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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以徵為羽,非絃之罪也/징이 우로 들리는 것은 현의 잘못이 아니다.

solpee 2017. 6. 18. 10:26

《說苑 卷17 雜言2

子石登吳山而四望,喟然而歎息曰:「嗚呼悲哉!世有明於事情,不合於人心者;有合於人心,不明於事情者。」弟子問曰:「何謂也?」子石曰:「昔者吳王夫差不聽伍子胥,盡忠極諫,抉目而;太宰嚭、公孫雒,偷合苟容,以順夫差之志而伐吳。二子沈身江湖,頭懸越旗。昔者費仲、惡來革、長鼻決耳,崇侯虎順紂之心,欲以合於意,武王伐紂、四子身死牧之野,頭足異所,比干盡忠剖心而死。今欲明事情,恐有抉目剖心之禍,欲合人心,恐有頭足異所之患。由是觀之,君子道狹耳。誠不逢其明主,狹道之中,又將危險閉塞,無可從出者。」

 자석이 오산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탄식해 말했다.

 " 아, 슬프구나. 세상에는 사정에 밝으면서도 남의 마음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남의 마음에 부합하면서도 사정에 밝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자 제자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자석이 말했다.

 "옛날 오왕 부차는 충성을 다해 지극히 간하는 오자서의 말을 따르지 않고 눈알을 뽑는 죄를 시행하였고, 태재 비와 공손락은 영합하고 부화하면서 부차의 뜻에 순종하여 제나라를 정벌했다가 두 사람 다 몸은 강물에 던져지고 머리는 월나라 깃대 위에 메달리는 꼴이 되었다. 예전에 비중· 비렴· 악래혁과 코가 길고 귀가 찢어진 숭후호는 주왕의 마음에 순종하여 영합하려다가 무왕이 주왕을 토벌했을 때, 이들 네 사람은 목야에서 죽음을 당하여 머리와 다리가 잘리어 각각 다른 곳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비간은 충성을 다하다가 심장이 쪼개져서 죽고 말았다.

 만일 사정에 밝으려고 하면 눈알이 뽑히고 심장이 쪼개지는 재앙이 있을까 걱정되고, 남의 마음에 부합하려고 하면 머리와 다리가 잘리어 각각 다른 곳에 놓이게 되는 환난이 있을까 걱정된다. 이를 통해 보건데, 군자가 가는 길은 좁다. 진실로 현명한 군주를 만나지 못하면 좁은 길 가운데에서 또 길이 위험하거나 막히어 빠져나갈 틈이 없을 것이다.

 

 

《說苑 卷17 雜言3

祁射子見秦惠王,惠王說之,於是唐姑讒之,復見,惠王懷怒以待之。非其說異也,所聽者易也。故以徵為羽,非絃之罪也;以甘為苦,限味之過也。

 기사자가 진 혜왕을 뵙자 혜왕이 기뻐하니, 이에 당고가 기사자를 참소하였다. 기사자가 다시 혜왕을 뵙자 혜왕이 노기를 품고 그를 대하니, 이는 그의 말이 전과 달라진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징음을 우음이라 여기는 것은 현의 죄가 아니고, 단맛을 쓴맛이라 여기는 것은 맛의 잘못이 아니다.

 

《說苑 卷17 雜言4

彌子瑕愛於衛君,衛國之法:竊駕君車罪刖。彌子瑕之母疾,人聞,夜往告之。彌子瑕擅駕君車而出,君聞之,賢之曰:「孝哉!為母之故犯刖罪哉!」君遊果園,彌子瑕食桃而甘,不盡而奉君,君曰:「愛我而忘其口味。」及彌子瑕色衰而愛弛,得罪於君,君曰:「是故嘗矯吾車,又嘗食我以餘桃。」故子瑕之行未必變初也,前見賢後獲罪者,愛憎之生變也。

 미자하는 위나라 임금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 법에 임금의 수레를 몰레 훔쳐서 타면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하였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났는데, 어떤 이가 이를 듣고 밤에 미자하에게 가서 알려주니, 미차하가 임금의 수레를 제 마음대로 타고는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는 훌륭하게 여겨 말했다.

 "효성스럽다. 어머니 때문에 발꿈치가 잘리는 죄를 지었구나!."

 임금이 과수원에 가서 놀 때 미자하가 복숭아를 먹다가 맛이 달자 다 먹지 않고 임금께 바치니, 임금이 말했다.

 "나를 사랑하여 좋은 맛마저 잊었구나!"

 그러다가 미자하의 아름다운 용모가 늙고 애정이 식어 임금에게 죄를 지었다. 임금은 옛일에 대해 말했다.

 "이 자는 일찍이 내 수레를 나의 이름으로 속여 탔고, 또 일찍이 제가 먹다 남긴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그 때문에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과 변함이 없건만, 전일에는 훌륭히 여기고 후일에 죄를 얻은 것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說苑 卷17 雜言5

舜耕之時不能利其鄰人,及為天子,天下戴之。故君子窮則善其身,達則利於天下。

 순이 농사를 지을 때에는 이웃 사람에게조차 이익을 주지 못햇는데, 천자가 되어서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높이 받들었다. 그러므로 군자는 곤궁하면 자몸을 선하게 수양하고, 현달하면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說苑 卷17 雜言6

孔子曰:「自季孫之賜我千鍾而友益親,自南宮項叔之乘我車也,而道加行。故道有時而後重,有勢而後行,微夫二子之賜,丘之道幾於廢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계손씨가 나에게 천종 녹봉을 준 뒤로부터 벗들은 나를 더욱 친근히 하고, 남궁경숙이 나에게 수레를 주어 타게 한 뒤로부터 나의 도가 더욱 시행 되었다. 그러므로 도는 때를 만난 뒤에 중시되고, 세력이 있고 난 뒤에 시행되니, 두 사람이 이것을 주지 않았다면 나의 도가 하마터면 폐기될 뻔하였다."

 

《說苑 卷17 雜言7

太公田不足以償種,漁不足以償網,治天下有餘智。文公種米,曾子架羊,孫叔敖相楚,三年不知軛在衡後,務大者固忘小。智伯廚人亡炙?而知之,韓魏反而不知;邯鄲、子陽園人亡桃而知之,其亡也不知。務小者亦忘大也。」

 강태공은 농사를 지은 수입이 종자값을 충당하지 못하고, 물고기를 잡은 어획량이 그물을 사기에 부족하였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지혜는 넉넉하였다. 진 문공은 쌀을 심었고, 자는 수레에 양을 메었으며, 손숙오는 초나라에서 3년 동안 재상 노릇을 하였으나 멍에(軛:겨리에는 곧은 멍에, 호리나 달구지엔 굽은 멍에)가 끌채 끝의 가로나무(衡) 뒤에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니 큰일에 힘쓰는 사람은 본디 작은 일은 잊는 법이다.

 지백은 주방 사람이 고기를 구울 때 쓰는 대바구니를 잃은 것은 알았으나 韓·魏가 배반한 일은 알지 못했고, 한단자양은 과수원지기가 복숭아를 잃어버린 것은 알았으나 자신이 망하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니 작은 일을 힘쓰는 사람은 또한 큰일을 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