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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客記

solpee 2017. 4. 10. 16:28

정약용五客記 정조의 親試에 대한 답안

(원문)


世之位卿相者多烜爀其門。客於是萃焉。皆丹其轅而翠其蓋。珠其

 

 

履而貝其纓。冀其熏炙外
焰。沾丐餘瀝。螘聚蠅營。以喧藉一時。

 

 

獨深州相國李
公不然。性澹素不喜膠擾。位列三事而

 

門庭寂然。雀羅可設。於是廣求山澤之間。羅以致之者五人。乃館

 

 

而留之。管其飮啄。相羽翼。人有難於公者曰。天子任用公。謂公

 

 

能以人事君。吐哺握髮。開東閣延天下賢士。以羽儀

 

王庭。今獨與彼五子者相善。處之門下。日翺翔其間。僕竊爲公不

 

 

取也。公曰否否。


於是五子者。有鎰宰相薦人之法。將以磬欬于朝廷。子其聽之。始

 

 

余閒居。有三客及門。皆衣

 

裳奇
偉。顏貌皓白。其一曰吾性喜閒暇。行止未嘗忙遽。遇雪失

 

 

素。乃李白輕慢我。欲以白璧
雙。買我爲僕而可乎。其一曰

 

 

貧賤。游齊魯。霜雪滿衣。爲人舂鋤。誤被舂杵
傷。遂拳一

 

足。老至鏡湖。自號碧溪翁。偶浴盤渦。乃子美疑我心性。不亦過

 

 

乎。


其一引頸自傲。強爲大言曰。吾本仙骨。世居靑田。閒游華表。

 

 

莊叟妄欲齊物。議我脛長。

 

能不悲哉。後仕衛位至
乘軒。至晉時不幸與陸氏善。華亭之禍。

 

 

剷迹自晦。今來投公。公其

 

憐之。余乃下堂執手而
笑曰。公等捨此奚適。

 

留歲餘。客之末至
者。又報客有二妙。入謁皆錦冠綺襖。金碧玲

 

 

瓏。問
其鄕貫。一在南粵。一

 

自西蕃。余素厭綺
麗。三子者亦鄙之。然特取其敏給。姑許信宿

 

 

乃一者性多妒
忌。遇婦孺服

 

錦綵者必逐之。
者雖薄有機慧。徒尙口舌。喋喋無謹訒之意。余欲

 

 

屏之。


三子者請曰相公何器量之小邪。凡宰相擇人。或取其潔身修行。或

 

 

取其文采藻麗。彼二子者。

 

雖生長綺紈。無山野瓌傑之態。亦自有一技一藝。何不見容於相公

 

 

 之門哉。余曰善。竝許館


 

留。五客繞席。各有異趣。

 

余顧而樂之曰。今天子求賢如渴。側席以俟。彼容止閒雅。不妄趨

 

 

步者。可任之閒局。

 

以矜式百僚。彼身賃舂鋤。飽經霜雪者。可任之民部。以察苦隱。

 

 

彼自稱仙骨者。雖語言荒

 

怪。亦可以砥礪流俗。而二子者或任之文苑。以黼黻皇
猷。或任之

 

 

喉舌。以出納王言。蓋莫不

 

才行蔚然。各適其用。吾爲相。果得人如此。薦之朝廷。不亦善

 

 

乎。難者曰諾。於是各以美號

 

錫之曰。閑客
雪客仙客。其二者本自西南來者。因以是呼之云。臣

 

 

謹記。

 

출전 : 『정약용』「여유당전서」'五客記'


 

다산 정약용의 五客記



이 글은 정조 14년(1790) 규장각 抄啓文臣을 대상으로 한 정조의 親試에 대한 정약용의 답안지이다. 次上이라는 붉은 글씨는 정조가 답안을 채점하고 매긴 등수를 말한다.


다산이 제출한 답안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세상에서 지위가 卿相에 오른 사람은 대개 위세가 대단하기 마련이어서 門客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이 문객들은 모두 그 수레 멍에를 붉게 칠하고 수레 덮개는 푸른 색으로 칠하며, 그의 신발은 구슬로 장식하고 갓끈에는 아름다운 조개껍질로 장식을 하고서, 그 경상의 세력을 의지하고 餘澤을 입기 위하여 마치 개미처럼 떼지어 모이고 파리같이 웅성거리면서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합니다.


그러나 유독 深州 李相國만은 그렇지 않아서, 성품이 담담하고 소박하여 시끄럽고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위가 三公에 이르렀으나 집안이 조용하여 새그물을 칠 만합니다. 러자 山澤에서 문객을 널리 구하여 가까스로 초치한 문객이 모두 다섯 사람이었습니다. 곧 집을 지어서 그곳에 머물게 하고, 먹을 것을 보살펴 주어, 서로 羽翼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을 비난하면서 말하기를. “天子가 공을 임용할 때 공에게 말하기를 어진 사람을 얻어 임금을 잘 섬기되 먹던 음식을 뱉고 감던 머리를 움켜잡으며東閣을 열어서 천하의 어진 선비를 맞이하여 왕실에 儀表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은 유독 저 다섯 분들과 서로 친하여 그들을 문하에 두고 날마다 그 사이에서 유유자적하니, 공으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하니, 공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다. 내가 이 다섯 분에게서 재상이 사람 천거하는 법을 얻었으므로, 조정에 천거하려 하니 그대는 들어 보아라. 내가 처음 한가하게 있을 때 세 나그네가 나에게 찾아왔는데, 모두 의상(衣裳)이 기이하고 얼굴도 희었다. 그 중 한 나그네가 말하기를 ‘내 성품은 한가한 것을 좋아하여 행동거지를 바삐 한 적이 없는데, 눈을 만나 흰 빛을 잃었다. 그러자 李白이 나를 업신여겨 흰 구슬 한 쌍으로 나를 사서 비복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니, 될 법이나 한 일인가?’ 하였다.


또 다른 나그네가 말하기를 ‘나는 어려서 빈천할 때 齊 나라와 노魯 나라에 유람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서리와 눈이 옷에 가득 내렸고, 남을 위해 절구질과 호미질을 해 주다가 절구공이에 잘못 맞아 한쪽 발이 오그라들었다. 늙어서는 鏡湖에 이르러 自號를 碧溪翁이라 하고 우연히 저 소용돌이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子美가 나의 心性을 의심하였으니, 또한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였다.


또 다른 나그네가 목을 길게 빼고 오만스럽게 애써 큰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본래 仙骨로서 대대로 靑田 (신선이 산다는 곳)에 살고 한가롭게 華表柱에 노닐었는데, 이에 莊子가 망령되이 齊物을 하고자 하여 나의 다리가 긴 것을 의논하였으니, 슬프지 아니한가? 뒤에 衛 나라에 벼슬하여 지위가 乘軒에 이르렀는데, 晉 나라 때에 이르러 불행하게도 陸氏와 잘 지낸 탓으로 華亭의 禍가 있었다. 그 뒤 마침내 종적을 감추고 스스로 숨어 살다가 지금 공에게 의탁하오니 공은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였다. 내가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하기를, ‘公들은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하였다.


그들이 여기에 머문 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나그네 중에서 맨 나중에 온 자가 또 보고하기를, ‘두 나그네가 뵙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런데 그 두 나그네는 모두 비단 관(冠)에 비단 옷을 입고 金과 碧玉으로 영롱하게 꾸몄다. 그 貫鄕을 물으니, 하나는 南粤에 있다 하고, 다른 하나는 西蕃에 있다고 하였다. 나는 평소에 화려한 것을 싫어하였고, 앞의 세 나그네도 그것을 더럽게 여겼다. 그러나 유별나게 말주변이 좋으므로 하룻밤? 묵어갈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고 보니, 한 나그네는 성품이 시기가 많아서 무늬 놓인 비단옷 입은 아녀자를 보면 반드시 쫓아내었다. 또 다른 나그네는 영민하기는 하나 수다스럽게 입놀림만을 숭상하여 말을 조심하는 뜻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물리치려고 하였으나, 앞에 온 세 나그네가 청하기를, ‘相公은 어찌하여 器量이 그렇게 작습니까? 대체로 재상이 사람을 택하는 데 있어서는 혹 몸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잘 닦은 사람을 택하기도 하고, 혹은 문채가 아름다운 것을 택하기도 하는데, 저 두 나그네가 비단옷만을 입고 자라나서 山野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괴걸한 모습은 볼 수 없으나, 또한 스스로 재주를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는데, 어찌 상공의 문하에서 용납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좋다’고 하고, 아울러 객관에 머물도록 하였다. 다섯 나그네가 둘러앉으니, 각기 다른 정취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고 기뻐서 말하기를, ‘지금 천자가 어진이를 목마르게 구하느라 자리에 바르게 앉지 못하고 어진이를 기다리고 있으니, 저 기거동작이 얌전하고 우아하여 망령되이 바쁜 걸음을 걷지 않는 나그네는 한가한 자리에 임용하여 百官의 법이 되게 할 만하다. 그리고 저 몸소 절구질과 호미질을 하는 등 온갖 풍상[霜雪]을 많이 겪은 나그네는 戶部에 임용하여 백성들의 숨은 고통을 살피게 할 만하다. 저 자칭 仙骨이라고 한 나그네는 말이 허황되기는 하나 또한 세상 풍속을 연마시킬 만하다. 맨 나중에 온 두 나그네는 혹은 文苑에 임용하여 임금의 정사를 보필하게 하고, 혹은 왕명을 출납하는 직책[喉舌職]에 임용하여 왕의 말을 출납케 할 만하다.’ 하였다. 이들은 대체로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니, 각기 그 적재적소에 맞추어 쓰면 된다. 내가 재상이 되어서 과연 사람을 이와 같이 얻어서 조정에 천거하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그러자 비난하던 자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각각 아름다운 號를 주어 閑客ㆍ雪客ㆍ仙客이라 하였습니다. 그 나중의 두 나그네는 본래 서쪽 지방과 남쪽 지방에서 왔으므로, 隴客ㆍ南客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옵니다. 臣은 삼가 記를 씁니다.』


註)


1. 五客記 :  五客은 宋 나라 시대 李昉이 五客堂의 壁上에 그려 놓은 다섯 종류의 새로, 閑客인白鷴鳥, 南客인 孔雀, 隴客인 鸚鵡, 仙客인 鶴, 雪客인 白鷺를 가리킨다. 이 오객기 맨 처음 나오는 ‘그 중 한 나그네’라고 한 것은 곧 ‘백한조’를 가리킨 것이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나그네’라고 한 것은 ‘백로’를 가리킨 것이며, 그 다음 ‘또 다른 나그네’라고 한 것은 ‘학’을 가리킨 것이고, 또 그 다음 ‘또 두 나그네’라고 한 것은 ‘공작’과 ‘앵무’를 합해서 일컬은 말임.


2. 새 그물을 ……합니다 :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음을 이름. 漢나라 때 翟公이 廷尉가 되었을 때에는 빈객이 많이 찾아왔었으나, 그가 파직된 뒤에는 문 밖이 조용하여 새그물을 칠만 하였다는 故事에서 나온 말.《史記 卷120 汲鄭傳》


3. 먹던 음식을 ……움켜잡으며 : 밥은 먹거나 머리를 감을 때라도 손님이 오면, 먹던 밥을 뱉고 감던 머리를 쥐고 바로 나가 마중함. 周 나라 周公이 어진 선비를 급히 영접하던 고사.


4. 東閣 : 동각은 동쪽에 나 있는 小門인데 漢 나라 公孫弘이 丞相이 되었을 때 이 문을 열어 놓고 어진 선비를 맞이 하였음. 이로 인하여 후대에는 정승이 어진이를 초빙하는 곳을 이르게 됨.《漢書 卷58 公孫弘傳》


5. 李白이 ……하였으니 : 唐 나라 때 詩人 이백이 白鷴鳥를 몹시 좋아하여 黃山 胡公이라는 사람에게 백한조를 요구한 시가 있는데, 그 시에 “흰 구슬 한 쌍으로 그대의 백한조 한 쌍을 사고 싶소. …… [請以雙白玉 買君雙白鷴 …… ]" 한 데서 온 말이다.《李太白集 卷12 古近體詩 贈黃山胡公求白鷴》


6. 소용돌이에서 ……의심하였으니 : 子美는 唐나라 때 詩人 杜甫의 자. 그의 시에 “소용돌이에서 목욕하는 백로는 무슨 심성인고. …… [盤渦鷺浴底心性]" 한 데서 온 말이다.


7. 華表柱에 노닐었는데 : 漢 나라 때 遼東 사람 丁令威가 靈虛山에서 道를 배우고 鶴이 되어 요동으로 돌아와 城門의 華表柱에 앉아 노닐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鶴을 가리킨 말이다.


8. 莊子가 ……의논하였으니 : 齊物은 곧 장자의 중심사상을 나타내는 논설로서, 세상의 是非와 眞僞를 모두 상대적으로 보고 함께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주장. 《장자》騈拇에 “ …… 鶴 다리가 아무리 길어도 잘라 주면 슬퍼한다 …… " 한 것을 가리킨다.


9. 乘軒春秋 시대 衛 懿公을 매우 좋아하여, 大夫가 타는 수레인 乘軒에 태우고 다녔음.《左傳 閔公 2年》


10. 陸氏와 ……華亭의 禍 : 화정은 지명. 육씨는 陸機를 가리킴. 육기가 참소를 당하여 죽을 때, “화정의 학울음을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하고 탄식한 데서 온 말임.《晉書 陸機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