으로 가는 길이 험하기 때문에 조조는 감히 그 길로 가지 못할 거요. 반드시 형주로 간 후에 대군이 許昌으로 가게 될 것이오.”

 조운이 계략을 받아들고 출발했다. 공명은 또 張飛를 불러 말했다.

 “翼德은 삼천 병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彛陵의 길을 끊고 葫蘆谷 입구에 매복하시오. ······ 조조를 잡지는 못해도 익덕의 이번 판의 공이 적지 않을 것이오.”

 장비는 계책을 받고 출발했다. 

 공명이 현덕에게 말했다.

 “주공께선 樊口에 둔병하여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며 오늘 밤 周郞이 큰 공을 세우는 것을 앉아서 보십시오."

 이때 운장이 옆에 있었지만 공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운장이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관 아무개가 형장을 따라 작전에 출정하여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뒤처진 적이 없었소. 그런데 오늘 큰 적을 앞에 두고 軍師께서는 나를 쓰려고 하지 않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오?”

 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운장은 괴이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아무개가 본래 그대를 가장 중요한 요충지에 보내려고 했으나, 걸리는 일이 있어 감히 가도록 하지를 못하는 것이오.”

 운장이 말했다.

 “무슨 걸리는 일이란 말이오. 빨리 가르쳐 주시오.”

 공명이 말했다.

 “옛날 조조가 그대를 심히 우대했으므로 그대가 보답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오. 오늘 조조가 패하여 반드시 화용도로 지나갈 것이오. 만약 그대를 보내면 분명 그가 지나가도록 풀어 줄 것이오. 그래서 감히 가도록 하지를 못하는 것이오.”

운장이 말했다.

 “군사께서는 호의를 너무 많이 가지고 계시오. 당시 조조가 아무개에게 무겁게 대해 주었지만 아무개는 이미 顔良과 文醜를 베어 白馬城의 포위를 풀어 주어 다 갚았소. 오늘 만나게 되면 절대로 놓아 보내지 않으리다.”

 공명이 말했다.

 “만약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소?” 운장이 말했다. “군법에 의해 처벌받겠소.”

 공명이 말했다.

 “그렇다면 즉시 문서를 작성하시오.”
운장은 군령장을 주었다. 운장이 말했다.

 “만약 조조가 그 길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공명이 말했다.

 “나도 그대에게 군령장을 주겠소.”

 운장은 크게 기뻐했다. 공명이 말했다.

 “운장은 화용의 좁은 길 위의 높은 곳에서 땔나무와 풀을 쌓고 불을 붙여 연기를 올려 조조를 그리로 오도록 유인하시오.”

 운장이 말했다. “조조가 연기를 보면 매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어떻게 오려고 하겠소?”

 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병법의 허허실실 이론도 듣지 못했소? 조조가 용병에 능하다고 하나 이번에만은 그를 속일 수 있을 것이오.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허장성세라고 말하고 분명히 이 길로 오게 될 것이오. 장군은 정에 못 이겨 관용을 베풀지나 마시오.”

 운장은 명령을 받잡고 關平과 周倉 및 5백 명의 교도수(칼을 지닌 병사)를 거느리고 화용도로 매복을 하러 갔다.현덕이 말했다. “내 아우가 의기를 아주 중히 여겨 만약 조조가 정말로 화용도로 들어오면 진짜로 풀어 주게 될 것이오.”

 공명이 말했다.

 “제가 밤에 天象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운장에게 인정을 남기도록 하게 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현덕이 말했다.

 “선생의 신산은 세상에 따라갈 사람이 없구려.”

(孔明便與玄德, 劉琦升帳坐定, 謂趙雲曰, 子龍可帶三千軍馬, 渡江徑取烏林小路, 揀樹木蘆葦密處埋伏. 今夜四更已後, 曹操必然從那條路奔走. 等他軍馬過, 就半中間放起火來. 雖然不殺他盡絶, 也殺一半. 雲曰, 烏林有兩條路, 一條通南郡, 一條取荊州. 不知向那條路來.
孔明曰, 南郡勢迫, 曹操不敢往. 必來荊州, 然後大軍投許昌而去. 雲領計去了. 又喚張飛曰, 翼德可領三千兵渡江, 截斷彝陵這條路, 去葫蘆谷口埋伏.
······ 雖然不捉得曹操, 翼德這場功料也不小. 飛領計去了. ······ 孔明謂玄德曰, 主公可於樊口屯兵, 凭高而望, 坐看今夜周郞成大功也.
時雲長在側, 孔明全然不睬. 雲長忍耐不住, 乃高聲曰, 關某自隨兄長征戰, 許多年來, 未嘗落後. 今日逢大敵, 軍師却不委用, 此是何意. 孔明笑曰,
雲長勿怪. 某本欲煩足下把一個最緊要的隘口, 怎奈有些違碍, 不敢敎去. 雲長曰, 有何違碍. 願卽見諭. 孔明曰, 昔日曹操待足下甚厚, 足下當有以報之.
今日操兵敗, 必走華容道. 若令足下去時, 必然放他過去. 因此不敢敎去. 雲長曰, 軍師好心多. 當日曹操果是重待某, 某已斬顔良, 誅文醜, 解白馬之圍,
報過他了. 今日撞見, 豈肯放過. 孔明曰, 倘若放了時, 却如何. 雲長曰, 願依軍法. 孔明曰, 如此, 立下文書. 雲長便與了軍令狀. 雲長曰,
若曹操不從那條路上來, 如何. 孔明曰, 我亦與你軍令狀. 雲長大喜. 孔明曰, 雲長可於華容小路高山之處, 堆積柴草, 放起一把火烟, 引曹操來. 雲長曰,
曹操望見烟, 知有埋伏, 如何肯來. 孔明笑曰, 豈不聞兵法虛虛實實之論. 操雖能用兵, 只此可以瞞過他也. 他見烟起, 將謂虛張聲勢, 必然投這條路來.
將軍休得容情. 雲長領了將令, 引關平, 周倉幷五百校刀手, 投華容道埋伏去了. 玄德曰, 吾弟義氣深重, 若曹操果然投華容道去時, 只恐端的放了. 孔明曰,
亮夜觀乾象, 操賊未合身亡. 留這人情, 敎雲長做了, 亦是美事. 玄德曰, 先生神算, 世所罕及.)」

 

☞.茶亦醉人何必酒, 書能香我不須花

[清]醉月山人《狐狸缘全传》邹(鄒)弢(활전대 도)(1850—1931)字翰飞,号酒丐、瘦鹤词人、潇湘馆侍者,亦称司香旧尉,江苏无锡人。

茶亦醉人何必(須)酒, 書自香我何须花。
酒不醉人人自醉, 花不迷人人自迷。

 
吟成白雪心如素, 最到梅花香也清。
昔日浣沙今日恨, 玉人如許願相親。

 

☞.虛故說...菩提娑婆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