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苑 卷9正諫6》蟬不知螳螂在其後
吳王欲伐荊,告其左右曰:「敢有諫者,死!」舍人有少孺子者,欲諫不敢,則懷丸操彈,遊於後園,露沾其衣,如是者三旦,吳王曰:「子來何苦沾衣如此?」對曰:「園中有樹,其上有蟬,蟬高居悲鳴飲露,不知螳螂在其後也!螳螂委身曲附,欲取蟬而不顧知黃雀在其傍也!黃雀延頸欲啄螳螂而不知彈丸在其下也!此三者皆務欲得其前利而不顧其後之有患也。」吳王曰:「善哉!」乃罷其兵
吳王이 荊을 정벌하려고, 좌우 신하들에게 알려 말하기를,.
"감히 이를 반대하는 자는 죽이리라."
舍人 중에 소유자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도 간하고 싶었지만 감히 간하지 못하고, 동그란 돌맹이를 가지고 튕겨 내는 연습을 하며, 後園에서 노니느라 이슬에 옷을 적시기를 사흘이나 하였다.
오왕이 소유자에게 말했다.
"너는 웬 일로 옷을 적시며 이같이 사서 고생하느냐?"
소유자가 대답하기를
"이 후원에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는 매미가 있습니다. 그 매미는 높이 붙어서 슬피 웁니다. 이슬을 먹는다는데 螳螂[범아재비]이 자기 뒤에서 노리는 줄을 모릅니다. 당랑은 몸을 움츠리고 찰삭 붙어서 매미를 노리느라 그 뒤에 자기를 노리는 황작이 있는데도 돌아볼 겨를이 앖습니다. 꾀꼬리는 목을 뻬내어 당랑을 쪼으려고만 하느라 그 아래에서 새총으로 쏘아 잡으려는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이 셋은 모두 눈앞에 있는 이익을 얻기에 급급하였지, 그 뒤에 있는 환난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오왕이 말하기를 “훌륭하다 !”하고 起兵을 그만 두었다 .
《說苑 卷9正諫9》義之用 法之行
楚莊王築層臺,延石千重,延壤百里,士有三月之糧者,大臣諫者七十二人皆死矣;有諸御己者,違楚百里而耕,謂其耦曰:「吾將入見於王。」其耦曰:「以身乎?吾聞之,說人主者,皆閒暇之人也,然且至而死矣;今子特草茅之人耳。」諸御己曰:「若與子同耕則比力也,至於說人主不與子比智矣。」委其耕而入見莊王。
楚 莊王이 樓臺를 짓는 데 드는 돌이 千重이나 되고, 그 차지하는 땅이 백 리나 되었다. 士人들이 그 비용이 초나라 석달 치 식량과 비등하다고 하여 간언을 올린 대신이 일흔 두 사람인데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諸御己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초나라 국경으로부터 백 리 밖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함께 농사를 짓는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장차 왕을 만나 보리라."
친구가 말했다.
"자네 같은 신분으로 어떻게 만나겠나? 내가 듣자하니 임금을 설득한다고 나선 사람들은 모두가 한가한 사람들이야 공연히 나섰다 죽었지. 지금 너는 풀 속에 파묻혀 사는 농사꾼이 아닌가."
제어기가 말했다.
"만일 너하고 농사를 짓는 일이라면 이는 힘을 비교해서 누가 나은지를 따지겠지만 임금을 설득하는 일이라면 너의 지혜로는 나와비교할 수가 없다."
莊王謂之曰:「諸御己來,汝將諫邪?」諸御己曰:「君有義之用,有法之行。且己聞之,土負水者平,木負繩者正,君受諫者聖;君築層臺,延石千重,延壤百里;民之釁咎血成於通塗,然且未敢諫也,己何敢諫乎?顧臣愚,竊聞昔者虞不用宮之奇而晉并之,陳不用子家羈而楚并之,曹不用僖負羈而宋并之,萊不用子猛而齊并之,吳不用子胥而越并之,秦人不用蹇叔之言而秦國危,桀殺關龍逢而湯得之,紂殺王子比干而武王得之,宣王殺杜伯而周室卑;此三天子,六諸侯,皆不能尊賢用辯士之言,故身死而國亡。」遂趨而出,楚王遽而追之曰:「己子反矣,吾將用子之諫;先日說寡人者,其說也不足以動寡人之心,又危加諸寡人,故皆至而死;今子之說,足以動寡人之心,又不危加諸寡人,故吾將用子之諫。」明日令曰:「有能入諫者,吾將與為兄弟。」遂解層臺而罷民,楚人歌之曰:「薪乎萊乎?無諸御己訖無子乎?萊乎薪乎?無諸御己訖無入乎」
장왕이 그를 보고 물었다.
"제어기라는 자가 왔느냐? 너도 장차 간언을 하려느냐?"
제어기가 대답했다.
"임금은 의를 활용함이 있어야 하고 법데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듣건대 위에서 물이 씻어간 땅은 평평해 지고, 먹줄을 받은 나무는 곧게 다듬어 지며, 임금이 간언을 들으면 聖君이 된다고 합니다. 임금께서 누대를 짓는 데 천 리 밖에서 돌을 운반해 오고 백 리 밖에서 흙을 운반해 왔습니다. 백성들은 흘리는 피가 개울을 이루는데도 감히 간언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간언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어리석은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옛적에 虞나라는 宮之奇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晉나라에 망하였고, 陳나라는 子家羈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초나라에게 병탄되었으며, 曹나라는 僖負羈의 의견을 무시하여 宋나라에 병탄되었으며, 萊나라는 子猛의 말을 듣지 않아서 齊나라에게 병탄 당했습니다. 또 吳나라는 伍子胥의 의견을 무시하였다가 越나라에게 합병당하였고, 秦나라는 蹇叔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나라가 위험에 빠졌습니다. 桀王이 關龍逢을 죽이자 湯王이 이를 멸망시켰고, 紂王이 왕자 比干을 죽이자 武王이 이를 정벌하였으며, 宣王이 杜伯을 죽이자 周室이 下賤해지고 허약해졌습니다. 이 세 天子와 여섯 諸侯는 모두 현인과 변사의 말을 중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과 일족은 대가 끊어지고 나라는 멸망했던 것입니다." 하고는 밖으로 뛰쳐 나갔다.
楚 莊王이 황급히 뒤따라 가며 말했다.
"그대는 돌아 오시오. 내가 장차 그대의 간언을 듣겠노라. 이제껏 과인은 간언 다운 간언을 듣지를 못하였구료. 과인을 설득 한다는 말들이 과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부족하였으며, 유익한 말이기는 커녕 오히려 과인을 해끼치자는 의도를 숨기고 나에게 위험한 길로 인도 하려 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자초한 것이라 할 것이오. 지금 그대의 말은, 과인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나를 위험으로 인도하려는 뜻도 없으니 내가 장차 그대의 간언을 듣고자 하는 것이오."
이튿날 초왕이 명령하여 말했다.
"간하는 자가 들어 오면 능히 들을지어다. 내가 그를 장차 형제로 삼으리라."
그리고는 드디어 누대의 건축을 그만두게 하고 백성들을 풀어 주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나무를 하고 있는가? 풀을 베고 있는가? 제어기가 없으니 이제까지 초나라에는 그럴 만한 인물 하나 없었나? 풀을 베고 있나? 나무를 하고 있나? 제어기가 없으니 이제까지 초나라에는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